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뉴웨이브의 도래?
신인 감독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은
신인 감독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은
신인 감독들의 재기발랄하고 독창적인 생각으로 완성한 작품들로 인해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마치 코리안 뉴웨이브(새로운 물결)가 진행되는 것처럼 밀도 높은 스토리와 기성세대와는 다른 감각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 신인 감독 엄태화
지난 9일 개봉한 신인 감독 엄태화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높은 작품성으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23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95만2353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해 300만을 목전에 앞두고 있다. 또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이기도 하다. 소위 '박찬욱 키드'('쓰리 몬스터', '친절한 금자씨' 연출부 출신)라고 불리는 엄태화는 재난 상황 속 홀로 남은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포착한다. 엄태화 감독은 '사랑니 구멍을 메워줘'(2007), '촌철살인'(2011), '하트바이브레이터'(2011), '잉투기'(2013), '가려진 시간'(2016) 등 단편과 장편을 여러편 작업해온 기본기가 탄탄한 감독이다. 배우 엄태구의 형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개봉한 장편은 2개 밖에 없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신인이다.
■ '잠' 신인 감독 유재선 '박찬욱 키드'에 이어 '봉준호 키드'도 있다. 영화 '잠'의 신인 감독 유재선은 '옥자'(감독 봉준호)의 연출팀으로 일하면서 스토리보드 구성부터 연출 스타일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오는 9월 6일 개봉을 앞둔 '잠'은 신혼부부 현수(이선균)과 수진(정유미)의 삶에 갑자기 들어온 균열을 담고 있다. 잠들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남편 현수로 인해 고초를 겪는 수진의 모습을 포착한다.
한국 관객을 만나기 전,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된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 '잠'은 벌써 연이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영화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 없다는 유재선 감독은 영화 제작의 꿈을 키우기 위해 영화제작동아리에서 배우기도 했다고.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신인 감독 김성식
엄태화와 유재선에 이은 다른 신인 감독들의 출범도 눈에 띈다. 올 추석에 개봉을 앞둔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이하 '천박사')역시 신인감독의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김성식은 영화 '부산행'(2016/감독 연상호), 연출부, 기생충'(2019/감독 봉준호) 조감독, '헤어질 결심'(2022/감독 박찬욱) 조감독 등 많은 감독 밑에서 일하며 내공을 쌓은 바 있다. '천박사'는 김성식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 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강동원)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배우 강동원, 허준호, 이솜, 이동휘, 김종수 등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이들이 대거 출연한다. '천박사'는 웹툰 '빙의'(글 후렛샤, 그림 김홍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박찬욱, 봉준호, 연상호와 함께 작업한 바 있는 그가 어떤 식으로 데뷔작 안에 자신의 색깔과 내공을 넣었을지 주목되는 바다.
■ '화란' 신인 감독 김창훈 영화 '화란'의 김창훈 감독과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의 이충현 감독도 후발주자로 나섰다. 우선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배우 홍사빈, 송중기, 김형서(비비)가 출연한다. 제76회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해외 관객들을 먼저 만났다.
지옥 같은 삶에서 탈출을 원하는 연규(홍사빈)의 처절한 생존기를 그리는 '화란'을 연출한 김창훈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김창훈 감독은 단편영화 '댄스 위드 마이 마더'(2012)에서 균형이 무너진 모자 관계를 조명하기도 했다. 아직 '화란'의 개봉일은 미정인 상태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 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에 선정돼 개봉 전 아시안 프리미어로 공개될 예정이다.
■ '발레리나' 신인 감독 이충현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의 이충현 감독도 눈에 띈다.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옥주’가 가장 소중했던 친구 ‘민희’를 위해 펼치는 아름답고 무자비한 복수극을 그린 작품이다. 배우 전종서, 김지훈, 박유림이 출연한다. 단편 '몸값'에서 14분가량의 짧은 분량임에도 관객들을 사로잡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서사와 폭력적이지만 사회의 추악한 면을 뒤집은 반전 전개로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다.
2016년 한해에만 제33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부산 시네필 어워드, 제15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4만번의 구타 부문 최우수작품상, 제1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 경쟁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단편영화 '몸값'은 티빙 오리지널 '몸값'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후 영국 영화 '더 콜러'(2012/감독 매튜 파크 힐)을 리메이크한 '콜'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2020년 연출 데뷔를 하게 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를 앞둔 '발레리나'는 '한국 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에 선정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 공개된다. 영화사를 되돌아보면, 기성세대의 흐름에 새로움을 더하며 뉴웨이브를 만들었던 시기들이 존재했다. 프랑스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영화 운동인 누벨바그(Nouvelle Vague)로 기존의 영화 기법에 대항하며 신인 감독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가 등장했고, 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까지 월남전과 기성세대로부터 반항하며 아서 펜, 존 슐레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의 감독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독일에서는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낡은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로운 영화를 신봉한다"는 1962년 오버하우젠(Oberhausen) 선언을 외치며 변화가 시작됐다. 베르너 헤어조크, 빔 벤더스, 알렉산더 클루게 등의 재능 있는 신인 감독들이 등장하며 기존 할리우드의 오락성 영화 소비가 아닌 인간의 내면 심리를 조명하는 작품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어쩌면 2023년 대한민국은 소위 코리안 뉴웨이브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였던 2003년에 자신들의 색깔로 작가주의 영화를 만든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의 등장 이후 주춤했던 한국 영화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는지도 모른다. 우연하게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잠'의 유재선 감독, '천박사'의 김성식 감독은 전부 박찬욱, 봉준호와 함께 작업을 했던 경험이 있다. 기성세대의 가르침이 새로운 세대에게 이어져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드는 것은 아닐지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 '콘크리트 유토피아' 신인 감독 엄태화
지난 9일 개봉한 신인 감독 엄태화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높은 작품성으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23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95만2353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해 300만을 목전에 앞두고 있다. 또한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이기도 하다. 소위 '박찬욱 키드'('쓰리 몬스터', '친절한 금자씨' 연출부 출신)라고 불리는 엄태화는 재난 상황 속 홀로 남은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포착한다. 엄태화 감독은 '사랑니 구멍을 메워줘'(2007), '촌철살인'(2011), '하트바이브레이터'(2011), '잉투기'(2013), '가려진 시간'(2016) 등 단편과 장편을 여러편 작업해온 기본기가 탄탄한 감독이다. 배우 엄태구의 형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개봉한 장편은 2개 밖에 없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신인이다.
