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무환(無患) : 영화를 보면 근심이 없음을 뜻한다
대재난은 당사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단골 재료이기도 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영화를 만든다면, 시나리오 작가의 시선이 멈출만한 소재가 있다. '바이러스 배양 접시'라는 오명을 쓴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다. 3711명 승객중 700명 이상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 이들이 모두 하선하는데 28일이 걸렸다. 이 배에 잠시 승선했던 일본 고베대 의대 교수는 "에볼라, 사스, 메르스 등 어떤 바이러스도 두렵지 않았지만, 이 배에서 만큼은 무서워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한 목숨 더 원합니까. 그럼 나를 데려 가십시오."
풍요의 시대를 지나 전쟁, 오일쇼크 등으로 불안과 위기감이 팽배하던 1970년대 할리우드에는 재난영화가 쏟아졌다. 비행기 사고를 다룬 '에어포트' 시리즈나 대형건물의 화재와 여객선 전복을 소재로 한 '타워링 인페르노'와 '포세이돈 어드벤처' 등이 당시 큰 인기를 끈 제한된 공간속 재난영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재난영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1978년작 '포세이돈 어드벤처'다.
재난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여객선이나 비행기, 빌딩처럼 재난이 일어난 작은 공간이 우리 삶의 축소판이라는 점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12월 31일 밤 송년 파티가 한창이던 때 배가 큰 파도를 맞아 뒤집히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고의 원인은 자연재해만은 아니다. 배의 속력을 높여 선전효과와 함께 비용을 절감하려는 선주의 탐욕으로 무리한 운항을 한 것이 화를 키웠다. 영화는 이후 수백 명의 승객 중 살아남은 9명이 뒤집힌 배에서 가장 높은 곳이 된 배 밑바닥을 찾아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 6명이 생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리더의 설득과 소통, 방법론을 둘러싼 대립과 분열, 희망과 좌절, 희생과 이기심, 분노, 증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과 이에 대한 수용 등 우리 삶을 이루는 감정과 가치관들이 호소력 있게 전달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두 사람의 절규다. 전직 경찰 마이크(어네스트 보그나인)는 신혼여행을 같이 가던 부인을 잃고서는 울부짖는다. 그의 부인은 매춘부다. 그녀가 매춘부를 그만두고 자신과 결혼 하도록 하기 위해 6번이나 체포했을 정도로 사랑했다. 스스로를 '화내고 비판하고 반항하는 성직자'라고 부르는 실존주의 목사 스콧(진 핵크만)의 절규는 구약 성경속 '욥의 원망'을 연상시킨다.
생존 승객의 탈출을 이끌던 그는 배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인 해치에 이르게 된다. 해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누군가 뜨거운 증기를 맞으며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결국 자신이 그 일을 떠맡으며 신에게 이렇게 외친다. "우리에게 무얼 더 바랍니까. 우리는 당신 도움 하나 없이 스스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합니까. 한 목숨 더 원하십니까. 그럼 나를 데려 가십시오" 그렇게 해치문을 열고 자신은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진다.
남은 일행들은 그 문을 통해 뒤집힌 배의 가장 높은 곳으로 나아가 헬기에 의해 구출된다. 용기와 희생의 리더십을 열연했던 진 핵크만은 아이러니하게도 23년 뒤에도 배를 무대로 한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는 비열한 잠수함장 역을 맡았다. "내가 죽으면 내 살도 먹어라"
제한된 공간 속 재난을 다룬 영화중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는 '얼라이브'와 '33'이 있다. 두 영화 모두 장기간 생존 투쟁을 벌이다 구출된 사람들의 감동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얼라이브'는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 대학 럭비팀 등 45명을 태우고 칠레로 향하던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을 넘다 추락한 사고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날개와 꼬리가 잘린 채 동체만 남은 비행기는 해발 4000m, 영하38도의 눈 덮인 산악지대에 고립된다. 모든 통신수단이 두절된데다 구조 당국마저 수색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모든 재난영화가 그러하듯 이 영화도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은 리더십이다. 사고 초기 생존자들을 이끌 던 럭비팀 주장은 식량 배급을 조절하고, 사망자를 눈밭 한곳에 모아놓고, 용변을 볼 곳을 구획하는 등 통제와 관리의 리더십에 치중 했다. 그러나 식량이 떨어지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서 리더십도 힘을 잃게 됐다.
