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롯데가 SK한테 졌다며? 롯데 팬들 실망이 이만저만 아닌 거 같던데?
뭐 그렇겠지.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종목이고 팀이고 안 가리고 오지랖 넓게 굴던 애가 왜 이래? 혹시 기아가 떨…
그래! 떨어졌다, 떨어졌어!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승리하고 3번 내리 져서 떨어졌다. 어차피 올해 나의 야구는 끝났어. 어디가 지고 이기고, 우승하던 알게 뭐람. 흥, 핏, 쳇.
올해 야구가 끝났으면 내년에는 별 일 있는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타이거즈의 야구는 내년부터 시작인 거지. 너도 소식 들었겠지만 선동렬 전 삼성 감독이 기아 감독으로 부임했다고. 타이거즈가 배출한 최고의 레전드 프랜차이즈 스타가. 사실 이번 시즌 전에 삼성 감독에서 물러나면서 혹시나 조만간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네? 사실 조범현 감독이 계약 기간을 다 채운 뒤에 선동렬 감독이 왔다면 훨씬 모양새가 보기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왜, 조범현 감독은 계약 기간을 못 채우고 잘린 거야?
자진 사퇴니 뭐니 어떤 말로 포장해도 잘린 거지.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상황에서 조범현 감독도 내년에 대한 구상이 없었겠어? 비록 하반기에 너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줘서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상반기만 해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고. 이 전력을 가지고 내년에 어떻게 좀 더 살림을 잘 꾸려볼까 고민해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팬들과 구단이 플레이오프 탈락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니 자진 사퇴라는 이름으로 그만둔 건데, 그게 잘린 거지 뭐.
그럼 계약을 파기했으니 구단에서 뭘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위약금이 있는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남은 계약 기간에 대한 연봉은 지급할 거야. 계약 기간을 보장 안 해주는 것도 문제인데 그조차도 보장이 안 되면 너무 심하지. 그럼 넌 조범현 감독이 잘린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거야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잘못이잖아.
아깐 선동렬이 감독 됐다고 좋아하더니?
그게 참 마음이 복잡한 거야. 객관적인 입장에서야 그렇지만 오랜 시간 타이거즈를 좋아했던 팬 입장에선 쌍수를 들어 반길 일이거든. 그리고 구단 역시 이렇게 팬들이 낚일 걸 예상하고 선동렬 카드를 꺼낸 거고.
선동렬이 그렇게 감독을 잘해?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도 좋지. 삼성 감독 부임 첫해와 이듬해인 2005,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으니까. 작년에도 비록 SK에게 1승도 못 거두고 무기력하게 내리 4번 지긴 했지만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했고. 물론 삼성에서의 우승에 대해서는 ‘그 정도 선수들이면 당연히 우승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자체로 사기나 다름없던 이승엽-마해영-양준혁 클린업 트리오가 있던 건 2003년이고, 2005년엔 삼성 대표 타자였던 이승엽도 없었으니 삼성의 최전성기에 날로 우승을 먹었다고 보긴 어렵지. 하지만 기아 구단에서 선동렬을 데려오고, 거기에 팬들이 환호하는 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네가 아까 말한 프랜차이즈 스타 얘기인 거지? 그런데 그건 눈 가리고 아웅 아니야?
아니라고는 안 할게. 분명 이번 선임은 팬들의 불만을 일시에 무마하기 위한 카드로서의 성격이 크니까. 하지만 우선은 같은 상황이면 욕을 덜 먹긴 할 거야. 그건 감독으로서 상당히 유리한 지점이야. 좀 더 소신 있게 작전을 짜고 팀의 계획을 짤 수 있으니까. 또 있어. 기아처럼 화려한 역사가 있는 팀일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가 강한데, 선동렬 같은 레전드가 부임하면 그 시절로 회귀하자는 분위기가 팀 전체에 동기부여로 작용할 수 있거든. 과거의 해태가 근성으로 무장한 팀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근성? 그런 건 너무 좀 구닥다리 정서 아니야?
그게 무시하기 어렵다, 너? 야구처럼 흐름이 중요한 게임에서 눈을 부릅뜨고 상대 투수 공 하나라도 더 던지게 하려는 타자가 있고 없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근성이 있어야 연습도 열심히 하고. 특히 천하의 모두까기 인형 이순철까지 수석 코치로 오니 이제 안일한 플레이는 펼치기 어려울 걸? 이번 준플레이오프를 비롯해 하반기 기아가 유독 맥없는 모습 때문에 팬들에게 질타 받았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기대되는 조합이야. 그럼 그렇게 스타들이 팀을 맡으면 성적이 다 괜찮았던 거야?
