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 다시 살펴보면 좋을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나 ‘위 아 영’(2013) 등 주변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바 있는 바움백 감독이 이번에는 이혼으로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린 영화를 선보였다. 제목은 아이러니 하게 ‘결혼 이야기’로 붙였는데 결혼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기보다 오히려 영화를 통해 관객 자신의 결혼에 대해 심사숙고해보라는 의미가 담겼을 성싶다. 감독은 자료를 얻기 위해 “내 주변에 이혼한 친구들이 많이 늘었다. 그래서 실제로 이혼한 부부와 그들을 지켜보는 친지들, 심리상담가, 변호사, 판사들과 인터뷰를 가능한 한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감독의 수소문(?) 덕분인지 어떻게 이혼 절차가 진행되는지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부부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조정기간을 가진다. 이 때 조정관으로 활약하는 사람은 심리전문가다. 여기서 해결나지 않으면 부부 중 한 쪽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어서 다른 한 쪽도 변호사를 선임한다. 부부의 법률지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범위로 이혼 절차가 넘어가기 때문이다. 대체로 재산권과 양육권이 법정투쟁의 주요 사안이고 결국 판사의 결정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가족의 현 상태를 감정하는 전문가까지 등장한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비슷한 설정의 영화로 ‘크레이머 vs 크레이머’(1979)가 있지만 ‘결혼 이야기’의 분위기는 훨씬 냉정하다. 말하자면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혼 절차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에는 세 명의 변호사가 나온다. 노라(로라 던)와 제이(레이 리오타)와 버트(알란 알다)이다. 버트는 의뢰인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제이는 합리적인 해결을 원하고 노라는 의뢰인의 승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만일 찰리 쪽에서 노라를 고용했더라면 영화의 결말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들 변호사들은 이미 수차례 맞붙은 바 있어,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예의를 갖추지만 일단 법정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인다. 이 대목에서 노라와 제이의 대사는 환상적이었고, 이는 또한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도대체 변호사들의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기는 하는 걸까? 멋진 연기 덕에 로라 던이 2020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획득했다. 니콜을 처음 만난 날, 노라가 옆으로 찰싹 붙어 앉는 장면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좋았지만 어쩔 수 없는 끌려가는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정말 뛰어났다. 사랑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르는 노래가 심금을 울리는 이유다. 같은 남자라서 그런가? 마지막으로 치른 치열하고 살벌한 싸움 끝에 마침내 찰리는 소리 지른다. “나는 당신이 차에 치어 죽기를 바래!” 끝장 부부싸움은 그렇게 서슬이 시퍼랬으나 다른 한 편 가슴을 울리는 구석이 있었다.
“나를 잠시 추켜세우고, 곧 지옥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람, 내가 살아있도록 만드는 사람. (Somebody pull me up short, and put me through hell, and give me support for being alive.)” 뮤지컬 Company에 나오는 Being alive의 가사다. 아담 드라이버가 그렇게 노래를 잘 하는지 미처 몰랐다. 영화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빤한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와 탄탄한 각본 덕분이다. 한 때 그처럼 사랑한 사람이었는데.
비록 수상을 못했지만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노아 바움벡) 후보에 올랐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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