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채널 QTV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예스 셰프 시즌 2>의 풀네임은 <에드워드 권의 예스 셰프 시즌 2>다. 이것은 단순히 에드워드 권이라는 스타 셰프가 출연하고 진행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주방이라는 공간의 치열함과 남과 경쟁해 이겨야 하는 서바이벌의 논리까지, 이 프로그램을 지배하는 것은 그가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내재화한 ‘에드워드 권의’ 것들이다.

“내가 원하는 건 강한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외국 나가서 살아남기 어렵죠. 쉽게 말해 프렌치 요리 하는 게 거의 다 프랑스 사람들인데 한국인이 거기 가서 프렌치 요리하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겠어요. 뒤집어 생각해보죠. 프랑스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식을 한다고 할 때 과연 한국 요리사들이 쉽게 인정해줄까요. 프랑스인이 한국에서 30년 동안 살아서 말도 한국인 수준으로 하고 궁중 한식 전문가 타이틀을 땄다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궁중 한식 전문가로 쉽게 받아들일까. 강하지 않으면 쉽게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서바이벌을 더 독하게 가려는 거예요.” 물론 그의 뚜렷한 자기 확신이 불편할 수 있다. 서바이벌 중 자신의 동료 하나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팀에 안승은과 이지민이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전자에게 “유종현 도전자,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좋아해. 그래서 당신이 아직까지 화이트 팀의 리더로 있는 거야”라고 차갑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수도 있다. 그의 요리 철학을 꼭 옳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스 셰프 시즌 2>가 종종 비추는 것처럼 천국의 맛을 내기 위해 주방은 지옥이 되어야 한다. 그릇을 깨끗이 닦지 않는다고, 스테이크가 나올 때에 맞춰 사이드 메뉴를 준비하지 못한다고 욕을 먹는 순간에도 손님에게 나갈 음식만큼은 정갈한 모습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에드워드 권의 요리 철학이 꼭 옳은 건 아닐지라도, 이 전쟁터를 헤쳐 나와 일가를 이룬 한 대가의 유의미한 충고인 건 확실하다. 이번 ‘테마 영화 추천’이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과연 그 예리한 눈과 예민한 혀만큼 영화를 보는 심미안도 발달했을까? 에드워드 권이 추천하는, 레시피가 조화를 이루는 맛있는 영화들이 여기에 있다.




1. <라따뚜이> (Ratatouille)
2007년 | 브래드 버드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요리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는데 사실 요리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아요. 셰프로서 가장 감흥이 깊었던 작품을 고르라면 역시 <라따뚜이>일 것 같아요. 실존하는 유명 셰프들이 만화 속 요리들을 디렉팅 했거든요.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 보면 토마스 켈러 같은 셰프들이 직접 만든 요리가 애니메이션화 된 모습이 나오죠. 또 쥐가 주인공이지만 셰프가 어떤 삶을 사는지 가장 잘 보여준 영화이기도 해요.”

뛰어난 재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기에 어려운 몇몇 현실적 제약이 있다. <라따뚜이>의 설정이 그다지 신선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재능이 요리에 대한 것이라면, 그리고 그 주인공이 바퀴벌레와 함께 주방의 절대 적인 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초일류 셰프로서의 재능을 갖춘 쥐 레미는 인간에게는 물론이고, 같은 가족에게도 자신의 꿈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인간 친구 랑귀니와의 파트너십으로 요리의 세계에 도전한다. 입지전적 이야기지만 결코 느끼하지 않은 담백한 맛의 작품이다.



2. <아마데우스> (Peter Shaffer`s Amadeus)
1984년 | 밀로스 포먼

“개인적으로 <글래디에이터>처럼 이국적인 풍경의 전쟁 영화나, 루이 몇 세니 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중세 왕정 시대 배경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 시대들만의 고급스럽고 독특한 풍경이 있잖아요. <아마데우스> 역시 오스트리아 왕궁과 화려한 오페라 무대, 그리고 귀족과 서민의 삶이 공존하는 빈의 풍경이 잘 드러나서 좋아하는 영화예요.”

흔히 천재라는 개념이 완성된 건 르네상스 시기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의 대중들에게 천재의 개념을 심어준 건 바로 <아마데우스> 속 모차르트일 것이다. 노력파 살리에르로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음표 단 하나만 바꿔도 무너질 것 같은 완벽한 곡 진행을 쉬지 않고 쏟아내는 방탕한 천재의 이미지. 그 천재성이 실제로는 허구라 해도 영화 속에서만큼은 이의를 제기할 생각도 못한 채 빠져들게 된다. 잘 만든 영화란 사실 제대로 된 허구 아닌가.



