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으다, 완전 조으다, 대박 조으다. tvN (이하 ) 5라운드에서 첫 1위를 한 이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더니 기어이 정규리그 우승까지 거머쥔 ‘라이또’ 팀에게 자신들이 직접 만든 유행어보다 더 적절한 축하 메시지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이야 촐싹맞게 “자리주삼! 자리주삼!”이라 외치는 양세형, 귀여운 애교와 무시무시한 스킬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예삐공주’ 이용진, 묘하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찐찌버거’ 박규선이 없는 ‘게임폐인’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지만, 세 사람이 모여 ‘라이또’ 팀을 결성하고 ‘게임폐인’ 코너를 무대에 올리기까지는 “운명”에 가까운 드라마틱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양세형과 이용진이 한 살 어린 동생 박규선을 구박하고 놀리는 모습마저도 환상의 팀워크로 비춰질 만큼 죽이 잘 맞던 세 남자와의 정신없었던 대화를 옮긴다.정규리그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우승이 확정됐다.
박규선: 사실 이렇게 초대박 코너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무대에 올렸다. 한 5등 정도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상위권 계단에만 올라가자.
이용진: 잘해봤자 3위? 근데 1라운드에서 3위를 했다. 그 때 방송을 보면 셋 다 정말 좋아하고 있다. 우와, 됐어!
“‘게임폐인’은 진짜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5라운드에서 첫 1위를 했을 때 박규선은 눈물까지 보였는데, 어떤 의미의 눈물이었나.
박규선: 형들이랑 알고 지낸지 거의 10년이 됐는데 내가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울면 울었지, 사적인 자리에서도 남들 앞에서 절대 눈물을 안 보이는 성격이다. 세형이 형이랑 용진이 형은 군대 갔다와서 바로 방송에 복귀했지만, 나는 그 사이에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이 겹쳤다. 사람들이 ‘뭐야, 너 안 웃겨, 이제 끝났잖아’라고 얘기할 때마다 웃기는 걸 꼭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걸 할 무대는 없었다. 1위를 하는 순간 그 상처들이 다 치유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자, 참자했는데 목에서 울컥 올라왔다. 원래는 아예 개그를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게임폐인’ 코너는 박규선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
이용진: 쉽게 말해서 규선이가 차를 만들었으면 우리 둘이 도색작업을 한 거다.
박규선: 원래 ‘게임폐인’은 ‘YT패밀리’의 성민이 형이랑 게임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성민이 형과 하려던 코너였는데, 안타깝게도 형이 당시 방송정지 상태였다. 그 때 운 좋게 세형이 형이 내 손을 잡아줬고 마침 제대했던 용진이 형도 생각이 났다. 이렇게 세 명을 떠올려 보니까…
이용진: 너무 괜찮았지? 응? 이거다 싶었지?
박규선: 그 전까지는 계속 바퀴가 겉돌고 있었는데, 서로 “할래?”라고 말하는 순간 바퀴가 딱 맞아떨어졌다. 어? 이건데?
양세형: 개그는 똑같은 스타일끼리 모이면 안 된다. 한 명은 연기를 잘해야 되고 한 명은 ‘또라이’ 기질이 있어야 되고 한 명은 아이디어를 잘 짜야 시너지 효과가 나는데, 우리는 각자 색깔이 다르다. 용진이는 자유분방한 ‘또라이’에다가 자기가 맡은 역할을 120% 살리는 애다. 사실 규선이랑은 개그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 예전에 코너를 같이 할 때도 난 나름대로 규선이를 많이 챙겨줬는데 규선이는 코너가 잘 되면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니니까 나만 느꼈던 질투 같은 게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한 번도 안 싸웠다.
‘게임폐인’이라는 코너에 대해 서로 의견이 잘 맞았나 보다.
박규선: 이 코너에 대해 진짜 재밌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세형이 형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용진이 형은 재밌긴 한데 너무 극소수를 대상으로 한 코너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이것 가지고도 우리끼리 엄청 싸웠다.
이용진: 싸운 건 아니고 의견충돌이지.
박규선: 원래 술을 안 마시는데 집에서 혼자 소주를 딱 세 잔 마시고 형들한테 얘기했다. 대학로에서 ‘게임폐인’이랑 다른 코너 하나랑 검증을 받아보고 확실히 정리하자고.
결과적으로 ‘게임폐인’ 반응이 더 좋았던 모양이다.
이용진: 암요! 일단 캐릭터가 뚜렷하니까. 진짜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던 게 그 때 극장의 연령층이 굉장히 높았는데도 반응이 좋았다. 이게 게임을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연기가 웃기지 않나.
“개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림도 중요하다” 아이디어도 좋지만 이 코너가 정말 절묘하다고 느낀 게, 보통 코너에는 남을 받쳐주는 역할과 빵 터뜨리는 역할로 나눠져 있는데 ‘게임폐인’은 각자가 웃길 수 있는 타이밍이 확실히 확보돼있다.
양세형: 원래는 내가 니주(남의 개그를 받쳐주는 역할)였다.
