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디가 아니라 싸이먼 D다. 사투리 강한 억양으로 변칙 토크를 구사하던 예능계의 유망주는 다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음 맞는 친구 랍티미스트와 함께 < SNL LEAGUE BEGINS >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가사를 주로 화장실에서 쓰는데, 이번 앨범 작업 하면서 큰 일 날 뻔 했어요. 너무 오래 쓰는 바람에…… 그런데 진짜 암모니아에 두뇌 활동을 자극하는 성분이 있대요, 진짜!” 거침없는 입담은 여전하지만, 능글맞던 청년은 좀 더 진지하고 담대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누구의 깃발도 쳐다보지 않고 자신의 이정표를 스스로 꽂을 줄 아는 사람의 무게를 짊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이먼 D가 펼쳐 보인 지도에서 지나온 길은 솔직하고, 나아갈 길은 흥미롭다. 더해진 무게만큼 발자국은 뚜렷한 법이다.앨범에 사진 대신 만화를 넣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싸이먼 D : 옛날부터 갖고 있던 아이디어다. 워낙 영웅물이나 카툰을 좋아해서 커버 디자인 하는 친구에게 툭 던졌는데, 고생해서 그림을 그려줬다. 잘 보면 등장인물들이 다 주변 사람들이다. 매니저까지 출연한다. 나는 말만 하면 되는데, 그리는 친구가 힘들었을 거다. 회사에서는 빨리 달라고 쪼고, 중간에서 내가 작업할 시간을 벌어주려고 힘을 좀 썼다. 하하.
정작 본인은 앨범 프로듀서인 랍티미스트를 굉장히 ‘쪼았다고’ 들었는데. (웃음) 곡이 나오는 속도보다 본인의 작업 속도가 빨랐나보다.
싸이먼 D : 열정이 엄청났다. 앨범 준비를 하면서 예능 방송을 다 접었는데, 그때부터 이미 오로지 앨범 작업을 하겠다는 열정 밖에 없었다. 스튜디오로 돌아갔을 때는 의욕이 미친 듯이 넘쳐나서 곡 하나 쓸 때 가사를 두개씩 뚝딱 써 냈다. 그래서 랍티미스트에게 심한 말도 많이 하고 그랬지. 곡 잘 나왔다고 자랑은 하면서 빨리 안 들려 주니까, 나는 애가 타고, 걔는 안 그래도 잠수 잘 타기로 유명한 앤데 연락은 잘 안되고 하니까.
“작업을 하면서 좀 철이 든 것 같기도 하다” 뭔가 밀당 같은 것이, 연애담을 듣는 기분이다. (웃음)
싸이먼 D : 연애나 마찬가지였다. 전화 안 받으면 30통씩 부재중 통화 남기고, 잡히면 가만 안둔다고 문자고 계속 보내고. 그런데 그게 의미는 우리 헤어져, 그런 거다. 속으로는 잡아주기를 바라면서. 큭.
파트너를 밀어 부칠 때는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얘긴데, 작업에 관한 방황은 없었나 보다.
싸이먼 D : 거의 내 생각의 80%가 다 담겨 있다. 정규 1집을 원래 준비 했었는데, 랍티미스트와 둘의 작업물이라는 느낌이 강해져서 ‘SNL 리그’라는 프로젝트로 전환하기는 했지만 내 평소 취향과 스타일이 잘 반영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앨범 성공여부를 떠나서 만드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즐겁고 행복했다.
솔로 앨범 작업 자체가 만족스럽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슈프림팀으로 작업할 때의 불만을 해소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싸이먼 D : 센스랑 작업을 할 때 힘들었던 점은, 원래 둘 다 솔로로 하던 애들이라서 자꾸 서로의 색깔을 깎아 내야 했다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너희 변했어’라고 하는 말도 맞는 게, 서로 양보를 계속 해야 하니까 처음의 모습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MC와 MC가 더해지면 1이 되어야 하니까 각자 0.5씩 포기를 해야만 하는 거다. 하지만 SNL 리그는 MC와 프로듀서의 조합이다 보니까 서로의 1을 갖고 갈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 이센스랑 슈프림팀 앨범을 만들 때도 MC 끼리의 마찰은 피하고 서로의 색깔을 온전히 갖고 갈 수 있는 방향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동안 솔로의 목소리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고여 있었겠다.
싸이먼 D : 무엇보다, 음악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을 스스로 칭찬하고 싶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 하던 놈이 메이저 데뷔도 하고, 예능도 겪고, 이런 저런 불편함이나 비즈니스를 감수하면서 결국 음악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은 거다. 이 앨범은 나에게 일종의 보상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계산을 먼저 한 노래는 한 곡도 없다.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워 지니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거다. 하지만 할 얘기가 많다고 다 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껏, 적당히 하는 거지. 하하하.
