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 많은 '비와 당신의 이야기'·'라스트 레터'
편지 소재+언니 대신 답장하는 동생
상투적 전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고의성' 없다면 표절 아냐
편지 소재+언니 대신 답장하는 동생
상투적 전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고의성' 없다면 표절 아냐
≪김지원의 인서트≫
영화 속 중요 포인트를 확대하는 인서트 장면처럼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매주 목요일 오후 영화계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입체적 시각으로 화젯거리의 앞과 뒤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클리셰와 상투성이 만들어낸 기시감'
어디서 본 듯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 지난달 개봉한 강하늘, 천우희 주연의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지난 2월 국내에서도 상영된 일본영화 '라스트 레터'를 연상시킨다. 두 영화가 편지를 소재로 했다는 점, 동생이 언니에게 온 편지에 대신 답장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 유사하기 때문.
완전히 새로운 소재, 완벽하게 다른 이야기란 찾기 어렵다. 오죽하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조차도 모방(mimesis)가 인간 본연의 마음이라고 했을까. 기존의 것을 비틀고 덧대는 등 과정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덧대는 정도의 차이에서 생긴다. 새로운 창조성의 정도에 따라 클리셰나 오마주로 인정 받기도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표절 논란이 일기도 한다.
다시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 영화가 '라스트 레터'를 베꼈다고 할 수 있을까. 먼저 두 작품의 유사한 점을 살펴보자.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는 아픈 언니 소연을 대신해 동생 소희(천우희 분)가 영호(강하늘 분)에게 답장을 한다. '라스트 레터'에서는 병치레가 잦던 언니 미사키가 죽은 후, 언니에게 온 쿄시로의 편지에 동생 유리가 답장을 한다. 하지만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미숙한 20대의 아련한 사랑과 점진적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라스트 레터'는 인생의 굴곡을 거쳐온 40대의 강렬한 첫사랑의 기억과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에 대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라스트 레터'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가 있다. 잔잔하고 느린 호흡과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서정적 전개, 아름다운 색감 등 일본영화 같은 감성을 갖고 있기 때문.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일본영화들을 오마주한 건 아닐까. 오마주란 특정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이용해 해당 작품에 존경을 표하거나 인상 깊었던 대사나 장면을 본떠 연출해 전달력과 이해도를 높이는 기법이다.
하지만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조진모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영화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라고 짤라 말했다. 오마주로 보기도 어렵다는 것. 기술적 면에서 두 영화가 비슷한 기법을 사용했을 뿐이고, 내용은 편지라는 공통의 소재를 사용하면서 우연적으로 비슷해진 것이다.
표절이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전부나 일부를 그대로, 또는 그 형태나 내용에 다소 변경을 가해 자신의 것으로 제공 또는 제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을 표절한 경우 저작권 침해로 본다.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침해자가 저작자의 저작물의 창작적 표현을 복제했는지를 살핀다. 이후 침해자가 저작자의 저작물에 '의거', 즉 고의적으로 이용했는지를 본 뒤 저작자의 저작물과 침해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지 까지 검토한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경우 소재나 연출 기법 면에서 '라스트 레터'와 비슷한 점은 있으나 고의성이 없고 내용 면에서도 차이가 있으므로 표절이 아닐 수 있다. 일본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조 감독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도, 영화를 본 뒤 관객들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다. 관객들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큰 건 왜일까. 결국은 클리셰의 문제다. 클리셰란 영화나 드라마, 문학작품 등에서 상투적인 전개, 캐릭터, 상황 등을 일컫는 용어다. 첫사랑, 편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 등 뻔한 소재들로 과거 일본영화에 자주 사용됐던 아련한 감성을 영화 내내 가져간다. 청춘남녀가 만들어갈 전개도 예상 가능하다. 새롭지 못했다. 이런 '진부함'이 '기시감'을 만들어냈다.
