개봉 이후, 호불호 논란이 펼쳐지는 이유는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의 충돌
미야자키 하야오가 건네는 삶의 질문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의 충돌
미야자키 하야오가 건네는 삶의 질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무언가 텅 비어버린, 고요함이 느껴지는 영화다. 그간 '이웃집 토토로'(200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서 보여주던 소년과 소녀가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발걸음에 맞추던 통통 튀는 선율 대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나온 시간을 발굴하는 차분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기존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수를 느끼고 싶던 관객들이라면, 흠칫하고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2차 세계대전 상황에서 엄마를 잃은 도쿄 소년 마히토가 아버지의 재혼으로 시골로 내려가가며우연히 미스터리한 왜가리와 함께 신비로운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1937년 발행된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영화의 제목을 차용했다고 전했다. 영화 '바람이 분다'(2013) 이후, 10년 만에 은퇴를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제작한 이유에 대해서 "오랫동안 피해왔던 것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저히 은퇴할 수 없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영화의 오프닝은 전쟁으로 인한 폭격 탓에 마히토의 어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 불이 나면서 그 기억의 잔상에서 벗어나는 못하는 소년 마히토의 상흔을 보여준다. 스스로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무력한 상황은 소년을 제자리에 주저앉게 만든다. 피투성이가 된 마음이 복원되기도 전에 마히토의 아버지는 아내의 동생 나츠코와 재혼하게 된다. 어머니를 똑 닮은 나츠코에게 묘한 악의를 느끼는 마히토는 새로운 환경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다. 와중에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왜가리는 마히토 앞에 나타나서 '엄마를 보고 싶지 않냐'며 새로운 세계 안으로 마히토를 이끈다.

지브리 영화의 집약체이자 하야오 감독의 정수라는 평도 잇따른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톺아보면, 공통으로 불, 물, 바람과 같은 원소를 은유적으로 풀어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바람이 분다'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는 제목에서 바람과 구름을 직관적으로 풀어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는 강의 신이었으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불 원소를 캐릭터화해서 성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어줬다. 하물며 초기작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지나치게 쓰면 아무것도 안 남아. 불은 숲을 하루에 재로 만들지. 물과 바람은 백 년 걸려서 그 숲을 키웠는데 말이야. 우린 물과 바람이 더 좋아"라는 말은 하야오 감독이 해당 원소들을 사용하는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마히토의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 역시도 화염이다.

1940년대 전쟁 상황에서 일본인 소년 마히토가 겪는 참상이라는 거시적 관점과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는 미시적 관점 경계는 영역을 오가며 충돌하고, 그로인해 괴리감이 생긴다. 애써 외부적인 요소를 지워내고 보더라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파편적인 형태를 납득하기 버거울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마히토의 여정이 의미 있는 이유는 마히토는 자신의 큰할아버지가 세운 이세계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세우기 위해서 문을 연다는 지점이다.

집단이 구축한 가치 안에 물들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마히토는 그들을 피해 새로운 통로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츠코에게 가졌던 악의는 여러시간이 교차한 이세계 안에서 사라진다. 그간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표현해온 모험들이 같은 또래의 우정을 나누는 친구나 미지의 존재로 은유 된 것들과의 동행이었다면, 이번 마히토의 여정은 세대의 가치와 자신만의 고유성을 확대하는 것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작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그려진 부해, 외부의 침략으로 망가진 이전 세상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재생해서 살 것인지에 맞닿는 지점이 있다.

다만 이번 작품에 대한 반응을 보자면 지브리 스튜디오로선 고민할 거리가 생긴 셈이다. 대중성 측면에서 외면받기 시작한다면 그들의 작품이 점점 '매니악' 스러운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을 본 관객들이라면 제목이 지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거창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향키로 생각하면 어떨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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