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자식 자랑하듯 자신이 준비해 온 음악들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소개하며 한 시간을 알차게 채운 이윤지의 성실함은 그가 그동안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브라운관 속 이윤지는 언제나 귀엽고 발랄하지만 결코 상식의 경계선을 뛰어넘는 법이 없는, 굴곡 없는 인생을 사는 아가씨였다. MBC <더킹 투하츠>에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은 재신 공주가 이윤지에게 “늘 숨이 찼던” 캐릭터였던 건 당연하다. “어떻게 보면 준비하고 있을 때 닥친 시련은 시련이 아니잖아요. 그건 그냥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잖아요. 재신에게 닥친 시련처럼, 재신 역시 저한테 예고 없는 시련으로 다가왔어요. 정말 대기 시간동안 아무것도 못했어요. 책도 못 읽고, 학교 숙제도 못하고, 산책도 못하고. 재신이 성격을 이해하려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이렇게 된 것 같아요. 감정의 기복이 컸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어요.” 대본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윤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줬던 것은 음악이었다.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그 때에만 집중적으로 듣는 노래들이 생겨요. 이번 <더킹 투하츠>를 할 땐 사랑에 관한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작품마다 저만의 OST 앨범이 있었던 셈이죠. 이걸 빨리 인지했으면 폴더별로 정리를 해놨을 텐데 너무 아쉬운 거 있죠? 이제부터라도 작품별 OST 폴더를 만들까 해요.” 다음은 때로는 재신 공주에게 힘이 되고, 때로는 재신 공주를 연기하는 이윤지의 어깨를 다독여준 곡들이다.
“영화 <만추>는 아직 못 봤는데 영화 포스터에 있는 탕웨이의 스틸샷이 참 좋았어요. 이 작품이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탕웨이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잘 모르지만 제가 연기를 하면서 이런 스틸샷을 찍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OST는 재신의 대사를 읽으면서 많이 들었던 곡이에요. 일단 탕웨이의 목소리가 힘이 됐고, 사랑은 지나가지만 어쨌든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내고 살아가야 한다는 가사와 그녀의 목소리가 참 잘 어울리더라고요. <더킹 투하츠>가 추운 봄에 시작했고 이제 뜨거운 여름이 오려고 하는데, 재신은 여름 없이 혼자 가을로 훌쩍 가버린 느낌이었어요. 그야말로 만추잖아요. 잘 때도 틀어놓았던 노래라 이젠 전주만 나와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아요. 영화 보면 더 힘들 것 같아요. 어떡하죠? 영화 보지 말까요? (웃음)”
“‘만추’가 재신 연기를 하던 도중에 발매된 노래였다면, ‘그게 사랑’은 예전부터 듣던 노래였어요. 평소에 무한 반복해서 듣던 노래였는데, 갑자기 이 노래와 재신이 만나면서 제 플레이리스트의 우선 순위권으로 들어왔죠. 하하. 제목부터 임팩트가 있잖아요. 특히 이 노래는 간주가 참 좋아요. 가사가 없는 연주곡도 좋아하지만 가사가 지나고 난 후 음악만 들리는 구간도 정말 좋아해요. 노래 전체를 좋아해서 듣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게 사랑’처럼 간주가 좋아서 듣게 된 노래도 있고, 좀 창피하지만 1분 몇 초부터 몇 초까지 좋은 곡도 있어요. (웃음) 카페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는 도중에도 갑자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어떤 부분에 탁 꽂히면, 친구와 얘기를 끝내고 카운터에 가서 이 노래 전에 나왔던 곡목이 뭐냐고 물어봐요.”
“좋아서 하는 밴드 콘서트를 갔는데 소란의 보컬 분이 관객으로 오셨어요. 좋아서 하는 밴드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전 계속 그분만 쳐다봤어요. (웃음) 이젠 이 노래가 꽤 유명해졌더라고요. 소란 분들한테는 좋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아까워요. 이 노래가 나온 시기가 정말 봄이 오기 직전이었는데, 벚꽃이 내린다는 표현이 정말 좋았어요. ‘내 눈앞이 분홍으로 물들어간다’는 가사도 좋아하고요. 어떤 대본을 읽을 땐 참 예쁜 노래였는데 어떤 대본을 볼 땐 참 슬픈 노래가 되어있고, 마지막에 들을 땐 ‘내린다’는 표현이 정말 슬프게 다가왔어요. 봄날 재신이를 만나면서 어떻게 해야 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때 그 봄에 이 노래가 함께 있었어요. 덕분에 봄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보통 영화를 보면 OST를 꼭 찾아 듣는 편”이라며 최근에는 영화 <러브픽션>의 주제곡도 인상 깊게 들었다는 이윤지의 네 번째 추천곡은 <냉정과 열정 사이 OST> 앨범에 수록된 ‘History’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 앨범은 전곡이 다 좋아요. 제 마음을 알아주는 앨범이라고 할까요? 그중에서 어렵게 고른 ‘History’ 역시 정말 좋아해서 차마 추천하기 어려운 곡이에요.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를 먼저 봤는데 책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어요. 다행히 영화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둘 다 정말 좋게 봐서 제가 혼자 가는 첫 여행지로 이탈리아 피렌체를 선택했어요. 그곳에서 ‘History’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 홀로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윤지의 마지막 추천 곡은 Jason Mraz의 ‘I Won`t Give Up’이다. “노래 제목과 재신이의 상황이 잘 맞았어요. ‘I Won`t Give Up’이라는 가사가 나올 때마다 재신으로서 힘을 얻는 느낌이었고, 윤지로서도 많이 다짐을 하게 만든 곡이에요. 재신이 울고불고하면서 모두를 떠나보낸 후 은시경의 환영을 보며 혼자 다짐을 하는 신이 있어요. 그 신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재신은 정말 많이 파헤쳐진 캐릭터였는데, 그 아픔을 힐링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어요. 비록 제이슨 므라즈가 ‘I`m Yours’로 히트를 치긴 했지만, 저한테는 ‘I Won`t Give Up’이 최고의 곡인 것 같아요. 좋은 노래들은 어떻게든 귀에 꽂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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