이때 등장하는 새 리더가 럭비팀 부원중 한 사람이자 사고로 사랑하는 여동생을 잃은 난도(에단 호크)다. 그는 구조대가 수색을 중지했다는 뉴스를 희소식이라며 생존자들에게 전한다.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갈 기회라며, 이를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하고, 그 방법으로는 인육을 먹는 것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인육에 대한 죄책감과 역겨움으로 반대가 들끊자 동료인 의대생 로베르토(조쉬 해밀턴)가 난도를 지지하고 나선다.
그는 "내가 죽으면 나를 먹어도 좋다"며 우리 모두 죽었을 때 서로를 식량으로 쓸 수 있도록 하자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또 "배에 고기를 넣은 이상 뭔가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며 마냥 구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지만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 민가에 가야만 살 수 있다고 호소한다. 이후 두 사람은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칠레 마을쪽에 도착해 생존을 알렸고, 72일 만에 생존자들이 모두 구출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얼라이브는 한때 경영대학원 MBA 과정 내 인사관리 과목의 단골 리포트감이 될 정도로 리더십의 좋은 사례가 되는 영화다. 리더십의 유형은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한다. 사고 초기에는 관리와 통제의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난도와 로베르토가 보여준 비전제시와 설득, 솔선수범의 리더십이다. 후에 심장병 전문의가 된 로베르토 카네사가 쓴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I had to survive)란 회고록을 바탕으로 1993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하 700미터 막장에서 33인 광부의 69일간 생존기
'33'은 2010년 칠레의 한 금구리 광산 매물 사고로 700m 지하, 5m 공간의 대피소에 갇힌 33인 광부들의 생존기다.165g짜리 참치캔 하나를 이틀에 걸쳐 33명이 나눠 먹어야 할 정도록 굶주림에 고통받던 그들에게 매몰 17일째 기적이 일어난다.
구조대가 내려보낸 줄이 그들에게 닿았고, 거기에 33명 모두 괜찮다'는 쪽지를 달아 보내면서 구조 작업은 칠레를 넘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차례로 구조대를 보내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2개에 맞먹는 70만t 무게의 암반을 정확한 각도로 뚫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미국 전문가들이 나섰고, 고난이도의 구조 작업이 극적으로 성공을 거둬 매몰 69일 만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지원한 구조 캡슐을 통해 33명 전원을 끌어 올린다. 그들의 구출 모습은 전세계 10억 명이 지켜본 지구촌 이벤트였다. 이들은 생존이 알려진 뒤 밧줄을 통해 음식물과 의복, 심지어 도색잡지까지 제공받았기 때문에 영화는 '얼라이브'에서처럼 극한의 고통보다는 생존자들의 심리적 갈등과 그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랑은 재난을 타고 온다'는 말처럼 이 사고를 계기로 갈라진 가족 관계가 복원되거나 차별받는 볼리비아인을 끌어안는 것과 같은 마음의 치유 과정을 다루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생존자들의 리더 격인 마리오(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동료들 몰래 출판계약을 맺은 일이 발각되면서 곤욕을 치른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들은 세 그룹으로 갈라져 서로 공간을 차지하려고 주먹다툼까지 벌였다고 한다. 공포로 인해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연스런 반작용인 것 같다. 희생의 피로 닦은 구원의 길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은 한국 재난영화에서 손꼽히는 수작이다. KTX라는 비좁은 공간에서 좀비와의 사투를 설정한 것은 꽤나 독창적이다. 이 영화 역시 '포세이돈 어드벤처'이래 재난영화의 기본 얼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재난의 원인은 인간(작전주로 삼은 바이오 회사에서 바이러스 유출)에게 있고,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인간 유형(고속버스 회사 상무)이 끝까지 방해한다.
리더(마동석과 공유)들의 헌신적 희생을 통해 구원(부산)을 향한 필사적 투쟁이 전개되며, 어린 아이들(정유경의 뱃속 아이와 공유의 어린 딸)에게서 미래 희망을 발견한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안에서 28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재난 영화의 공식에 맞는 요소들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잘못된 대응은 초기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자국민을 배에서 빼내는 구출 작전을 실시했다. 훗날 진실들이 알려지겠지만, 이 배에서도 공포, 분열, 대립, 이기심, 희생, 사랑 등으로 버무러진 크고 작은 일들이 곳곳에 숨어있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요즘이다. 지금은 전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사람들은 결국 이겨낼 것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생존자들이 배를 빠져나와 푸른 하늘을 만나게 된 것처럼, '얼라이브'의 청년들이 험준한 설산에서 구조된 것처럼, '33'의 광부들이 눈부신 햇빛을 다시 보게 된 것처럼. '부산행'의 어린 딸 수안이가 터널을 빠져 나오며 불렀던 '알로하오에'의 가사 한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준다.
