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10│나희경 “나를 떨리게 하는 보사노바가 좋다”
인디10│나희경 “나를 떨리게 하는 보사노바가 좋다”
나희경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장면 하나. 그녀가 기타를 쥐고 목소리를 내는 순간, 스튜디오는 공연장이 되어 버렸다. 소품으로 켜 놓은 초들은 무대의 조명이 되었고 기타 선율에 맞춰 속삭이는 음색은 오후의 무료함을 기분 좋은 나른함으로 바꿔 놓았다. 나희경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장면 둘. 하고 싶은 일은 단계별로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실천하는 리얼리스트로서의 자세를 얘기하다가 “기차 탈 때 보사노바를 들으면 심장 박동과 기차소리가 맞물려 낭만적”이라는 로맨티스트의 팁을 줄 때, 그녀에게선 브라질을 대표하는 칵테일 까이피리냐 항이 났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이었을까. 라임의 알싸함 뒤에 사탕수수의 달콤함을 내놓는 까이피리냐처럼 나희경은 뮤지션으로서 현실적인 인식과 설렘을 동시에 들려주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켜둔 향 때문이었는지, 그녀가 들려준 보사노바 때문이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다음은 6월의 어느 더운 날, 그녀에게 홀렸던 기록이다.

4월에 브라질에서 돌아왔다. 이번은 몇 번째 브라질 방문이었나.
나희경 : 서울로 돌아 온지 두 달 쯤 됐다. 두 번째 갔다 온 거고, 한 번 갈 때 맥시멈으로 있으려고 노력한다.

처음 브라질에 갔을 땐 어땠나. 지금은 브라질 현지에서 보사노바를 공부해온 뮤지션으로도 이름이 알려졌는데.
나희경 : 맨 처음 간 건 녹음을 끝내고 나서였다. 티켓은 끊어놨는데 막상 가려고 하는 날이 임박해오면서 몸이 안 좋아졌다.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겨서 비행기도 타면 안 되고, 의사가 2년 동안은 외국에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 집에서 요양한다고 누워있으면서 브라질에 가서 할 것들을 적어둔 노트를 버렸다. 아프기도 하고 슬프고, 나는 음악을 만나러 가는 건데 이런 계획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래서 한 달 반 동안의 요양을 끝내고 나서는 그냥 쉬러 가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흥분이나 기대감 같은 건 없었고, 그냥 모든 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래도 그 당시 음반을 서른 장이나 가지고 갔다고 하는데 그 정도였으면 음악에 대한 의지가 있었나보다.
나희경 : 다른 욕심은 별로 없었고, 포르투갈어를 잘 못하니까 나를 설명하는 입 대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말이 금방 늘었다. 이런 자랑해도 되나? (웃음) 3개월 됐을 때, 2년 살았던 사람이랑 비슷해졌다.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내가 머물렀던 집 덕분이다. 이번 앨범 의 표지가 바로 그 집이다. 아버지가 브라질 전통악기 연주자시고, 어머니가 화가인 그런 집이어서 매주 뮤지션들이 놀러 와서 연주하고, 노래하고, 같이 놀다보니 언어가 많이 늘었다.

“목소리는 아직도 변하고 있다”
인디10│나희경 “나를 떨리게 하는 보사노바가 좋다”
인디10│나희경 “나를 떨리게 하는 보사노바가 좋다”
브라질은 어떤 곳이던가? 흔히 생각하기에 뜨겁고, 정열적이고, 화려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나희경 : 정말 그대로다. 정열적이고, 화려하고, 자유롭고. 뭐든지 가능한 나라? (웃음) 브라질하면 삼바, 카니발, 되게 섹시한 느낌도 강한데 정말로 그렇게 섹시한 요소가 많다. 사람들이 자유롭고 여유로운 곳이다. 물론 브라질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한다. 브라질은 큰 나라고 나는 주로 리우데자네이루에 있었으니까. 그곳의 분위기는 다른 도시랑은 다르다. 거기는 이파네마 해변, 코파카바나 해변 등이 있는 해안도시기 때문에 사람들도 일하는 걸 싫어하고, 해안가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늘어진 달까?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상파울로에 비해 한국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곳에 사업에 하는 분들이 대기업을 제외하곤 다 나갔다더라. 상파울로 같은 경우도 한국보다 30% 느리다고 하는데 여기는 더 느리니까. (웃음) 다들 “해변가자, 해변가자”를 입에 달고 사는 도시다.

