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 리들리 스콧
“SF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상영 당시 굉장히 충격을 받은 작품이에요. 요즘처럼 CG 기술이 발달하지 않을 때 찍은 영화인데도 지금 봐도 유치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해리슨 포드가 인조인간을 인간과 분류하고 처벌하는 역할을 하는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파헤치죠. 개인적으로 ‘명장면’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에서는 마지막에 인조인간을 연기한 룻거 하우어가 수명을 다해 죽고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장면이 굉장히 마음에 남아요. 인조인간의 죽음인데 사람이 죽을 때보다 더 마음이 아플 정도로요.”
인간과 똑같이 생기고 지능도 비슷하고 감정도 느낄 줄 아는,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있다. 그렇다면 그 존재에게도 천부적 인권이 존재하는 것일까. 디스토피아적인 우울과 유전 공학으로 만든 인조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요소들 속에서도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이 철학적인 질문일 것이다.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 앞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과 우리 사이 경계를 나누는 게 부당한 건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이후 를 비롯한 수많은 SF 작품 안에서 반복된다. 보는 이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하지만 그래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추천할 만한 작품.

1999년 | 토니 케이
“에드워드 노튼을 굉장히 좋아해요. 가끔 감독님들이 “너는 아픈 경험이 없어서 안 돼. 연기는 다 경험을 해봐야 돼”라는 얘기를 하실 때 저도 ‘그래, 맞아’ 생각했는데 에드워드 노튼은 그 엄청난 카리스마나 독특한 분위기와 달리 의외로 부유한 집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자란 사람이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의 출연작 중에 제일 인상적인 를 보면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어요. 굉장히 폭력적인 인종차별주의자로 나오는데 특히 흑인을 살해하는 장면은 공포영화보다 더 잔인해요. 결국 그는 감옥 안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지만 그걸 동생이 대물림하는 걸 보게 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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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 피터 호튼
“슬픈 영화도 좋아하는데 사실 사랑의 아픔을 그린 멜로 영화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더라고요. 는 어린 친구들의 아픔과 슬픔을 그린 작품인데, 이 영화를 봤던 건 저도 어렸을 때죠.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스토리는 조금 간단해요.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던 에이즈에 걸린 아이가 옆집 친구와 같이 치료약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죠. 하지만 순간순간 감정을 너무나 잘 드러내는 아이들의 표정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울었죠. 또 지금은 저도 아빠가 되었기 때문인지 어린 아이들이 아픈 장면 같은 걸 보면 굉장히 마음이 아파요.”
90년대 중반, 센티멘탈한 감정을 눈물로 풀고 싶었던 중고등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몰렸던 적이 있었다. 눈물 하나는 확실하게 뽑아준다는 입소문 때문이었다. 사실 에이즈에 걸린 덱스터의 치료약을 찾으러 가는 여정은 담담하고 때로는 유쾌하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진 덱스터와 그를 위로해주는 에릭처럼 세상에서 보호받아야 할 두 어린 존재가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과정을 지켜보던 이라면 마지막 덱스터의 죽음과 에릭의 표정을 보며 눈물을 참기란 어려운 일이다.

2003년 | 리처드 커티스
“사실 굉장히 밝은 영화잖아요. 그런데도 극장에서 보며 계속 울었어요. 내가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매 에피소드마다 울컥하게 만드는 게 있어요. 휴 그랜트 얘기나 키이라 나이틀리 얘기 모두. 사실 슬픈 영화는 극장에서 좀 울어도 되는데, 안 그런 영화인데도 감동적이어서 울게 되니까 좀 창피했던 기억이 있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혹시 아직 안 본 분이 있다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개봉 당시 이성 친구끼리 극장에 갔다가 손 붙잡고 나오는 영화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만큼 각각의 인물들이 날줄과 씨줄이 되어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은 보는 이의 연애 세포를 자극한다.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마크(앤드류 링컨)의 스케치북을 이용한 고백 에피소드처럼, 때로 사랑은 이뤄질 수 있느냐 없느냐 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찾아오고 또 드러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 불가항력적인 힘은 때로 다른 영화에선 비극적으로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힘으로 그려진다.

2011년 | 게빈 오코너
“이종격투기 영화라고 해서 그냥 홍콩 액션 영화를 따라한 그저 그런 무술 영화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격투기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들 간의 애증을 풀어가는 이야기더라고요. 특히 좋았던 건, 굳이 아버지와 아들들 사이에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영화가 따분해질 수 있거든요. 그냥 현재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과거 무슨 일이 있었구나, 라는 상상을 관객에게 맡기는데 덕분에 영화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죠. 부자간의, 형제간의 진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인데 결선에서 형과 동생이 싸우는 장면은 정말 울컥하는 기분으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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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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