길거리에 흔히 보이던 빨간 우체통을 못 본지 수년이 된 것 같다. 세월의 흐름과 급변하는 트렌드가 만든 변화일께다. 스크린 안에서만 존재하는 우체통을 놔줄 때도 된 것 같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영화 속 중요 포인트를 확대하는 인서트 장면처럼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매주 목요일 오후 영화계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입체적 시각으로 화젯거리의 앞과 뒤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클리셰와 상투성이 만들어낸 기시감'
어디서 본 듯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 지난달 개봉한 강하늘, 천우희 주연의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지난 2월 국내에서도 상영된 일본영화 '라스트 레터'를 연상시킨다. 두 영화가 편지를 소재로 했다는 점, 동생이 언니에게 온 편지에 대신 답장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 유사하기 때문.
완전히 새로운 소재, 완벽하게 다른 이야기란 찾기 어렵다. 오죽하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조차도 모방(mimesis)가 인간 본연의 마음이라고 했을까. 기존의 것을 비틀고 덧대는 등 과정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덧대는 정도의 차이에서 생긴다. 새로운 창조성의 정도에 따라 클리셰나 오마주로 인정 받기도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표절 논란이 일기도 한다.
다시 '비와 당신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 영화가 '라스트 레터'를 베꼈다고 할 수 있을까. 먼저 두 작품의 유사한 점을 살펴보자.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는 아픈 언니 소연을 대신해 동생 소희(천우희 분)가 영호(강하늘 분)에게 답장을 한다. '라스트 레터'에서는 병치레가 잦던 언니 미사키가 죽은 후, 언니에게 온 쿄시로의 편지에 동생 유리가 답장을 한다. 하지만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미숙한 20대의 아련한 사랑과 점진적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라스트 레터'는 인생의 굴곡을 거쳐온 40대의 강렬한 첫사랑의 기억과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에 대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라스트 레터'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가 있다. 잔잔하고 느린 호흡과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서정적 전개, 아름다운 색감 등 일본영화 같은 감성을 갖고 있기 때문.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일본영화들을 오마주한 건 아닐까. 오마주란 특정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이용해 해당 작품에 존경을 표하거나 인상 깊었던 대사나 장면을 본떠 연출해 전달력과 이해도를 높이는 기법이다.
하지만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조진모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영화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라고 짤라 말했다. 오마주로 보기도 어렵다는 것. 기술적 면에서 두 영화가 비슷한 기법을 사용했을 뿐이고, 내용은 편지라는 공통의 소재를 사용하면서 우연적으로 비슷해진 것이다.
표절이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전부나 일부를 그대로, 또는 그 형태나 내용에 다소 변경을 가해 자신의 것으로 제공 또는 제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을 표절한 경우 저작권 침해로 본다. 저작권 침해를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침해자가 저작자의 저작물의 창작적 표현을 복제했는지를 살핀다. 이후 침해자가 저작자의 저작물에 '의거', 즉 고의적으로 이용했는지를 본 뒤 저작자의 저작물과 침해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지 까지 검토한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경우 소재나 연출 기법 면에서 '라스트 레터'와 비슷한 점은 있으나 고의성이 없고 내용 면에서도 차이가 있으므로 표절이 아닐 수 있다. 일본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조 감독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도, 영화를 본 뒤 관객들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다. 관객들이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큰 건 왜일까. 결국은 클리셰의 문제다. 클리셰란 영화나 드라마, 문학작품 등에서 상투적인 전개, 캐릭터, 상황 등을 일컫는 용어다. 첫사랑, 편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 등 뻔한 소재들로 과거 일본영화에 자주 사용됐던 아련한 감성을 영화 내내 가져간다. 청춘남녀가 만들어갈 전개도 예상 가능하다. 새롭지 못했다. 이런 '진부함'이 '기시감'을 만들어냈다.
길거리에 흔히 보이던 빨간 우체통을 못 본지 수년이 된 것 같다. 세월의 흐름과 급변하는 트렌드가 만든 변화일께다. 스크린 안에서만 존재하는 우체통을 놔줄 때도 된 것 같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