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 상영작 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의 작품 중에서 “흔치 않게, 밝고 따뜻한 영화”다. , , 등 햇살을 가득 머금은 아름다운 화면 안에 날카로운 외로움과 체념을 벼려두었던 그는 작은 선의와 소박한 소원으로 덥혀지는 세상으로 눈길을 돌렸다. 새로 개통되는 큐슈 신칸센 열차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동화는 기적을 믿고자 하는 아이들에 의해 진짜 기적을 일으킨다.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사는 형제와 그의 친구들, 이들의 “반짝 반짝 빛나는 매력”은 그의 영화를 이전과는 다른 지점으로 이끈다. 그 어떤 순간보다 생에 대한 긍정적인 의지로 충만한 영화와 함께 부산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다음은 점심을 앞둔 시간, 간장게장을 향한 의지로 역시 충만해 있던 감독과의 활기찬 대화다.일본에서 이 개봉할 당시 철도 마니아인 감독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고 하는데, 기차의 어떤 면에 그렇게 매료되었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실은 그렇게까지 마니아는 아니다. (웃음) 물론 기차를 타는 걸 좋아하긴 한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영화에 관련된 아이디어 같은 걸 많이 떠올리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이동수단이다. 원래 일본에서는 기차를 찍는 것에 대한 허가를 얻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는 철도청 분들이 적극적으로 허락 해주겠다고 해서 ‘아, 기차를 양껏 찍어보겠구나!’ 싶어서 기뻤다.
“두 아이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에 내가 끌려갔다” 전작들에 비해 에서는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해진 것 같다. 세상은 작은 선의와 소박한 소원들로도 움직인다는 긍정의 힘이 느껴졌다. 혹시 본인 안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내가 그렇게 변한 것 같진 않다. (웃음) 만약 보신 분들이 그런 인상을 받았다면 주인공인 두 아이가 가진 힘 때문일 것이다. 이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이야기를 생각했다. 두 아이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에 내가 끌려간 것이다.
실제로도 형제이며 만담 콤비인 마에다 형제가 확실히 영화에 그런 기운을 불어 넣었는데, 어린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은 어떤가. 흔히 아이들과 일하는 것은 힘들다고 하던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런가? 정말 애들하고 일하는 게 어려운가? 나는 어른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여배우가 제일 힘들다. (웃음) 아이들과 일하는 데 있어서는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오디션을 하고나서부터는 같이 마트 가서 영화에서 입고 나오는 옷도 사고, 밥도 먹고, 같이 수다 떨고, 게임하면서 거리를 좁혀나갔다. 애들하고 단순히 친해진다는 개념이 아니라 ‘아, 이 아이는 이런 말투를 가졌구나, 이 아이는 이런 색깔을 좋아하는구나, 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구나’ 하는 것들을 조사 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설정들이 있다. 형 역할을 한 아이가 노란색을 좋아해서 실제로 영화에서도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나온다.
영화가 끝나도 관객들이 영화 속 인물과 배경이 계속 거기서 살아간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영화 속 코이치와 류 형제는 어떤 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형은 그렇게 계속 투덜투덜 거리면서 친구들하고 같이 중학교에 갈 테고, 음… 걔는 과연 무슨 써클 활동을 할까? (웃음) 동생은 분명히 여자한테 인기가 많을 거고, 그렇게 인기가 많은데 자기는 그걸 몰라서 굉장히 얄미운 캐릭터가 될 거 같다. (웃음) 하지만 또 아빠의 영향을 받아서 음악활동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더 인기가 많아지는 거다. (웃음) 하지만 두 사람은 가끔 만나겠지? 그래서 동생이 소개해준 여자랑 형이 아마 사귈 거다. (웃음)
“엔딩은 촬영 직전이 돼서야 생각났다” 9일 열린 마스터 클래스에서 , 등 좋아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면서 엔딩을 찍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번 의 엔딩 역시 어렵게 나왔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다. 이번 작품에도 맨 마지막 장면은 촬영 직전이나 돼서야 생각이 났다. 결말을 처음부터 결정하고 들어간 건 아니었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고 결론을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엔딩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우선 이 영화는 아이가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설정을 기본으로 시작을 했지만,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다. 물론 일반적인 성장 영화를 보면 약한 아이가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건 굉장히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이야기다. 나는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아이가 성장하는 것은, 자기의 소원을 바라고 외치는 것보다 내가 꼭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성장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 아이가 결국 깨닫는 것은 ‘아,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내가 그토록 바라던 우리 부모님의 결합은 이뤄지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포기를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아이의 성장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변하지 않으신 것 같다. (웃음) ‘좌절을 힘차게 극복해 나가진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좌절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글. 부산=이지혜 seven@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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