언더그라운드 솔로 시절과 비교하면 구구절절함이 없어졌다는 느낌을 받기는 한다. ‘퍽이나’에서 ‘부산에서 뭐 하던 놈인지 알아봐라’라고 던지는 부분은 웬만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가사다.
싸이먼 D : 그렇지. 수소문 해보라는 거다. 특히 ‘퍽이나’는 가사를 진짜 술술 써내려간 곡이다. 수정한 부분도 없었다. 언더그라운드를 꼬집기도 하고, 메이저로 나와서 느낀 점도 있고,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비꼬았다. ‘땡땡땡’이나 ‘슈퍼매직’처럼 파워풀한 우리 스타일과 너무 다른 ‘그땐그땐그땐’을 불렀던 걸 사과 했는데, 대중적인 성공도 물론 감사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찝찝한 게 있었던 거지. 하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가사로 설명을 했고, 결국은 내가 돌아 왔음을 알리는 노래다.
돌아왔지만 예전의 싸이먼 D와 같은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시절의 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싸이먼 D : 옛날 싸이먼 D는 돌아올 수 없다. 그때는 너무 어렸고, 분노에 가득 차서 밑도 끝도 없이 세상과 사회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까던 시절이었다.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때도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있었다. 결국 듣는 사람들의 기준은 각자 다르고, 나는 내 ‘쪼’대로 해야겠다 싶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들을 사람만 들어라, 그런 오기도 있었고 악플러들 보면서 속으로 엄청나게 분노하기도 했다. 아이피 추적해서 혼내 줄 거라고. 그런데 한살 더 먹고 나니까 이제는 마음이 그냥 편하다. 할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사람들이 내 진심을 받아주기를 바랄 뿐이고. 작업을 하면서 좀 철이 든 것 같기도 하다.
“건방지다는 말을 들어도 꾸미긴 싫다” 가사를 보면서 스스로 깨닫기도 하겠다. 내가 이만큼 달라졌구나 하고.
싸이먼 D : 쓰면서 이미 느낀다. 어느 정도 시스템을 알게 되고 게임의 법칙을 알게 되면서 작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에는 무작정 하면 되지만 알수록 힘들어진다. 이제는 한걸음 뒤에서 보고 있다가 어느 정도 타협하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인생이 흘러가는 과정이나 힘든 점을 가사에 굳이 티 안내려고 한 부분도 있다. 징징거리는 것처럼 보일까봐.
징징거리는 건, 확실히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무슨 얘기를 해도 싸이먼 D는 ‘간지’가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웃음)
싸이먼 D : 멋있는 거, 때깔, 그런 거 중요하다. 나는 힙합이 멋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힙합을 좋아한다. 어떤 슬픔, 아픔, 심지어 ‘찌질함’을 말해도 힙합은 멋있게 그걸 포장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들으면서도 아픈 이야기를 하지만 음악 자체는 멋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 상반된 감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더 노력 할 거고.
그런 생각은 본인이 힙합으로부터 ‘넌 멋있다’는 위로를 받았기 때문일까
싸이먼 D : 그렇다. 살면서 힘들었던 과정에 힙합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아니, 모든 음악이 다 힘이 되었다. 친구들이 눈이랑 귀, 둘 중에 뭘 포기하겠냐고 장난삼아 물은 적 있다. 나는 시력을 포기하겠다.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창작할 수 있는 혀와 귀를 놓고 선택 해보자. (웃음)
싸이먼 D : 혀를 포기 해야지. 음악은 일상의 한 부분이다. 적어도 하루에 3시간은 꼭 음악을 듣는데 쓴다.
음악에 관한한 마음가짐은 영락없는 ‘히어로’인데, 자꾸 자신을 안티 히어로로 이미지 메이킹 하는 것 같다. 기존 질서에 불만이 있기 때문일까.
싸이먼 D : 1등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히어로는 착해야 하고 가식을 떨어야 하는데, 그런 게 싫은 거다. 걔네도 얼마나 힘들겠나. 하하하. 그래서 나는 방송에서도 예의 바른 척 안한다. 예능에서 재미없고 피곤하면 그대로 티를 내니까 건방지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걸 꾸미기 싫다. 그게 내 모습이니까.
그런데 결국은 사람들이 그런 당신을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당신에게 적응을 했다.
