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록페스티벌은 신인급부터 헤드라이너까지를 촘촘히 채우는 두터운 라인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관객을 모으는 가장 매력적인 카드가 거물급 헤드라이너라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2011 섬머 소닉을 결산하며 수 만 명을 열광시킨 그들에 대한 기록을 빼놓을 수 없다.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 온 콘,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의 마지막 주자였던 스웨이드처럼 올해 한국을 찾은 팀을 제외한 세 거물의 무대에 대한 리뷰.스트록스 (8월 13일 마린 스테이지)
우연이겠지만 스트록스가 마린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로 선 날, 마운틴 스테이지에서는 콘이 헤드라이너를 맡았다. 하지만 이 두 밴드가 동시대에 섬머 소닉이라는 대형 페스티벌에 설 수 있는 배경은 우연이 아니다. 스트록스, 그리고 그들로 대표되는 개러지 록이 콘으로 대표되는 뉴 메탈의 ‘끝물’에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데뷔작 < Is This It? >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들에게는 새로운 사조 혹은 애티튜드의 대변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하지만 < Is This It? >이 나온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90년대 록팬들에게 본조비와 너바나가 같은 시기의 록 클래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이제 콘도, 스트록스도 동시대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은 새 시대의 아이콘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매우 잘 나가는 밴드로서 헤드라이너로 선 것이다. 이것은 이날 마린 스테이지에서 그들이 보여준 무대에 대해 진보니 뭐니 하는 정치적 수사를 덜어내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서 악틱 몽키즈를 보며 느꼈던 아쉬움을 스트록스의 공연에서 그대로 느낀 건 그래서 한 번 쯤 고민해볼만한 문제다. 닉 발렌시와 알버트 해몬드 주니어가 만드는 기타 사운드는 개러지 록 특유의 투박한 질감을 라이브에서도 구현해냈고,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의 목소리 역시 음반에서 들었던 그대로 건방진 듯 무심한 정서를 담아냈다. 요컨대, 그들은 잘했다. 문제는 잘하는 것과 관객을 미치게 하는 것 중, 무엇이 헤드라이너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부분인지이다. 개러지 록만의 미적 성취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적어도 이 장르에 있어 CD에 준하게 라이브를 했다는 것만으로 칭찬하기란 조금 민망한 일이다. 물론 그들의 두 번째 넘버였던 ‘New York City Cops’의 후렴구를 직접 들으며 그 타이밍에 객석을 향해 쏘는 조명과 함께 떼창을 할 수 있다는 건 가슴 뛰는 일이다. 언제 들어도 폐부를 찌르는 ‘Someday’를 지금 이 순간만의 라이브로 듣는 것 역시 흔치 않은 행운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연이 10년 전 처음으로 ‘Trying Your Luck’의 리듬 스트로크를 들었을 때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는 모르겠다. 줄리안은 공연 중간 “Japanese, Cool”이라며 관객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이것은 동시에 10여 년 동안 쿨한 정서를 무기로 삼아왔던 스트록스 스스로의 자기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정말 쿨하고 무심한 느낌으로 별다른 퍼포먼스 없이 곡을 소화했고, 그건 그대로 나름의 색과 멋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뮤지션으로서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헤드라이너가 쿨과 핫, 어디에 가까웠으면 좋겠는가. 그 문제다. 엑스 재팬 (8월 14일 마린 스테이지)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요시키 같은 멤버는 밴드의 결속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타입이다. 시도 때도 없이 곡 사이사이 초고속 필인을 때려 넣는 드러밍은 실제로 보니 더더욱 튀었고, 등장부터 맨몸에 붉은 색 코트를 걸치거나 ‘Kurenai’에서의 피아노 솔로에서 팔꿈치로 건반을 뭉개거나 징 모양의 질드젼 대형 심벌을 치고 넘어뜨리는 퍼포먼스는 엑스 재팬 전체의 공연 흐름보다는 괴벽의 천재 요시키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인 모습이다. 그 진심까지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고인이 된 히데와 타이지를 위한 묵념을 강한 스크리밍과 함께 요청하는 모습 역시 묵념의 의미 자체보다는 그 모든 걸 극복하고 남은 요시키 본인이 도드라지는 퍼포먼스였다. 