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서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널 때, 손바닥만큼 간신히 남은 여름이 불쑥 창을 넘어 들이칩니다. 그 순간을 이렇게 부르기로 하죠. 한강의 기적이라고. 시간이 흐르는 방향과 상관없이 조금 게으르고 조금 낭만적으로 사소한 일들을 곱씹어 봅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하지만 특별히 반성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꼭 쥐었던 모래처럼 일들은 어느새 스르르 흘러가 버렸지만 손바닥에 베인 땀 때문인지 어떤 알갱이들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계속 신경이 쓰이게 합니다. 여름 같은 햇빛에 손을 펼쳐보면 반짝, 남은 모래알이 기적처럼 소리를 지릅니다. 이 강을 다 건널 때까지 그걸 완전히 털어내 버리는 건 불가능 해 보입니다.

주영찬, 주영호 형제로 구성된 밴드 한강의 기적은 그런 싱겁고도 싱숭생숭한 마음을 노래합니다. 일기장을 무심하게 오려붙인 듯한 가사는 들을 때 마음을 꼬집기보다는 잠들기 전에 불쑥 떠오릅니다. 코 밑을 한번 닦아 주고 싶은 맹맹한 목소리는 우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주기보다는 모른 척 해주는 그런 종류의 배려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하는 그런 종류의 키스’를 원하는 그녀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그런 종류의 여자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상처 입히고만’ 마는 그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 그런 것들을 인정하게 되는 거죠. 수줍어하지 않고. 은밀한 강단으로 뾰루퉁 입을 내밀고.

글. 윤고모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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