그런 나른한 정서는 보사노바라는 장르 자체의 특성인 동시에 핵심이기도 한데 서울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곳으로 돌아와서도 그 리듬이 유지가 되나?
나희경 : 낭만 속에 빠져 있다가 서울로 오니까 아직 적응이 안 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브라질에서 녹음을 하다 와서 그렇게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래서 더 매력 있는 것들이 여기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최대한 포커스를 맞추고, 마음을 여유롭게 먹으려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마인드가 있긴 하다. 여기선 많이 하는 새벽합주도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더라. 작년에 브라질에서 연주자를 한 분 모시고 왔는데, 이곳 연주자들이랑 시간이 안 맞아서 오자마자 새벽에 합주를 했더니 충격을 받았다. “이럴 수가, 이런 곳이 있다니!” 하시더라. (웃음) 그래도 우리나라가 빠르게 보이지만 우리 민족은 음악도 굉장히 여유 있고, 흥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타이트함을 풀어주는 어떤 계기만 있다면, 사람들이 느슨해진다. 그런 순간을 음악을 통해서 많이 만들어가고 싶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내 음악을 듣고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가요를 보사노바로 다시 부른 이번 앨범 뿐 아니라 1집 < Heena >도 브라질에서 녹음했는데 그곳에서의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나?
나희경 : < Heena >는 음악적인 것은 모두 브라질에서 했다. 이번 음반도 브라질에서 다 끝내왔는데, 마스터링을 한국에서 했다. 어떤 것이 정석적인 작업인지 모르겠지만 브라질이 한국과 좀 다른 것은 녹음할 때 분위기? 막 농담하다가 녹음하러 들어갔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호흡 등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서로 농담하다가 한 번에 쭉 녹음을 했다. 연주자들이 10년 동안 함께했던 분들이고, 연륜이 있어서 웃다가 조금만 쳐도 아름답게 나오더라.

처음 브라질에 다녀온 후 낸 음반 < Heena >와 보싸다방으로 냈던 에서의 목소리가 다르다. 브라질에서 접한 보사노바에 영향을 받은 건가, 아니면 일부러 창법에 변화를 준 건가?
나희경 : 원래는 굵직굵직하고 바이브레이션이 강하고 기교가 많은 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보사노바나 내가 좋아하는 보이스의 곡을 탐구하면서 음색을 바꿨다. 보싸다방 할 때 어느 정도 바뀐 상태였는데, 좀 더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을 희망했다. 그래서 브라질에서 첫 앨범을 만들 때, 처음에 녹음을 하고나서 녹음된 걸 다 버렸다.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다시 다 녹음했다. 음색은 물론이고, 좀 더 달콤하고, 좀 더 귀에 속삭이는 듯하고, 리듬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런 것에 신경쓰다보니까 음색이 변했고, 이번엔 가요 안에서도 너무 가요 같지 않고 브라질 리듬이 살아있길 원해서 또 좀 변한 것 같다.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브라질에 가기 전부터 보사노바를 시작한 셈인데, 맨 처음 듣고 가슴이 설?던 곡을 기억하나?
나희경 : 굉장히 옛날인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것은 ‘춘천 가는 기차’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데 중학생 때 처음 듣고 가슴이 너무 설레서 춘천 가면서 듣고 싶었다. MP3에 그 곡을 넣고 혼자 기차에 오른 적이 있었다. 가는 길에 그 노래만 반복해서 듣고, 막국수를 먹고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에는 ‘이 기차는 춘천 가는 기차가 아니니까 듣지 않아야 해’라면서 듣지 않았다. 그때는 보사노바인지도 몰랐지만 그 리듬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 첫 자작곡도 그런 리듬으로 썼었다. 내 곡을 들으면서 혼자 황홀경에 젖어서 ‘좋다, 내 곡인데’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웃음)

‘춘천 가는 기차’가 보사노바 입문의 계기가 됐던 곡인데, 이번 앨범에 녹음할 때 감회가 새로웠겠다.
나희경 : 이번 앨범 수록곡들의 작곡가들은 어릴 적에 브라질 음악에 빠지게 만들어주셨던 분들이라, 하나하나 새롭고 좋았다. 특히 브라질 연주자들에게 곡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너무 좋았다.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가사에서 밀고 당기는, 달달한 감정을 설명하면서 서로 깔깔 웃기도 하고 ‘사랑이란 정서는 인류 공통의 정서구나, 이런 건 다 공감을 하는 구나’를 느꼈다. 안 될 때는 상황극도 했다.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 같은 경우에는 말로만 하면 느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림도 그리고, 연주자한테 “여기 있어라”고 한 다음에 내가 도망가고, (웃음) 다들 왜 이렇게 곡들이 좋냐고 놀라더라.