민망하지만 데이터 상으론 꼭 그렇진 않아. 다른 어디보다 기아가 그래. 해태 시절의 거포였던 김성한 감독이나 서정환 감독이 있었지만 선수 때만큼 화려한 성적을 만들진 못했지. ‘미스터 롯데’ 김용희 전 롯데 감독은 1995년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1997년에 8위를 기록하고, 그 다음 해에도 성적이 좋지 않아 시즌 중에 경질됐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선동렬은 한국 야구 역사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슈퍼스타라는 것과 감독 경험이 풍부하다는 거? 기아 감독 선동렬의 임팩트는 그래서 역대 최강이야. 고 최동원이 롯데를, 장종훈이나 송진우가 한화를 맡는 것 외엔 비길 수 없을 거야. 종목이 다르긴 하지만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내던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은 레전드 선수 출신이자, 감독으로 우승을 이끈 적도 있었던 케니 달글리시를 중간에 감독으로 임명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어. 어떤 스타 출신 감독도 우승 못할 팀을 우승시키진 못하겠지만 대신 선수의 능력을 백퍼센트 끌어낼 수는 있어. 선동렬에게 기대하는 것도 그런 거야. 그렇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 이종범과 함께 하겠다고 하는 거일 테고.
오, 이종범은 내년에도 은퇴 안 하고 뛰는 거야?
본인은 계속 뛰고 싶어 하는데, 선동렬이 지난해 삼성에서 양준혁을 은퇴시킨 전적이 있다 보니 팬들 사이에선 걱정이 없진 않았어. 하지만 선동렬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 자체가 해태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니 해태 시절 투타 콤비를 이뤘던 현역 레전드 이종범을 내칠 수는 없지. 최근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이승엽을 친정 팀인 삼성에서 잡으려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일이야. 이승엽이라는 거물 타자를 통한 즉각적인 전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레전드 프랜차이즈 스타를 데려오는 건 팬들에게도, 팀 내부 선수들에게도 굉장히 상징적이거든. 팬 입장에선 우리 팀의 우리 선수가 돌아온다는 설렘이, 선수들로서는 팀이 선수와의 의리를 지켜준다는 위안이 생기지. 특히 양준혁이라는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럼 내년에는 기아 팬으로서 야구 볼 맛이 나겠구나.
완전 맛나지. 그러니까 팀 안 정했으면 내년에 시범적으로다가 기아 한 번 응원하자니까? 야구장 티켓은 내가 쏠게. 원하면 치킨에 맥주도. 좌석도 제일 좋은 테이블 좌석으로다가.
흠… 요즘 ‘잇 걸’은 야구를 보는 게 대세라고 하니 나도 좀 따라가서 볼까?
그래, 그래. 응원복도 지원할게. 나는 선동렬 이름 새겨진 해태 유니폼을 입을 테니까 넌 이종범 유니폼 어때? 해태의 전설을 다시 일구는 두 레전드의 만남.
나보고 유니폼을 입으라고?
야, 그거 완전 ‘간지’ 폭풍이야. 그렇게 입어야 카메라도 비춰주고, 키스 타임도… 헙!
글. 위근우 기자 eight@
뭐 그렇겠지.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지만.
종목이고 팀이고 안 가리고 오지랖 넓게 굴던 애가 왜 이래? 혹시 기아가 떨…
그래! 떨어졌다, 떨어졌어!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승리하고 3번 내리 져서 떨어졌다. 어차피 올해 나의 야구는 끝났어. 어디가 지고 이기고, 우승하던 알게 뭐람. 흥, 핏, 쳇.
올해 야구가 끝났으면 내년에는 별 일 있는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타이거즈의 야구는 내년부터 시작인 거지. 너도 소식 들었겠지만 선동렬 전 삼성 감독이 기아 감독으로 부임했다고. 타이거즈가 배출한 최고의 레전드 프랜차이즈 스타가. 사실 이번 시즌 전에 삼성 감독에서 물러나면서 혹시나 조만간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네? 사실 조범현 감독이 계약 기간을 다 채운 뒤에 선동렬 감독이 왔다면 훨씬 모양새가 보기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왜, 조범현 감독은 계약 기간을 못 채우고 잘린 거야?
자진 사퇴니 뭐니 어떤 말로 포장해도 잘린 거지.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상황에서 조범현 감독도 내년에 대한 구상이 없었겠어? 비록 하반기에 너무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줘서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상반기만 해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고. 이 전력을 가지고 내년에 어떻게 좀 더 살림을 잘 꾸려볼까 고민해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팬들과 구단이 플레이오프 탈락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니 자진 사퇴라는 이름으로 그만둔 건데, 그게 잘린 거지 뭐.
그럼 계약을 파기했으니 구단에서 뭘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위약금이 있는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남은 계약 기간에 대한 연봉은 지급할 거야. 계약 기간을 보장 안 해주는 것도 문제인데 그조차도 보장이 안 되면 너무 심하지. 그럼 넌 조범현 감독이 잘린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거야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잘못이잖아.
아깐 선동렬이 감독 됐다고 좋아하더니?
그게 참 마음이 복잡한 거야. 객관적인 입장에서야 그렇지만 오랜 시간 타이거즈를 좋아했던 팬 입장에선 쌍수를 들어 반길 일이거든. 그리고 구단 역시 이렇게 팬들이 낚일 걸 예상하고 선동렬 카드를 꺼낸 거고.
