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간의 조건>은 놀라운 프로그램이다. 별다른 장치도 없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한 가지 요건을 그저 잠깐 소거함으로써 삶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여섯 명의 개그맨들은 일주일 동안 늘 손에 쥐고 살았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거나, 생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들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은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눈이다. TV를 통해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보통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었던 그들의 인간적이고도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양상국은 유독 눈에 띈다. 그동안 마른 몸에 너절한 티셔츠를 걸친 채 “사랑해요 닥터피쉬! 붐치기 붐치기 차차차- 우라우라우라우라 예~”를 외칠 때도(KBS <개그콘서트> ‘닥터피쉬’), 사투리를 쓰는 친구에게 “확~ 마 궁디를 주 차삐까!”라고 버럭 화를 낼 때도(‘서울메이트’), “마음만은 턱별시”라고 이야기할 때도(‘네가지’) 양상국은 늘 ‘촌놈’스러운 캐릭터였다. 그러나 리얼 버라이어티인 <인간의 조건>에서는 다르다. 건담을 조립하거나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귀엽고, 지렁이를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영리해보이기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내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괜찮은 면, 그러니까 의외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이 좋아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원래 TV 속에서 본 양상국은 촌놈에 마르고 못생겼지만, 최근에는 ‘어, 생각보다 세련되네? 생각보다 안 말랐고, 생각보다 잘 생겼네?’라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뭔가 좀 쑥스럽네요. (웃음)”
먼저 나서서 집안일을 챙기는 모습으로 ‘양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그는 이것이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보여주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무언가에 조급해 하지도 않고, 회피하는 성격도 아니에요. 지금 저한테 주어진 일이 쓰레기 없애기라면 집중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게다가 이번 프로그램은 리얼 버라이어티라서 그런지, 에너지를 더 많이 받아서 더욱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삶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양상국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들을 추천했다. 마치 <인간의 조건>처럼 보는 이를 진심으로 울고 웃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1. <세 얼간이> (3 Idiots)
2011년 | 라지쿠마르 히라니
“제 인생 최고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어요. 유쾌하면서도 상쾌하고, 재미에 감동까지 챙긴 보기 드문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남자의 진한 우정과 열정, 용기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인데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인생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요. 아마 친구 손을 꼭 붙잡고 함께 보시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이상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론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수긍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 얼간이>는 강력한 힘을 주는 영화다.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파르한(마드하반), 어려운 집안 환경 때문에 대기업에 취직해야 하는 라주(셔먼 조쉬)와 달리, 란초(아미르 칸)는 능동적으로 학교의 시스템을 바꾸려 한다. ‘잘 될 거야’라는 뜻의 “알 이즈 웰(All is well)”이란 대사는 자꾸만 되뇌게 되는 주문과도 같다.
2. <블라인드 사이드> (The Blind Side)
2009년 | 존 리 행콕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가 정말 깜짝 놀란 영화랍니다. 소소한 재미와 큰 감동이 있었어요. 마음 한 구석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전체적인 영화 구성이 너무 좋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감동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중요한 건 누군가의 성공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성공을 위해 함께 달린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커다란 체구에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진 흑인 소년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를 반기는 곳은 없다. 상류 사립학교로의 전학 역시 그를 구원하진 못하지만, 그런 마이클을 집으로 데려온 리 앤(산드라 블록)은 점차 진짜 가족이 되어주기 시작한다. 상류층 백인 가정이 빈민층 흑인을 돕는 전형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으나,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의 자전적 이야기는 분명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것이다.
3. <달콤한 인생> (A Bittersweet Life)
2005년 | 김지운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 영화 중에서 느와르 장르로는 <달콤한 인생>이 최고인 것 같아요.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쌉싸름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느와르 영화 특유의 분위기에 김지운 감독님의 섬세한 연출력이 더해지면서 이 달콤 쌉싸름함이 예술적으로 표현됐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병헌 씨와 김영철 씨의 연기력은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고, 싸우는 장면들도 눈길을 확 사로잡아요. 느와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무조건 강력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식 느와르의 장을 연 작품을 꼽자면, 단연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잘 나가는 조직의 선우(이병헌)는 보스 강 사장(김영철)의 마음에 꼭 들만큼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신임을 받기 시작한 그는 보스의 애인 희수(신민아)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그 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추락과 조직의 쓴맛뿐이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이지만, 극 중 강 사장의 대사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는 유행어로 회자되기도 했다.
4.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A Letter to Momo)
2012년 | 오키우라 히로유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요괴이야기인데, 상상력이 정말 풍부하더라고요.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으로 평범함 속에서도 뭔가 미묘하게 감동적인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의 더빙 판에는 제가 요괴 ‘카와’역으로 참여하기도 했답니다. 맛깔 나는 사투리로 대사를 했으니 제 목소리 연기도 즐겁게 감상해 주시면 좋겠어요.”
11살의 소녀 모모는 엄마와 함께 도쿄를 떠나 섬으로 이사를 간다. 새로 도착한 집의 다락방에서 모모는 요괴그림이 그려진 책자를 들춰보고, 이로 인해 봉인되어 있던 요괴들이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다. 덩치는 커다랗지만 감성은 누구보다도 여린 이와, 고약한 방귀 냄새를 가진 카와, 순수한 마메 등 세 명의 요괴들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못생겼지만, 모모는 이들과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엔 징그럽던 요괴들이 사랑스러워 보일 정도로 따뜻하고 유쾌한 작품이다.
5. <그린 마일> (The Green Mile)
2000년 | 프랭크 다라본트
“1999년에 제작된 작품인데 약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요. 말 그대로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는 명화인 것 같아요.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들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눈물을 뚝뚝 흘려도 정말 창피하지 않을 정도였죠. 잔잔함 속에서 여운을 느낄 수 있고, 그 감동이 정말 잊히지 않아요. 러닝타임이 세 시간을 넘어가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는 내내 따뜻함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톰 행크스 형님의 연기도 최고랍니다.”
1935년, 루이지애나주 콜드마운틴 교도소 사형수 감방의 간수장이던 에지콤(톰 행크스)은 백인 쌍둥이 여자아이 강간 살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흑인 코피을 만난다. 에지콤은 병을 치유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데다 순진하기까지 한 코피의 무죄를 확신하지만, 코피는 결국 전기의자 위에서 죽음을 맞고 만다.
양상국은 <인간의 조건>을 통해 조금씩 변하는 중이다. “일주일간 체험을 끝내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되잖아요. 그런데 식당에서 밥을 조금만 남겨도 눈치가 보이고, 부득이하게 텀블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면 저를 보는 시선들에 뜨끔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웃음) 물론 백 퍼센트 방송처럼 늘 똑같이 생활할 순 없겠지만, 중요한 건 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것들을 조금이라도 지키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리얼버라이어티 출연이라는 오래 전의 꿈을 이룬 그의 바람은 짐작보다 더 담백하고 단출한 것이다. “항상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선배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껴요. 저도 살아남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저한테 주어지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꾸준히 노력도 해야겠죠.” 이상하게도, 이 남자에게 계속해서 빠져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진제공. 코코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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