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전성기 때는 남들이 콩트를 하면 토크를 시도하고 실내에서 하면 야외로 나가는 등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서 성공했다. 대중들이 이걸 좋아할까에 대한 고민보다 자기 확신이 더 강했나보다.

이경규: 솔직히 말해서 대중들이 좋아할까 안 좋아할까는 별로 신경 안 쓴다. 내가 먹고 살 수 있을까 없을까를 더 많이 걱정한다. 그게 더 중요하다. 먹고 사는 기반이 없으면 방송도 없다. 그러면 꿈도 꾸면 안 된다. 내가 살아야 남도 도와줄 수 있고 꿈도 꿀 수 있는 거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방송 외에 사업을 많이 해야 된다. 그래서 김밥 장사도 하고 닭 장사도 했다.



Q. 생존에 대한 집념이 굉장히 강한 것 같다.

이경규: (이)윤석이나 (윤)형빈이한테도 그런 얘길 한다. 솔직히 형은 몇 년하고 그만둬도 되지만 너희들은 10년 넘게 더 해야 되는데 어떡하냐고. 재석이랑 호동이도 지금은 잘 나가지만 언젠가는 잘 못 나갈 텐데 그 땐 어떡할지 걱정된다. 난 잘 나갈 때도 있었고 훅 가보기도 했으니까. 그 때 받은 상처가 굉장히 크다.



Q. ‘그 때’라면 20년 동안 출연했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하차했을 때를 말하는 건가.

이경규: 잘린다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거다. 하차하고 나서 세상이 이렇게 냉정하고 참혹하다는 걸 느꼈다. 인간적인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서 벗어나는 게 힘들었다. 아직도 난 잘할 자신 있고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데 왜 날 떠나보내는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책임감이 날 진짜 힘들게 한다”

이경규│“어쨌든 누구든지 웃길 수 있다” -2

Q. 세상에 대한 원망이 컸나, 자책감이 더 컸나.

이경규: 물론 내가 뿌린 것도 있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는데 내 고집만 내세워서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만큼 내 확신이 강했으니까. 예를 들어 대본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진행될지 다 보인다. 재미없으면 하지 말자고 한다. 그게 문제다. 그런 것도 해보면 의외로 재밌을 수 있는데, 옛날에 성공해 본 사람이니까 경험상 재미없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러니까 스스로 안 하게 되고 새로운 걸 잘 못 만들어냈다. <힐링캠프>는 내가 손을 놓고 제작진한테 다 맡겼기 때문에 잘된 것 같다.



Q.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을 텐데.

이경규: 하… 그게 사람 골 때리게 만든다. 일단 회의에 참석하면 안 된다. 남의 좋은 아이디어를 내 스스로 막을 수 있다. 단지 이런 거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의견을 낼 뿐이지, 옛날처럼 붙잡아놓고 말하지 않는다. 옛날엔 찾아가서 이거 왜 하냐고 따졌는데, 요즘엔 혼자 조용한데 가서 누워서 생각한다. 이걸 왜할까, 그래 그냥 하자.



Q. 그렇게 내려놓으니 어떤가.

이경규: 마음이 편하다. 너무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데 책임감이 날 진짜 힘들게 한다. 남들은 즐겁게 하라고 말한다. 즐겁게 하면 좋긴 한데 막상 해보면 즐겁진 않다.



Q. 유재석과 강호동이 방송이 재밌어서 즐기는 타입이라면, 당신은 모든 짐을 짊어지는 가장 같은 느낌이다.

이경규: 해야 되니까 하는 거다. (웃음) 배우들 세계는 그렇지 않은데 이쪽에서는 우리 나이에 필드에서 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든 거다. 얼마 전에 ‘남격’에 함께 출연하는 주상욱이 “형님, 새벽 네 시에 와서 다음 날 새벽 세 시까지 촬영하면서 제가 이렇게 힘든데 형님은 얼마나 힘드십니까?”라고 묻더라. 하하. 그래서 내가 그랬다. “넌 이거 하나잖아. 난 내일 또 해야 돼.” (웃음) 체력적으로는 힘들지 않은데 정신적으로 힘들다.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고 재밌게 해야 되고 리더로서 솔선수범해야 된다는 게.



Q. 책임감은 타고난 건가.

이경규: 사실 솔선수범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방송하면서 그렇게 변했다.



Q. 만약 함께 활동하는 선배들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이경규: 아무래도 누군가가 있으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책임에서 회피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방송이든 영화든 현장에 가면 내가 제일 연장자다.



