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 귀여움, 청순함, 섹시함. 보통 여자 아이돌 그룹은 이런 여성적인 이미지들 중 하나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은 이런 이미지를 데뷔 때부터 하나씩 사용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하곤 한다. 그러나 2NE1과 f(x)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규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음악과 패션, 안무에까지 그룹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담고, 그것들을 차츰차츰 대중에게 납득시켰다. 2NE1과 f(x)를 말할 때 특정한 이미지보다는 ‘튄다’나 ‘독특하다’는 느낌이 먼저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덕분에 때론 난해하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요즘 두 그룹은 그 난해함마저 자신들의 이미지 중 하나로 만들어버린 듯 하다. 그들은 다른 걸그룹같은 무대를 보여주는 대신 2NE1, 또는 f(x)만이 할 수 있는 무대를 보여준다. 대체 불가능한 걸그룹이 된 2NE1의 ‘내가 잘나가’와 f(x)의 ‘HOT SUMMER` 무대를 탐구해보자.
2NE1 ‘내가 제일 잘나가’ 2NE1은 그들의 노래가 말하는 것처럼 멈출 사람도, 더 잘나가는 사람도 없다. 그들이 노래에서 바람피우는 남자에게 “내 앞에서 꺼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그만큼 자기 주장이 강하고 색깔이 뚜렷한 노래들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데뷔곡이었던 ‘Fire’부터 ‘Go Away’, ‘Can`t Nobody’ 등을 통해 쌓인 2NE1만의 음악, 그리고 여성이나 남성으로 구분할 수 없는 강렬한 무대구성이 만나 대체 불가능한 그들만의 색깔을 만들었다. 대중이 ‘내가 제일 잘나가’라는 직설적인 제목도 수용할 수 있는 이유다. 이는 2NE1이 무대 위에서 가장 튀고, 가장 공격적인 모습으로 그들이 ‘제일 잘 나가’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NE1은 무대 위에서 모든 걸 보여준다. 모든 댄서가 2NE1과 함께 춤을 추면서 무대를 압도하고, 그 후에는 멤버 각자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박봄은 보다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움직임이 크지 않은 포인트 동작이 주가 된다. 반면 댄서들은 비교적 화려하고 큰 동작으로 박봄을 돋보이게 한다. 그에 반해 몸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남다른 CL과 민지의 경우에는 스스로 안무의 주체가 된다. “뒤집어지기 전에”에서는 댄서에 기대 허리를 뒤로 꺾고, “도도한 걸음으로”에선 바닥에 눕는 퍼포먼스로 멤버 개개인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반면 산다라박은 “네가 앉은 테이블 위를”에서 댄서들의 등을 테이블로 활용해 턱을 괴거나, 또는 북 퍼포먼스의 마지막 부분에서 손으로 총을 쏘는 포인트 동작을 주로 담당하면서 순간적으로 시선이 쏠리도록 한다. 반복적인 리듬 위에서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한 무대 구성으로 멤버들 각각의 특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 명씩 이미지를 강조한 후에는 “내가 제일 잘나가”가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2NE1 전체의 힘을 보여준다. 클라이막스에서 등장하는 ‘북 퍼포먼스’는 곡 내내 무대에 강약을 조절하며 에너지를 발산하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 그 전까지의 무대를 넘어서는 임팩트를 남긴다. 가장 극적인 부분을 보여주기 전 “어떤 비교도 난 거부해 이건 겸손한 얘기”에서 완급을 조절한 뒤 북 퍼포먼스로 마지막에 반전을 주는 구성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보통 여러 대의 북이 배치된 무대구성은 웅장하고 화려하다는 이미지를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곡의 흐름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며 멤버들을 부각시킨 ‘내가 제일 잘나가’에서는 오히려 2NE1의 퍼포먼스가 더 돋보인다.
그래서, ‘내가 제일 잘 나가’는 하나의 종합선물세트처럼 그들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야심작이다. ‘Go Away’는 댄서들과 함께 한편의 뮤지컬처럼 꽉찬 무대를 선보였고, ‘박수쳐’는 벤치를 이용한 안무로 무대를 화려하게 만들었다. 2NE1은 이 과정을 통해 대중들이 다양한 콘셉트의 무대를 경험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잘 나가‘는 마치 ‘실전편’처럼 이 모든 콘셉트를 집약해 가장 화려한 무대를 보여줬다. 2NE1은 점점 더 무대를 통해 자신들의 한계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Let`s Dance! “내가 제일 잘나가” 후렴 부분 에서 손으로 머리를 번갈아가며 쓸어 올리는 동작을 이용해 거울 앞에서 머리에 왁스를 바른다. 옆으로만 손을 넘겨야 한다. 위로 올렸다가는 산다라박의 베지터머리를 거울 속에서 만나 뵙게 될지도.