싸이먼 D : 못 고친다. 고치려고 노력도 안 해봤고.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게, 나는 안티도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나쁜 사람이 많아야 좋은 사람도 빛나는 거고. 그런 의미로 이상하게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는데, 나쁜 일이 터지면 오히려 ‘그래, 한번쯤 터질 때도 됐지. 언제까지 좋을 수는 없잖아.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려고 지금 이러는구나’ 하면서 변태적인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인가.
싸이먼 D : 어려서부터 힘들어봤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행복하게 살다가도 고통이 오면 한 번씩 변화가 생기지 않나. 그 고통이 주는 변화가 좋다.
“올해는 냉정함과 절제를 업데이트 했다” 그런 생각들이 ‘짠해’ 처럼 어른스러운 가사의 밑바탕인가 보다.
싸이먼 D : ‘짠해’는 그냥 술자리에서 친구랑 있을 때 소맥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 같은 건데, 그보다는 ‘에헤이’를 듣고 주변에 있는 형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하더라. “기석아, 니는 안늙을 줄 알았는데 벌써 늙었구나.” 하하하. 그런 반응이 재밌더라. 나도 작년까지 내가 스물둘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언제 현실의 나이를 깨달았나.
싸이먼 D : 올해 1월 1일에 느꼈다. 한 살씩 먹어가면서 성격이 계속 바뀌는 것 같은데, 올해는 냉정함과 절제를 업데이트 했다. 레벨이 올랐다. 이제 레벌 29에 온 거지.
1월부터 계획을 다진다는 얘긴데, 치밀해 보인다.
싸이먼 D : 생긴 거에 비해서 계획적인 사람이다. 말은 무심한 척 하면서 집에 가면 자연스럽게 이미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걸 상상하고 말이다. 으하하하. 어쩐지 양아치 같고, 아무 것도 안 할 것 같아 보이는데 의외로 성실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반전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 같고.
앨범에서 가장 큰 반전은 보컬리스트로서의 능력이었다. ‘혼자만 남은 오후’의 노래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싸이먼 D : 그 노래는 아예 데미언 말리 같은 레게 뮤지션에게 빙의 한 거다. 녹음 할 때 정신 나간 놈처럼 몰입해서 불렀는데, 그래서 내 목소리가 안 나왔다. 아마 그 곡은 라이브는 못할 거다. 흐흐흐. 그리고 아직 보컬리스트로서 긴 호흡을 보여주기는 부담스럽다. 다만 피처링을 부탁하기 전에 허락을 받을 경우, 거절 당했을 경우를 미리 생각해서 가이드를 2안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불러 놓기는 한다. 난 치밀한 남자니까.
치밀한 다음 계획이 궁금하다. 벌써 밑그림이 있을 것 같은데.
싸이먼 D : 솔로 앨범도 준비 중이지만, SNL 리그 시리즈 하나가 벌써 녹음에 들어갔다. 이제 본편을 보여주려고. 이번 앨범은 둘의 합을 맞춰보는 시도에 가까운 작업이었는데, 호흡이 좋은 것 같아서 좀 더 둘의 작업물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워낙 음악을 여러 방향으로 들으니까 스카 밴드나 오케스트라와 작업 하는 것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 정말 내 인생에서 딱 하나의 단어를 고르라면 ‘시도’다. 다음 앨범도 마찬가지로 시도 할 거다. 시행착오도 겪고 욕도 먹겠지만, 다 필요 없고,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내 등을 두드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 필요 없다고는 하지만 실패가 두렵진 않나.
싸이먼 D : 아직까지 대실패를 안 해봐서 그렇다. 하하. 땅바닥에 떨어지면 그 공포를 알겠지만, 아직은 50% 밖에 실패해 보질 않아서 괜찮다. 나를 지지해 주는 나머지 50%에서 힘을 얻고 남은 절반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이를 악 물수 있는 거다. 예전처럼 하드코어하고 로우톤으로 가득한 앨범이 아니어도 내 음악을 사랑해 주는 팬들 때문에 실패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실패를 하면 안 된다는 각오인가, 실패 하지 않는다는 믿음인가
싸이먼 D :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나는, 절대 안 진다. 누구에게도 질 생각도 없고, 어떤 넘버원 래퍼가 와도 이길 자신 있다.
뭉클한 얘기다. 분노로 일어섰던 래퍼인데 사랑과 평화를 기반으로 새 전기를 만들어 간다는 게.
싸이먼 D : 2004년돈가, 우리 크루 클럽 게시판에 내가 ‘사랑과 평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의 이유’라고 쓴 적이 있었다. 그땐 뭣 모르고 멋있어 보이려고 쓴 글이지만, 7년 후에 그 글을 보니 나에게 맞는 말인 것 같다. 팬들과 나 사이의 사랑과 평화가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거다. 그 덕분이다.
사진제공. 아메바컬쳐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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