Q. 험난한 연예계에서 30년을 꿋꿋하게 버티며 절대 포기하지 않은 가치는 뭐였나.

이경규: 누구든지 웃길 수 있다는 것. 어떻게 웃기느냐는 시대에 따라 바뀌겠지만, 어쨌든 웃길 수는 있다. 얼마 전에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강연을 하러 갔는데, 거기서도 고3들 빵빵 터뜨리고 왔다. 선생님이 아침 9시 강연이니까 학생들이 떠들거나 자도 이해해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의외로 애들이 좋아하더라. 한 명도 안 잤다. 지금 내 앞에 70대 할머니들이 앉아 계셔도 웃길 수 있다.



Q. 과거에 본인을 호랑이에 비유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

이경규: 다 옛날 일이다. 하하. 요즘은 그냥 집 지키는 개처럼 된 것 같다. 편하게.



Q. 어떤 게 더 행복한가.

이경규: 걱정 없는 옛날이 더 좋았지. 옛날에는 자장면이든 라면이든 면 종류를 먹을 때 걱정을 하나도 안 했다. 근데 지금은 음식을 먹으면 탄수화물이 몸에 좋을까 안 좋을까 걱정하는 게 안타깝고 답답하다. 이걸 받아들이는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 내 나이 때 <힐링캠프>를 만난 게 참 좋다.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만났다는 것, (김)제동이랑 (한)혜진이라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건 행운이다.

“10년 후엔 혼자 하는 프로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이경규│“어쨌든 누구든지 웃길 수 있다” -2
Q. 나이가 들면서 경험과 연륜이 쌓이는 것과 별개로 아쉬운 부분도 많겠다.

이경규: 30대엔 즐거웠던 게 많았는데 그게 차차 없어진다. 고등학생들은 뭐 지나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는데 우리는 진짜 프로페셔널하게 웃겨주지 않으면 안 웃는다. 웃음이 많이 없어져서 힘들지. 이것도 단점이 된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 나이 먹으면 더 아프다. 삭신이 다 쑤신다니까. 난 청춘 때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배고파도 아픈 줄 몰랐다. 그 때 아픈 건 아픈 것도 아니다. 진짜 아픈 건 어른들이다. 내가 생로병사 중에서 ‘생로병’까지 겪어봤다. 이제 ‘사’만 남았다. 하하.



Q. 인생에서 ‘사’만 남았다면, 방송에서는 뭐가 남았나. 여전히 시도해보지 못한 블루오션이라든가.

이경규: 딱 하나 있다. 내 이름을 건 ‘이경규 쇼’. (웃음)



Q. 이경규 쇼?

이경규: 게스트 없이 혼자 토크쇼도 하고 코미디도 하고 드라마도 찍고 모든 코너에 다 내가 들어가는 프로그램인데 지금 마지막 카드로 남겨놓고 있다. 10년 후 모든 장르가 다 파괴되면 혼자 하는 프로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벌써 집단 버라이어티가 잘 안 되지 않나. 만약 이게 기획이 되고 방송국에서도 오케이를 해준다면 다른 프로그램에서 모두 손을 떼고 일주일 내내 이거 하나만 해야겠지. 여기에 모든 걸 쏟을 거다. 머릿속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걸 실현하려면 10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Q.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나.

이경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버라이어티의 끝은 어디인가를 고민하다가 나온 답이었다. 10년 전부터 생각했던 거다. 난 서른에 마흔을 생각했고, 마흔에 쉰을 생각했다. 여든에는 세상 떠날 준비를 하겠지. 하하. 막연하지만 10년 후에 뭘 해야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10년 후가 되면 그걸 대부분 이루는 편이다. 나이 60이 되면 영화감독을 다시 할 거다. 독립영화가 됐든, 저예산 영화가 됐든, 상업영화가 됐든 반드시 내 손으로 연출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믿는다. 난 일을 막 벌이지는 않는다. 몇 십 억짜리 영화를 만들지도 않을 거고, 영화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도 없다. 정말 좋아해서 하는 거다.



Q. 60세에 <전국노래자랑>을 시작한 송해 선생님처럼?

이경규: 송 선생님이 환갑에 <전국노래자랑>을 맡아 브랜드를 만드신 걸 보면 아직도 감각이 살아계신 거다. 그걸 배워야 한다. 나도 송 선생님처럼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30년은 더 해야 된다. 내가 선배님이 하신 프로그램을 영화로 만든 것처럼 후배들도 내 얘기를 영화로 만들면 우리 코미디 분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뀔 것 같다. 영화계에서 나이 많은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는 것처럼 한 분야에서 오래 했던 사람이 상을 받아야 후배들의 생명력도 길어진다. 우리 후배 개그맨들은 다 제 2의 유재석, 강호동 같은 MC가 되고 싶어 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다가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프로그램의 왕이 되는 게 코미디언들의 꿈이다.



Q. 그런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이경규: 해봐라, 얼마나 어려운지. 하하하하. 진짜 힘들다. 내가 방송을 30년 하면서 아파서 방송을 펑크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파도 주사 맞고 와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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