3. <줄리 & 줄리아> (Julie & Julia)
2009년 | 노라 애프론

“<줄리 & 줄리아>는 줄리아 차일드라는 실존 셰프에 대한 이야기라는 면에서 많이 공감하게 되는 영화예요. 외교관이었던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갔다가 갑자기 요리 학교에 입학해 좌충우돌하며 요리를 배우는 용감한 모습이 잘 그려졌죠. 그런 노력 끝에 미국에서 프랑스 요리의 대모라고 불릴 정도의 위대한 셰프가 됐고요. 다시 말하지만 실화입니다.”

에드워드 권은 줄리아 차일드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를 이끄는 건 제목 그대로 줄리아, 그리고 줄리다. 줄리아가 입지전적인 요리의 대가라면, 줄리는 줄리아의 레시피에 도전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올려 공감을 얻는 요리 블로거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영화 속에서 한 번도 만나지 않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으로 남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은 놀랍게도 닮아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 보여주는 성장담.



4. <사랑의 레시피> (No Reservations)
2007년 | 스콧 힉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보다 어떤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가 있는데, <사랑의 레시피>가 그런 영화예요. 셰프로 나오는 케서린 제타 존스가 스테이크 레어를 가지고 시비하는 손님에게 날고기를 쿡 집어 테이블에 꽂고, 자기는 셰프 안 한다고 박차는 장면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실제로 손님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되겠지만 영화이기에 가능한 통쾌한 모습이었던 거 같아요.”

차가운 워커홀릭 여자 셰프가 있다. 그리고 여유 넘치고 인간적인 남자 셰프가 있다. 이쯤 되면 당연히 러브 라인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법. <사랑의 레시피>는 서로 다른 성격의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주방으로 옮긴, 전형적인 주방에서 사랑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 케이트(케서린 제타 존스)의 조카 조이가 처음에는 이모의 고급 요리 대신 엄마의 요리를 그리워하고, 그러다 음식을 통해 마음을 여는 과정은 요리라는 예술이 만들어내는 어떤 기적 같은 순간을 환기한다.



5. <유 콜 잇 러브> (The Student)
1988년 | 클로드 피노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예요. 아마 8번 정도 봤을 거예요. 사춘기 때 소피 마르소에게 푹 빠졌었거든요. 지금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는 아마 대부분 소피 마르소와 피비 게이츠에 대한 추억이 있을 거예요. 소피 마르소가 그려진 책받침을 빌려가 자 대신 대서 종이를 자르다가 삐끗해서 책받침 속 얼굴이 나가면, 그 친구 이빨이 나가고… (웃음) 가장 예쁘고 청순하던 시절의 소피 마르소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한 영화예요.”

영어 제목인 ‘The Student’처럼 영화 속 소피 마르소는 대학 교수 자격시험을 앞둔 학생 발렌타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학생이란 결국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랑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배우는 모든 과정을 통칭한다. 발렌타인이 몰리에르의 사랑을 주제로 한 마지막 구두시험에서 남자 친구 에드워드를 통해 느끼고 배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합격하는 모습은 배움이 결코 책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만화 <배가본드>에서 ‘검성’ 이토 잇토사이는 제자 사사키 코지로에게 ‘내가 되어라’라는 말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넘을 극한의 살육전에 던져 넣는다. 잔인하지만 자신이 아는 유일한 길을 통해 후배를 성장시키려는 고집. 에드워드 권의 단호한 태도 속에서도 인간적인 정이 느껴진다면 그래서다.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 매주 탈락자의 이름표를 떼며 내뱉는 이 시그니처 멘트 덕에 에드워드 권은 욕도 참 많이 먹었다. 당신이 신이냐, 라는 비판도 들었다.

하지만 이 남자의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뽑으려는 건 각 미션의 톱이 아니예요. 각 미션마다 살아남을 정도의 하한선 이상의 평균 능력을 끝까지 가져갈 사람이지. 물론 셰프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나의 액션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상처로만 받아들인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어요. 그걸 또 다른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지.” 그리고 미션이 끝날 때마다 정말 도전자들은 에드워드 권조차 “내가 쟤네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의 배짱과 순발력을 보여줬다. 좋든, 싫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스타 셰프 에드워드 권이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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