Motion Capture! – “Bam Ratatata Tatatatata”:
<드래곤 볼>의 베지터 머리를 재정비하고 총 조준 하는 산다라.
– “도도한 걸음으로 나선 이 밤”:
YG의 전매특허인 무대에 누워 노래하기 전술을 선보이는 민지
– “Nananana” :
‘내’가 제일 잘나간다고 역정 내는 듯 한 CL의 격렬함
f(x) ‘HOT SUMMER’ f(x)는 데뷔 초부터 난해한 가사와 종잡을 수 없는 리듬, 자유분방한 무대의상 등을 선보였다. f(x)라는 팀 이름 그대로 풀기 힘든 함수같은 그룹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소함은 독특함이 됐고, 독특함은 f(x)를 다른 여성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 시켰다. 또한 대중이 팀 색깔을 이해하게 될 때 쯤, f(x)는
‘피노키오’로 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피노키오>의 리패키지 앨범에 수록된 ‘HOT SUMMER’는 대중성이라는 면에서 ’피노키오‘와 맥락을 같이 할 수 있지만,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다.
‘HOT SUMMER’는 그룹보다 개인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무용을 전공해 선을 강조하는 여성스러운 안무가 어울리는 빅토리아는 웨이브나 손을 길게 뻗는 동작이 주가 된 안무를 한다. 엠버는 파워풀한 안무를 보여줬던 f(x) 데뷔 초반의 색깔이 유지되도록 힘 있고 절도 있는 동작들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설리가 메인에 서는 후렴구 에서는 손으로 땀을 닦고 부채질 하는 ‘HOT SUMMER’의 단체 포인트 동작을 하면서 누구나 따라하고 싶은 쉬운 안무에 대중성을 부여한다. 전체적으로 멤버들이 같은 안무를 추는 구성이긴 하지만, 파트마다 해당 안무에 가장 어울릴만한 멤버가 앞에 나서 멤버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또한 f(x)는 한 문장의 가사가 마무리되는 부분에서 포인트 동작을 넣어주는 패턴을 보여준다. “뜨거운 광선 쏟아져 앗 따끔해 눈부셔 살짝 찌푸린 눈 선글라스”에서 “앗 따끔해”, “선글래스” 등 가사 말미에 포인트 동작을 넣으면서 각자의 파트에서 좀 더 임팩트를 남길 수 있게 한다.
하지만 ‘HOT SUMMER’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잡는 동시에 다양한 조합을 통해 팀 색깔을 부각시킨다. f(x)의 안무는 다른 댄서들 없이 구성돼 각자의 멤버들이 쉴 틈이 없다. 2절로 들어가는 부분에서 “말리부 해변은 아니더라도”에서 빅토리아는 루나와 엠버와 함께 춤을 추고, “금가루 뿌렸니 눈 부셔 파도” 부분에서는 옆으로 자리를 옮겨 크리스탈과 엠버가 함께 춤춘다. 이어서 루나가 설리와 안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5명의 멤버가 만나고, 하나를 이룬다. 그만큼 노래가 반복적인 부분이라도 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인상을 주고, 동시에 정교하게 맞물리는 팀 전체의 안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각각의 파트에서는 메인에 선 멤버가 부각되지만, 곡 전체적으로는 f(x)가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느낌이 드러난다. 그만큼 f(x)는 개인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그룹의 색깔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 팀 이름 그대로 그룹 자체가 미지수의 값을 갖게 되는 이유다. f(x)는 5명 개인의 매력이 합쳐지면서 그룹의 값이 무한대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Let`s Dance! “눈 부셔 파도” 부분의 ‘파도 자매’ 빅토리아, 크리스탈, 엠버처럼 팔을 쭉 펴고 스트레칭을 한다. 이때 빅토리아처럼 S라인을 만들어 척추까지 곧게 펴줘야 함을 잊지 말자.
Motion Capture! – “재미없어” :
애교 넘치는 동작 후 바로 하드코어 안무로 돌입하는 반전 루나
– “한강에서 물 파란 동해에서”:
언니들과 클럽 온 듯 유독 즐거워하는 크리스탈
– “HOT HOT 이게 제 맛”:
미스코리아 포즈, 혹은 수학여행 단체 사진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