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지난 23일 진행된 올스타전과 함께 마무리된 2011년 프로야구 전반기는 그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고, 예상치 못한 역전극들이 펼쳐졌으며,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관중 수는 지난해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야구 붐을 탄 일시적 현상일까, 2011년 프로야구라는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필연적 현상일까. 는 대중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2011년 프로야구 전반기의 의미에 대해 분석해보았다.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 야구를 즐기기 위한 중요한 층위인 각 팀 감독의 야구 스타일, 각 팀의 훈남 선수들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여기에 어쩌면 한국시리즈보다 더 치열할지 모르는 LG와 롯데의 4위 고지 쟁탈전에 대한 작은 픽션을 더했다. 부디 남은 후반기에도 모든 팀의 팬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야구를 볼 수 있기를.

2011 프로야구 전반기 결산│이 모든 이변, 사실은 이변이 아니다
2011 프로야구 전반기 결산│이 모든 이변, 사실은 이변이 아니다
또 다시, 지긋지긋한 비다. 수도권 곳곳을 포구로 만들어버린 폭우와 함께 2011 프로야구 하반기 첫 시합 중 잠실과 목동 두 개 구장의 시합이 취소됐다. 간만에 비로부터 자유로웠던 지난 한 주가 올스타 브레이크와 겹쳐졌다는 걸 떠올리면 더더욱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비를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른다. 취소되지 않은 두 경기에서 선두 기아는 역시 올 시즌 수위를 다투는 삼성에게 8회 초 역전을 당하며 무너졌고, 가을 야구가 가능한 4위 능선을 넘기 위해 재시동을 건 롯데는 천적 SK에게 덜미를 잡히며 최근 3연패 중인 4위 LG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이 비가 부산과 광주에도 ‘공평하게’ 내렸다면 그 결과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화, 수, 목 3연전의 결과 전체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팬으로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한편, 너무나 무의미하다. 기아가 진 건 마무리 임무를 맡고 나온 한기주가 삼성 타자들에게 두들겨 맞아서고, 롯데가 진 건 SK 불펜의 방패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지, 비가 안 와서가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지난 21일 기아가 한화에게 4 대 2 강우 콜드승을 거둘 수 있었던 건 근본적으로 8회까지 상대를 2점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가 오고 안 오고를 비롯한 외부 요인은 팀의 승패 및 순위 변동에 영향을 줄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승패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그 모든 변수들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토록 자주 내리던 비와 예상치 못했던 변수로 인해 여기저기서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되던 2011년 전반기의 경기들이 그러했듯.

‘야구 몰라요’가 이토록 절실하게 와 닿은 적이 있던가
2011 프로야구 전반기 결산│이 모든 이변, 사실은 이변이 아니다
2011 프로야구 전반기 결산│이 모든 이변, 사실은 이변이 아니다
너무나 오래 가을 야구와는 먼 세월을 보냈던 LG 트윈스가 8개 구단 중 가장 먼저 30승을 채우며 시즌 초 1위를 달렸던 것을 비롯해 이번 전반기는 유독 수많은 이변과 롤러코스터 같은 순위 변동이 벌어졌던 시기였다. 가까스로 낸 1, 2점을 강력한 선발 투수의 힘으로 겨우겨우 지키는 야구를 해 ‘기탈리아’라 불리던 기아는 8개 구단 최고의 불방망이를 뽐냈고, 야구란 7개월 동안 레이스를 펼치고 SK가 우승하는 종목이라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SK의 충격적 7연패에 할 말을 잃었다. 하일성 해설위원의 오래된 잠언인 ‘야구 몰라요’가 이토록 절실하게 와 닿은 시기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야구가 재밌었다면, 더 정확히 말해 야구라는 공놀이가 재미있다면, 단순히 예측 불허의 순간들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그 모든 이변이 사실은 이변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야구의 진짜 매력이다.

가령 2010년 최고의 활약을 보였던 류현진은 올해 개막전에서 5점을 내주고 5회를 채 채우지 못한 채 조기 강판 당했다. 퀄리티스타트의 상징이었던 그의 초반 부진은 그 자체로서는 충격이었지만, 결국 구위와 제구가 조금이라도 불안해지면 류현진이고 선동렬이고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는 야구의 기본적 진리를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구위가 작년 같았더라면, 에이스로서 너무 혹사당하지 않았었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상상해볼 수 있지만 그것은 광주에 비가 오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 포지션의 역할과 투수 대 타자의 수 싸움, 그리고 가끔은 심판들조차 헷갈려 하는 각종 룰이 수많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이 가장 복잡한 스포츠에서 선수의 부상과 난조, 그리고 수많은 외부 조건들은 톱니바퀴 사이에 낀 이물질이 아니라 그 자체가 승부에 포함되는 또 하나의 톱니바퀴다. 만화 < H2 >에서 히데오는 히로와의 마지막 승부에서 누가 봐도 홈런인 타구를 때려내지만 바람 때문에 공이 휘면서 파울이 되고 만다. 그것은 아까울지언정 홈런을 도둑맞은 것은 아니다. 홈런을 파울로 만드는 강한 바람조차 경기의 일부다.

조금씩 중독되는 이 농약 같은 스포츠

하여 야구를 본다는 건, 특정 팀을 응원한다는 건, 선수 개개인의 최근 컨디션과 작전 수행 능력, 각종 변수에 대한 걱정으로 뇌의 한 구석을 채우는 과정을 동반한다. 야구를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야구를 보기 시작하면서 최종 스코어와 순위표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하다못해 LG 심수창의 얼굴에 반해 야구를 시작했다면 그의 연패를 변호하기 위해 블론의 개념이라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그 메커니즘을 알게 될수록 이 농약 같은 스포츠에 조금씩 중독된다. 600만 관중 시대를 예감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야구장을 찾는 것과 동시에,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고전 이나 심리학으로 야구를 분석한 같은 서적이 올해 들어 출간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을 번역한 야구 칼럼니스트 김은식은 ‘요즘에는 괜찮은 야구 원고가 없는지 물어오는 출판사의 전화를 종종 받곤 한다’고 밝히는데 말하자면 이들 서적을 요청하는 건 더 재밌게 게임을 즐기기 위한 야구팬들의 욕망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야구 붐을 다시 일으킨 2008년과 함께 2011년이 한국 프로야구의 흐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되지만 단 한 순간도 개연성을 잃지 않는 드라마가 있다면 그것을 보지 않을 도리란 없지 않을까. 미식축구를 다룬 영화 는 해설자의 입을 빌어 ‘Any given Sunday, anything can happen’이라 말하지만 화수목금토일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곳이야말로 2011년의 야구장이다.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우연은 없다. 그래서 납득할 수 있다. 다시 쏟아지기 시작하는 이 지긋지긋한 빗소리조차도.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