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지나간 푸름을 그리워하고 소멸하는 것을 부여잡는 마지막 시간일지 모른다. 어느 때보다 우울의 그림자가 짙은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 3>)은 그런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빽’과 ‘스펙’ 없이 빚만 갖고 취업 전쟁에 뛰어든 인물 백진희가 있다. 살벌한 취업 전쟁터에서 씩씩하게 걷던 진희는 어느 순간 계상을 향한 짝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한 여자가 됐다. 모든 생물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조용히 숨을 죽이듯, 활짝 핀 웃음보다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싱그러운 고백은커녕 좋아하는 사람에게 부담될까 “제가 선생님 좋아한다는 말, 그거 별거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시라고요. 제가 원래 아무나 좋아하고 그러거든요”라며 억지로 웃어 보이는 여자. 맛있는 음식 하나에 “아~싸!”하며 좋아하는 생생함은 더는 그곳에 없었다.

거친 세상 속 홀로 서 있는 이 캐릭터가 유난히 시리도록 아팠다면 이를 연기하는 배우 백진희의 동그란 눈망울이 더 아이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촬영할 때 다 내가 하려고 한다”는 백진희는 어린 얼굴에 어른스럽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배우다. 영화 <반두비>, KBS <드라마 스페셜> ‘비밀의 화원’처럼, 주로 학생 역을 연기했던 백진희는 <하이킥 3>을 통해 더 깊이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주제의식이 뚜렷한 영화를 좋아하는 확고한 취향이 작품을 고르는 데 조금씩 반영”이 될 만큼 자신의 길을 닦아 가는 것에 익숙한 이 배우는 백진희라는 캐릭터를 “먹고 살기 바쁜 88만 원 세대의 대표”이면서 “이제 막 느끼기 시작한 사랑에는 소극적인” 사람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친동생으로 대했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린 계상을 바라보다 혼자 눈물 섞인 비빔밥을 먹는 모습처럼 어떻게든 스스로 이겨내는 배우 자신을 닮아가고 있다. 백진희가 추천한 다섯 곡 또한 시린 겨울을 거치고 봄을 준비하며 듣기에 좋은, 성장통 같은 노래들이다.




1. Matt Wertz의 < Christmas Just Does This To Me (Single) >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듣는 노래에요. 매튜 워츠의 곡은 크리스마스의 쓸쓸함을 달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해주는 거 같아요.” 백진희가 첫 번째로 추천한 곡은 미국의 싱어 송 라이터 매튜 워츠의 캐럴이다. 어릴 적 미술을 공부했던 매튜 워츠는 졸업 후 싱어 송 라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한국에는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로 알려진 영화 < My Super Ex-Girlfriend >의 OST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0년 싱글로 발표된 ‘Christmas Just Does This To Me’은 다른 악기 없이 귓가에 속삭이듯 조용히 시작하는 보컬이 특징이며 “혼자 생각하는 걸 즐긴다”는 백진희와도 어울리는 곡이다.



2. Justin Timberlake의 <2집 FutureSex/LoveSounds>
섹시하다가도 감미롭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매력은 섹시한 춤으로 무대를 휩쓸다가도 조용히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듣는 이를 사로잡을 때 극대화된다. 백진희 또한 이런 매력에 빠진 듯했다. “어느 날 TV에서 우연히 저스틴 팀버레이크 콘서트를 보게 됐는데 수트를 입고 피아노를 치면서 이 곡을 부르는 모습에 반하게 됐어요.” 솔로 1집 이후 4년 만에 발매된 < FutureSex/LoveSounds >의 마지막 트랙 ‘(Another Song) All Over Again’은 떠나간 사랑에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고백을 담은 솔직한 곡이다. 가사 만큼이나 애절한 피아노 선율과 멜로디 사이에서 여유롭게 리듬감을 즐기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백진희처럼 그의 팬이 될지 모른다.



3. Ledisi의 < Pieces Of Me >
종종 내 이야기 같은 음악들이 있다. 백진희에게는 레디시의 ‘Pieces Of Me’가 바로 그런 곡이다. ‘Pieces Of Me’는 데뷔 앨범 <1집 Lost And Found>로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며 주목을 받은 레디시가 지난해 발표한 곡이다. “레디시 노래는 재즈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곡 분위기들이 다 좋아요. 그중에서도 이곡 가사가 굉장히 와 닿아요. 특히 ‘내가 드러내는 부분은 내 전부가 아니라 내 일부분’이라는 가사가 요즘처럼 <하이킥 3>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때 느끼는 감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음역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레디시의 목소리 뒤에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을 때조차 외롭다’고 고백하면서도 ‘난 앞으로도 때때로 실수를 하겠지만 결국에는 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자신감도 숨겨져 있다.



4.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의 <1집 유실물 보관소>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은 다 좋아해요! 저를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거 같아서. 하하.” 백진희의 말처럼 에피톤 프로젝트 음악은 조용한 독백을 닮았다. 그 중 심규선이 부른 ‘선인장’은 가시가 많아서 가까이할 수 없는 선인장이 언제든 힘들 때 힘이 되겠다는 위로를 건네는 가사가 특징이다. 백진희에게는 이 노래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음악영화 <어쿠스틱>을 찍을 때 항상 이 곡을 들었어요. 음악은 후반 작업 때 나와서 연기할 때는 음악과 잘 묻어날까 고민을 했거든요. 감독님과 여러 번 상의하면서 이 곡으로 정했어요. 촬영장 갈 때마다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5. Norah Jones의 <2집 Feels Like Home>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뮤지션. 백진희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의 주인공 노라 존스는 그런 뮤지션들 중 한 명이다. “비 오는 날이나 집에 혼자 있을 때 노라 존스의 노래를 자주 들어요. 노라 존스의 음색도 좋아하고,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보여준 연기의 느낌도 좋았어요. 연기를 배우지 않았는데 그 느낌이 인상적이더라고요.” 노라 존스는 ‘Don`t Know Why’가 수록된 1집 <1집 Come Away With Me>부터 평단과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2집 < Feels Like Home >의 타이틀곡 ‘Sunrise’는 흥겨운 멜로디와 나른한 듯 감미로운 노라 존스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곡이다.




<하이킥 3> 속 진희는 계상을 떠나보낸 다음 날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었다. 하선의 위로를 받고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린 거죠.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을 거예요”라며 당차게 웃는 진희에게 갑자기 행복을 얻는 동화 같은 행운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현실적인 상황은 진희를 매 순간 온 힘을 다하고 견디며 성장하는 어른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작지만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열매처럼 ‘윤 선생님’을 좋아하는 백진희도, 배우 백진희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지 않을까. <하이킥 3> 결말만큼이나 배우 백진희의 미래도 궁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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