풍요의 시대를 지나 전쟁, 오일쇼크 등으로 불안과 위기감이 팽배하던 1970년대 할리우드에는 재난영화가 쏟아졌다. 비행기 사고를 다룬 '에어포트' 시리즈나 대형건물의 화재와 여객선 전복을 소재로 한 '타워링 인페르노'와 '포세이돈 어드벤처' 등이 당시 큰 인기를 끈 제한된 공간속 재난영화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재난영화의 고전으로 불리는 1978년작 '포세이돈 어드벤처'다.
재난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여객선이나 비행기, 빌딩처럼 재난이 일어난 작은 공간이 우리 삶의 축소판이라는 점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12월 31일 밤 송년 파티가 한창이던 때 배가 큰 파도를 맞아 뒤집히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고의 원인은 자연재해만은 아니다. 배의 속력을 높여 선전효과와 함께 비용을 절감하려는 선주의 탐욕으로 무리한 운항을 한 것이 화를 키웠다. 영화는 이후 수백 명의 승객 중 살아남은 9명이 뒤집힌 배에서 가장 높은 곳이 된 배 밑바닥을 찾아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 6명이 생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리더의 설득과 소통, 방법론을 둘러싼 대립과 분열, 희망과 좌절, 희생과 이기심, 분노, 증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과 이에 대한 수용 등 우리 삶을 이루는 감정과 가치관들이 호소력 있게 전달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두 사람의 절규다. 전직 경찰 마이크(어네스트 보그나인)는 신혼여행을 같이 가던 부인을 잃고서는 울부짖는다. 그의 부인은 매춘부다. 그녀가 매춘부를 그만두고 자신과 결혼 하도록 하기 위해 6번이나 체포했을 정도로 사랑했다. 스스로를 '화내고 비판하고 반항하는 성직자'라고 부르는 실존주의 목사 스콧(진 핵크만)의 절규는 구약 성경속 '욥의 원망'을 연상시킨다.
생존 승객의 탈출을 이끌던 그는 배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인 해치에 이르게 된다. 해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누군가 뜨거운 증기를 맞으며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결국 자신이 그 일을 떠맡으며 신에게 이렇게 외친다. "우리에게 무얼 더 바랍니까. 우리는 당신 도움 하나 없이 스스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합니까. 한 목숨 더 원하십니까. 그럼 나를 데려 가십시오" 그렇게 해치문을 열고 자신은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진다.
남은 일행들은 그 문을 통해 뒤집힌 배의 가장 높은 곳으로 나아가 헬기에 의해 구출된다. 용기와 희생의 리더십을 열연했던 진 핵크만은 아이러니하게도 23년 뒤에도 배를 무대로 한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는 비열한 잠수함장 역을 맡았다. "내가 죽으면 내 살도 먹어라"
제한된 공간 속 재난을 다룬 영화중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는 '얼라이브'와 '33'이 있다. 두 영화 모두 장기간 생존 투쟁을 벌이다 구출된 사람들의 감동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얼라이브'는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 대학 럭비팀 등 45명을 태우고 칠레로 향하던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을 넘다 추락한 사고를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날개와 꼬리가 잘린 채 동체만 남은 비행기는 해발 4000m, 영하38도의 눈 덮인 산악지대에 고립된다. 모든 통신수단이 두절된데다 구조 당국마저 수색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모든 재난영화가 그러하듯 이 영화도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은 리더십이다. 사고 초기 생존자들을 이끌 던 럭비팀 주장은 식량 배급을 조절하고, 사망자를 눈밭 한곳에 모아놓고, 용변을 볼 곳을 구획하는 등 통제와 관리의 리더십에 치중 했다. 그러나 식량이 떨어지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서 리더십도 힘을 잃게 됐다.
이때 등장하는 새 리더가 럭비팀 부원중 한 사람이자 사고로 사랑하는 여동생을 잃은 난도(에단 호크)다. 그는 구조대가 수색을 중지했다는 뉴스를 희소식이라며 생존자들에게 전한다.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갈 기회라며, 이를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하고, 그 방법으로는 인육을 먹는 것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인육에 대한 죄책감과 역겨움으로 반대가 들끊자 동료인 의대생 로베르토(조쉬 해밀턴)가 난도를 지지하고 나선다.