심지어 몇몇 젊은 일본 관객들은 드럼이 쉬는 타이밍에 일어나 포즈를 잡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실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한 요시키 같은 멤버는 밴드를 스타로 부각시킬 수 있는 존재다. 어쨌든 그것이 과시욕에서 출발하든 아니든,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상체를 드러내고 공연을 펼쳐도 될 정도의 자기 관리를 했고, 투 베이스를 죽어라 밟아댈 수 있는 체력도 보여줬다. 보컬 토시가 여전한 목소리와 안정된 음정을 들려줬지만 너무나 후덕해진 얼굴이라 당혹스러웠던 걸 떠올리면 지금 이곳, 수 만 명의 관객 앞에서 전성기 엑스 재팬의 아우라를 재현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건 요시키의 그 끝없는 자의식과 자신감 덕분이다. ‘Kurenai’ 이후 다시 한 번 요시키가 건반 주자로 프론트에 나서고 최고의 히트곡인 ‘Endless Rain’을 연주하며 히데와 타이지에 대한 추모를 하는 건 조금 뻔하다. 하지만 때론 어설픈 신선함보다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클리셰의 힘이 더 강하다. 그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겹쳐지며 엑스 재팬은 시대착오적인 아저씨들이 아닌, 전설의 귀환이 될 수 있었다. 사실 마지막 곡이었던 ‘X’의 경우 전성기 헤비 넘버 중 ‘Kurenai’나 ‘Silent Jealousy’, ‘Weekend’에 비해 구성이나 무게감이 떨어지는 곡이다. 하지만 ‘X’라는 후렴구로 자신들의 귀환을 어필하는 그들 앞에서 관객들은 팔로 X 모양을 만들고 펄쩍 뛰며 이 퍼포먼스의 마지막에 방점을 찍었다. 하여,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엑스 재팬, 그리고 요시키에게 바라는 건 단 두 가지다. 한국에서는 꼭 ‘Weekend’와 ‘Say Anything’을 불러주길. 그리고 이제는 혈액형에 ‘X’라고 적는 허세는 부리지 말길. 레드 핫 칠리 페퍼스 (8월 14일 마린 스테이지)
기본적으로 섬머 소닉에 오는 일본 관객들의 호응은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이나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그것에 비하면 확연하게 얌전한 편이다. 그런 그들이 조여 있던 이성의 나사를 풀고 가장 열광했던 순간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첫 곡 ‘By The Way’를 부를 때부터 나머지 모든 곡을 소화할 때까지였다. 물론 메가 히트 넘버인 ‘Otherside’를 비롯해 어느 한 곡 록의 아레나에 오르지 않은 게 없는 세트리스트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라이브에서 레드 핫 특유의 그루브는 귀가 아닌 몸에 바로 전달됐다. 록 베이시스트 중 슬랩에 있어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플리의 연주는 명불허전이었고, 각 파트가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결국 하나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특유의 리듬 섹션, 그리고 그 위를 넘나드는 앤소니 키에디스의 랩핑은 스튜디오 버전의 그것보다 역동적이었다. 즉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을 직접 봤다는 상징적인 포만감을 넘어선 진짜 유일무이한 즐거움이 마린 스테이지 전체에게 가득 찼다.
사실 활동 20주년을 넘긴 이들의 음악 색깔을 한 두 가지 개념으로 정의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전반기 최고의 명반이라 할 < Blood Sugar Sex Magik >과 ‘Otherside’와 ‘Californication’이 수록된 < Californication >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대단한 건, 그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심지어 성공적으로 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많은 록 팬들에게 급진적이라는 인상을 주던 초기의 ‘똘끼’를 원숙한 사운드 안에서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거물 밴드의 저력이다. 과거처럼 방방 날뛴 건 아니지만 모든 멤버들, 심지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채드 스미스조차 몸을 들썩이며 드럼을 치는 모습은 그들에게 있어 그루브가 사운드의 차원이 아닌 애티튜드의 차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몸을 흔들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신나는 곡의 향연 속에서도 현명한 레드 핫의 관객이라면 ‘Give It Away’를 위해 마지막 힘을 비축해 놓는 건 그 때문이다. 화성이니 코드 진행이니 하는 것들을 부차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정형의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여기에 있다.
사진제공. 2011 섬머 소닉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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