■ '잠' 신인 감독 유재선 '박찬욱 키드'에 이어 '봉준호 키드'도 있다. 영화 '잠'의 신인 감독 유재선은 '옥자'(감독 봉준호)의 연출팀으로 일하면서 스토리보드 구성부터 연출 스타일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오는 9월 6일 개봉을 앞둔 '잠'은 신혼부부 현수(이선균)과 수진(정유미)의 삶에 갑자기 들어온 균열을 담고 있다. 잠들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남편 현수로 인해 고초를 겪는 수진의 모습을 포착한다.
한국 관객을 만나기 전,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된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 '잠'은 벌써 연이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영화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 없다는 유재선 감독은 영화 제작의 꿈을 키우기 위해 영화제작동아리에서 배우기도 했다고.
■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신인 감독 김성식
엄태화와 유재선에 이은 다른 신인 감독들의 출범도 눈에 띈다. 올 추석에 개봉을 앞둔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이하 '천박사')역시 신인감독의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김성식은 영화 '부산행'(2016/감독 연상호), 연출부, 기생충'(2019/감독 봉준호) 조감독, '헤어질 결심'(2022/감독 박찬욱) 조감독 등 많은 감독 밑에서 일하며 내공을 쌓은 바 있다. '천박사'는 김성식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 같은 통찰력을 지닌 가짜 퇴마사 ‘천박사’(강동원)가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사건을 의뢰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배우 강동원, 허준호, 이솜, 이동휘, 김종수 등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이들이 대거 출연한다. '천박사'는 웹툰 '빙의'(글 후렛샤, 그림 김홍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박찬욱, 봉준호, 연상호와 함께 작업한 바 있는 그가 어떤 식으로 데뷔작 안에 자신의 색깔과 내공을 넣었을지 주목되는 바다.
■ '화란' 신인 감독 김창훈 영화 '화란'의 김창훈 감독과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의 이충현 감독도 후발주자로 나섰다. 우선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배우 홍사빈, 송중기, 김형서(비비)가 출연한다. 제76회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해외 관객들을 먼저 만났다.
지옥 같은 삶에서 탈출을 원하는 연규(홍사빈)의 처절한 생존기를 그리는 '화란'을 연출한 김창훈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김창훈 감독은 단편영화 '댄스 위드 마이 마더'(2012)에서 균형이 무너진 모자 관계를 조명하기도 했다. 아직 '화란'의 개봉일은 미정인 상태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 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에 선정돼 개봉 전 아시안 프리미어로 공개될 예정이다.
■ '발레리나' 신인 감독 이충현 넷플릭스 영화 '발레리나'의 이충현 감독도 눈에 띈다.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옥주’가 가장 소중했던 친구 ‘민희’를 위해 펼치는 아름답고 무자비한 복수극을 그린 작품이다. 배우 전종서, 김지훈, 박유림이 출연한다. 단편 '몸값'에서 14분가량의 짧은 분량임에도 관객들을 사로잡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서사와 폭력적이지만 사회의 추악한 면을 뒤집은 반전 전개로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다.
2016년 한해에만 제33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 부산 시네필 어워드, 제15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4만번의 구타 부문 최우수작품상, 제1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 경쟁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단편영화 '몸값'은 티빙 오리지널 '몸값'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후 영국 영화 '더 콜러'(2012/감독 매튜 파크 힐)을 리메이크한 '콜'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2020년 연출 데뷔를 하게 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를 앞둔 '발레리나'는 '한국 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에 선정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 공개된다. 영화사를 되돌아보면, 기성세대의 흐름에 새로움을 더하며 뉴웨이브를 만들었던 시기들이 존재했다. 프랑스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영화 운동인 누벨바그(Nouvelle Vague)로 기존의 영화 기법에 대항하며 신인 감독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가 등장했고, 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까지 월남전과 기성세대로부터 반항하며 아서 펜, 존 슐레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의 감독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독일에서는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낡은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로운 영화를 신봉한다"는 1962년 오버하우젠(Oberhausen) 선언을 외치며 변화가 시작됐다. 베르너 헤어조크, 빔 벤더스, 알렉산더 클루게 등의 재능 있는 신인 감독들이 등장하며 기존 할리우드의 오락성 영화 소비가 아닌 인간의 내면 심리를 조명하는 작품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어쩌면 2023년 대한민국은 소위 코리안 뉴웨이브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였던 2003년에 자신들의 색깔로 작가주의 영화를 만든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의 등장 이후 주춤했던 한국 영화에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는지도 모른다. 우연하게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잠'의 유재선 감독, '천박사'의 김성식 감독은 전부 박찬욱, 봉준호와 함께 작업을 했던 경험이 있다. 기성세대의 가르침이 새로운 세대에게 이어져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드는 것은 아닐지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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