그는 "내가 죽으면 나를 먹어도 좋다"며 우리 모두 죽었을 때 서로를 식량으로 쓸 수 있도록 하자고 동료들을 설득했다. 또 "배에 고기를 넣은 이상 뭔가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며 마냥 구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지만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 민가에 가야만 살 수 있다고 호소한다. 이후 두 사람은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결국 칠레 마을쪽에 도착해 생존을 알렸고, 72일 만에 생존자들이 모두 구출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얼라이브는 한때 경영대학원 MBA 과정 내 인사관리 과목의 단골 리포트감이 될 정도로 리더십의 좋은 사례가 되는 영화다. 리더십의 유형은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한다. 사고 초기에는 관리와 통제의 리더십이 필요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난도와 로베르토가 보여준 비전제시와 설득, 솔선수범의 리더십이다. 후에 심장병 전문의가 된 로베르토 카네사가 쓴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I had to survive)란 회고록을 바탕으로 1993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하 700미터 막장에서 33인 광부의 69일간 생존기
'33'은 2010년 칠레의 한 금구리 광산 매물 사고로 700m 지하, 5m 공간의 대피소에 갇힌 33인 광부들의 생존기다.165g짜리 참치캔 하나를 이틀에 걸쳐 33명이 나눠 먹어야 할 정도록 굶주림에 고통받던 그들에게 매몰 17일째 기적이 일어난다.
구조대가 내려보낸 줄이 그들에게 닿았고, 거기에 33명 모두 괜찮다'는 쪽지를 달아 보내면서 구조 작업은 칠레를 넘어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차례로 구조대를 보내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2개에 맞먹는 70만t 무게의 암반을 정확한 각도로 뚫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미국 전문가들이 나섰고, 고난이도의 구조 작업이 극적으로 성공을 거둬 매몰 69일 만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지원한 구조 캡슐을 통해 33명 전원을 끌어 올린다. 그들의 구출 모습은 전세계 10억 명이 지켜본 지구촌 이벤트였다. 이들은 생존이 알려진 뒤 밧줄을 통해 음식물과 의복, 심지어 도색잡지까지 제공받았기 때문에 영화는 '얼라이브'에서처럼 극한의 고통보다는 생존자들의 심리적 갈등과 그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랑은 재난을 타고 온다'는 말처럼 이 사고를 계기로 갈라진 가족 관계가 복원되거나 차별받는 볼리비아인을 끌어안는 것과 같은 마음의 치유 과정을 다루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생존자들의 리더 격인 마리오(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동료들 몰래 출판계약을 맺은 일이 발각되면서 곤욕을 치른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들은 세 그룹으로 갈라져 서로 공간을 차지하려고 주먹다툼까지 벌였다고 한다. 공포로 인해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연스런 반작용인 것 같다. 희생의 피로 닦은 구원의 길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은 한국 재난영화에서 손꼽히는 수작이다. KTX라는 비좁은 공간에서 좀비와의 사투를 설정한 것은 꽤나 독창적이다. 이 영화 역시 '포세이돈 어드벤처'이래 재난영화의 기본 얼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재난의 원인은 인간(작전주로 삼은 바이오 회사에서 바이러스 유출)에게 있고,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인간 유형(고속버스 회사 상무)이 끝까지 방해한다.
리더(마동석과 공유)들의 헌신적 희생을 통해 구원(부산)을 향한 필사적 투쟁이 전개되며, 어린 아이들(정유경의 뱃속 아이와 공유의 어린 딸)에게서 미래 희망을 발견한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안에서 28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재난 영화의 공식에 맞는 요소들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잘못된 대응은 초기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자국민을 배에서 빼내는 구출 작전을 실시했다. 훗날 진실들이 알려지겠지만, 이 배에서도 공포, 분열, 대립, 이기심, 희생, 사랑 등으로 버무러진 크고 작은 일들이 곳곳에 숨어있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는 요즘이다. 지금은 전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사람들은 결국 이겨낼 것이다.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생존자들이 배를 빠져나와 푸른 하늘을 만나게 된 것처럼, '얼라이브'의 청년들이 험준한 설산에서 구조된 것처럼, '33'의 광부들이 눈부신 햇빛을 다시 보게 된 것처럼. '부산행'의 어린 딸 수안이가 터널을 빠져 나오며 불렀던 '알로하오에'의 가사 한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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