선동렬이 그렇게 감독을 잘해?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도 좋지. 삼성 감독 부임 첫해와 이듬해인 2005,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으니까. 작년에도 비록 SK에게 1승도 못 거두고 무기력하게 내리 4번 지긴 했지만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했고. 물론 삼성에서의 우승에 대해서는 ‘그 정도 선수들이면 당연히 우승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자체로 사기나 다름없던 이승엽-마해영-양준혁 클린업 트리오가 있던 건 2003년이고, 2005년엔 삼성 대표 타자였던 이승엽도 없었으니 삼성의 최전성기에 날로 우승을 먹었다고 보긴 어렵지. 하지만 기아 구단에서 선동렬을 데려오고, 거기에 팬들이 환호하는 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네가 아까 말한 프랜차이즈 스타 얘기인 거지? 그런데 그건 눈 가리고 아웅 아니야?
아니라고는 안 할게. 분명 이번 선임은 팬들의 불만을 일시에 무마하기 위한 카드로서의 성격이 크니까. 하지만 우선은 같은 상황이면 욕을 덜 먹긴 할 거야. 그건 감독으로서 상당히 유리한 지점이야. 좀 더 소신 있게 작전을 짜고 팀의 계획을 짤 수 있으니까. 또 있어. 기아처럼 화려한 역사가 있는 팀일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가 강한데, 선동렬 같은 레전드가 부임하면 그 시절로 회귀하자는 분위기가 팀 전체에 동기부여로 작용할 수 있거든. 과거의 해태가 근성으로 무장한 팀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근성? 그런 건 너무 좀 구닥다리 정서 아니야?
그게 무시하기 어렵다, 너? 야구처럼 흐름이 중요한 게임에서 눈을 부릅뜨고 상대 투수 공 하나라도 더 던지게 하려는 타자가 있고 없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근성이 있어야 연습도 열심히 하고. 특히 천하의 모두까기 인형 이순철까지 수석 코치로 오니 이제 안일한 플레이는 펼치기 어려울 걸? 이번 준플레이오프를 비롯해 하반기 기아가 유독 맥없는 모습 때문에 팬들에게 질타 받았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기대되는 조합이야. 그럼 그렇게 스타들이 팀을 맡으면 성적이 다 괜찮았던 거야?
민망하지만 데이터 상으론 꼭 그렇진 않아. 다른 어디보다 기아가 그래. 해태 시절의 거포였던 김성한 감독이나 서정환 감독이 있었지만 선수 때만큼 화려한 성적을 만들진 못했지. ‘미스터 롯데’ 김용희 전 롯데 감독은 1995년에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1997년에 8위를 기록하고, 그 다음 해에도 성적이 좋지 않아 시즌 중에 경질됐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선동렬은 한국 야구 역사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슈퍼스타라는 것과 감독 경험이 풍부하다는 거? 기아 감독 선동렬의 임팩트는 그래서 역대 최강이야. 고 최동원이 롯데를, 장종훈이나 송진우가 한화를 맡는 것 외엔 비길 수 없을 거야. 종목이 다르긴 하지만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내던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은 레전드 선수 출신이자, 감독으로 우승을 이끈 적도 있었던 케니 달글리시를 중간에 감독으로 임명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어. 어떤 스타 출신 감독도 우승 못할 팀을 우승시키진 못하겠지만 대신 선수의 능력을 백퍼센트 끌어낼 수는 있어. 선동렬에게 기대하는 것도 그런 거야. 그렇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 이종범과 함께 하겠다고 하는 거일 테고.
오, 이종범은 내년에도 은퇴 안 하고 뛰는 거야?
본인은 계속 뛰고 싶어 하는데, 선동렬이 지난해 삼성에서 양준혁을 은퇴시킨 전적이 있다 보니 팬들 사이에선 걱정이 없진 않았어. 하지만 선동렬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 자체가 해태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니 해태 시절 투타 콤비를 이뤘던 현역 레전드 이종범을 내칠 수는 없지. 최근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이승엽을 친정 팀인 삼성에서 잡으려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일이야. 이승엽이라는 거물 타자를 통한 즉각적인 전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레전드 프랜차이즈 스타를 데려오는 건 팬들에게도, 팀 내부 선수들에게도 굉장히 상징적이거든. 팬 입장에선 우리 팀의 우리 선수가 돌아온다는 설렘이, 선수들로서는 팀이 선수와의 의리를 지켜준다는 위안이 생기지. 특히 양준혁이라는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럼 내년에는 기아 팬으로서 야구 볼 맛이 나겠구나.
완전 맛나지. 그러니까 팀 안 정했으면 내년에 시범적으로다가 기아 한 번 응원하자니까? 야구장 티켓은 내가 쏠게. 원하면 치킨에 맥주도. 좌석도 제일 좋은 테이블 좌석으로다가.
흠… 요즘 ‘잇 걸’은 야구를 보는 게 대세라고 하니 나도 좀 따라가서 볼까?
그래, 그래. 응원복도 지원할게. 나는 선동렬 이름 새겨진 해태 유니폼을 입을 테니까 넌 이종범 유니폼 어때? 해태의 전설을 다시 일구는 두 레전드의 만남.
나보고 유니폼을 입으라고?
야, 그거 완전 ‘간지’ 폭풍이야. 그렇게 입어야 카메라도 비춰주고, 키스 타임도… 헙!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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