초등학교 때 자작곡을 만들고 중학교 때는 음악 관련 기기를 사려고 물건도 팔 정도였는데 대학에서는 음악이 아닌 심리학을 전공했다.
나희경 : 부모님께서 음악 하는 것을 10년 동안 반대 하셨다. 그래서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평균 97점을 넘어야 음악 학원비를 주셨고, 대학 때는 장학금도 타서 보여드렸다. 그래야 내가 잘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부모님께서 특별히 성적, 성적 하신 게 아니라 음악을 업으로 삼는 걸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본 타협안이 일반 대학을 간 후에 음악을 하겠다는 거였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음악심리학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공부하는 음악 지각인지 심리학은 감상자를 연구하는데 ‘인간은 음악을 어떻게 듣는가’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몇 년 후에는 아프리카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인디10│나희경 “나를 떨리게 하는 보사노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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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만드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그 때 배운 게 영향을 끼치나?
나희경 :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웃음) 물론 심리학을 공부한 건 내 삶속에서 너무나 도움이 됐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인생에서 항상 새기고 있어야 하는 명제를 깨달았다. ‘인간은 불완전 한 존재’라는 것, 4년 동안 배운 가장 큰 것은 그거다. 음악 지각인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인지과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했다. 굉장히 매력적이고 활용가치가 높은 학문이지만 내 창작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는 부모님과의 약속도 지키면서 음악도 포기하지 않았다. 모범생인 동시에 자신의 뜻 또한 절대 굽히지 않는 고집이 느껴진다.
나희경 : 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부모님 말씀을 들은 것도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건 꼭 하고 만다. 철두철미한 면도 있고. 고등학교 때 다른 전공을 찾을 때도 최선책 그 다음 차선책 이런 식으로 그래프 만들었다. (웃음) 지금도 음악하면서 만든 긴 청사진이 있다. 내 음반은 내 커리어인 동시에 ‘난 이렇게 공부해왔어’라는 발자국이기도 하다. 첫 음반은 내가 보사노바 클래식에 들어갔다 나왔어, 두 번째는 내가 가요를 정복하기 위해 배우고 있어.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다. 처음부터 곡을 만들려고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곡을 많이 저장해두고 있기도 하고. 그러면서 천천히 내가 배운 것들을 접목하려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있는 중이다.

본인의 무기를 하나씩 장착해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보사노바 말고도 ‘저걸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장르가 또 생길 수 있겠다.
나희경 : 한국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내가 아무리 십 년, 이십 년 브라질에 왔다갔다 해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낼 수 있는 정서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그걸 잘 믹스할까 요리조리 소스들을 찾아 나설 것 같다. 혹시 모르지. 몇 년 후에는 아프리카에 가 있을지도. (웃음) 요즘엔 유럽 쪽의 보사노바도 꽤 괜찮아서 내년엔 유럽에 갈 생각이다. 파리의 보사노바는 차분하고 이지적인 느낌에 재즈적인 요소들이 더 많이 들어가 있더라. 처음 보사노바에 빠졌을 때는 오리지널만 들었는데, 지금은 퓨전에도 끌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보사노바는 열광 받는 장르는 아니다. 실제로 가장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인 MBC 의 ‘나는 가수다’에는 ‘보사노바 필패’(보사노바로 편곡하면 무조건 탈락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나희경 : ‘나는 가수다’처럼 화려하게 보여지는 것도 있는 한편, 오래 들어도 편하고 질리지 않는 음악이 있지 않나. 맛있는 밥 같은. 시장성 같은 걸 생각 했더라면, 보사노바를 하러 브라질에 가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계속 마니악한 걸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너무 어린 애 같은 발상일지도 모르겠는데 저런 요소들을 내 안에 갖고 싶다, 저 리듬과 저 자유로운 뉘앙스와 보이스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보사노바가 경쟁력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데다 카페에 흘러나오는 많은 곡들이 보사노바다. 실제로 내 노래를 처음 들었던 곳도 첫 번째가 미용실, 두 번째가 초밥집이었는데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 친숙하고 좋은 요소를 조금 더 브라질리언에 가깝게 진짜배기로 만들어서 내 곡으로 발표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공연을 보니까 보사노바를 하면서 느끼는 설렘과 순수한 행복이 표정에서도 나오고, 손짓에서도 나오더라. 보사노바라고 하면 정적인 분위기를 연상하기 쉬운데 어깨춤도 추고 꽤 역동적이다. (웃음)
나희경 : 주체가 안돼서 100% 나온다. 바보처럼 감정이 주체가 안 되서 좋으면 좋다, 멋있으면 멋있다, 이렇게 말한다. 브라질에 가서 노래를 부를 때도 이런 성향 때문에 관객들이 호응을 많이 해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도, 음악에 대한 반대가 시작하기 전에 사는 게 너무 행복한 거다. 그래서 거실에서 어머니가 빨래를 개고 계시면 옆에서 뒹굴뒹굴 하면서 “아, 태어나서 너무 행복해” 하면서 막 굴러다녔다. 그러고 10년간은 고생했지만. (웃음) 그래도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다면, 인간에 대해 배울 기회,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 무언가와 타협하면서 열정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힘들었을 거다. 음악을 하기위해 10년을 돌아왔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보사노바 자체를 하는 것을 넘어서 이 장르를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나희경 : 설렘과 여유, 호흡 같은 단어들. 노래할 때에도 귓가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하려고 신경을 쓴다. 리듬은 충분히 바운스감이 살도록, 나를 떨리게 하도록 하고. 나를 떨리게 할 때 보이스도 좋다. ‘아’를 하더라도 끝나는 지점에서 어떻게 끊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 장르를 통해 전하고 싶은 건 그거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나란 사람, 정서, 인간적인 것들, 불완전한 것들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싶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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