박규선: 그런데 형이 첫 녹화 들어가자마자 마음을 바꾸더니 캐릭터를 살렸다. “자리주삼”은 아이디어 회의 때 짠 거였지만 웃음소리는 없었거든. 근데 막 자리에 앉자마자 정신병자처럼 아항, 아항 웃는 거다.
이용진: 세형이 혼자서 키보드 치는 것도 분량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옛날에는 3~40초 정도였는데 지금은 1분 30초나 된다.
양세형: 도저히 니주를 못 깔겠더라고. 하하. 사실 어떻게 보면 내 입장에서 니주를 까는 게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데 하나도 안 나쁜 게, 일단 앞에서 내가 웃길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성적이 좋으니까 우리 팀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세 명 중에 한 명만 웃겨도 그 주는 상위권 보장이 될 만큼 강한 코너지 않나.
박규선: 처음 4주 동안 난 개그가 없고 멍청하고 주눅 든 연기만 있었다. 안 그래도 뒤에 나오면 앞 사람보다 더 웃겨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는데, 용진이 형 캐릭터는 첫 주부터 빵 터지니까 내가 그만큼 못해준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현장 반응도 내가 나오면 사그라들었고. 2주째에는 그냥 용진이 형이 뒤에 등장하는 게 낫겠다고 얘기를 했는데, 세형이 형은 무조건 내가 뒤에 가야 된다고 했다.
순서를 그대로 유지하자고 고집했던 이유는 뭔가.
양세형: 개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규선이가 못 생겼다는 게 아니라, 덩치로 봐도 양세형-이용진-박규선이 딱딱 맞고 캐릭터로 봐도 귀여운 거 나온 다음에 센 캐릭터 나오는 게 맞다. 내가 그림에 대한 결벽증이 약간 있다.
박규선: 그냥 못 생겼다고 해.
양세형: 철저하게 규선이를 믿었다. 이렇게 하면 얘가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아이디어를 짜겠구나.
박규선: 왜 같이 안 짜주고!
양세형: 규선이는 내일까지 뭘 해오라고 하면 밤을 새서라도 해 올 사람이다. 내가 규선이보다 형일 수밖에 없는 게, 그런 걸 다 계산해서 머리를 굴린 거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쉬고 있는데도 계속 전화 와서 “형 이거 어때? 저거 어때?” 물어보면서 계속 만들었다.
이용진: 결국 베개를 들고 나오니까 터졌다. 그 때 느꼈다. 아, 규선이는 오타쿠로 가야겠구나.
그래서 닉네임도 중간에 요정에서 ‘찐찌버거’로 바꿨나.
이용진: 맞다. 그렇게 바뀐 이후에는 직업을 하나씩 줬다.
박규선: 한 번은 커피를 마시고 나왔는데 초등학생 여섯 명이 세형이 형 말투로 “혹시… 찐찌버거님?”이라고 물어봤다. 내가 웃으면서 “어 맞아” 그랬더니 “‘아 뭐야, 멀쩡하잖아…”라면서 엄청 실망하더라.
양세형: 그럴 땐 팬서비스 해줘야 돼.
“용진이는 설계사, 난 사장, 규선이는 인부” 평소에 캐릭터 수집은 어떻게 하나.
박규선: 자랑은 아닌데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메모해놓고, 나중에 한 번 더 봤을 때도 재밌으면 안 지우고 그 때만 재밌었던 거면 지우고. 인터넷에 ‘웃긴 분장’, ‘웃긴 사람’을 검색하면 전 세계 웃긴 사진이 다 나온다.
분장을 먼저 결정하고 캐릭터를 만드는 건가?
박규선: 직업을 먼저 정한다. 예를 들어 “오빠 저 약사에요”라고 소개했는데 알고 봤더니 약장사, 이런 식으로. 약장사 캐릭터가 확정되면 그 다음에 어떤 분장이 웃길까 찾아본다.
얘기를 해보니 각자의 역할이 뚜렷한 것 같다. 박규선은 성실하게 아이디어를 짜는 작가, 양세형은 그걸 바탕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프로듀서에 가깝고 이용진은 아이디어를 무대 위에서 잘 살리는 타입이다.
이용진: 규선이가 빌딩을 짓는 스타일이라면 세형이 같은 경우는 누구한테 빌딩을 열심히 짓도록 조련을 잘한다. 난 빌딩 지으라고 하면 다음날 그냥 아무거나 세워놓고 ‘어이구 빌딩 지었습니다’하고 막 우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합이 잘 맞는다.
박규선: 뭐야, 결론은 내가 다 하는 거잖아. (웃음)
양세형: 용진이는 디자이너, 설계사고 난 사장, 그리고 규선이는 노가다.
이용진: 인부, 인부.
박규선: 또 이용당한 거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데 어떻게 계속 코너를 같이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이용진: 이렇게 얘기할 때는 진심이 없으니까. 다 장난이다.
양세형: 술 먹을 때는 진심이 나온다.
이용진: 그것도 세형이나 내가 진지한 얘기를 하면 그게 통하는데, 어느 날 규선이가 술을 먹고 진지한 얘기를 하면 그 때는 ‘아 그랬구나’ 하고 받아들이는데 다음날 되면 싹 잊어버린다. 하하.
박규선: 둘은 아마 40년 뒤에도 같이 개그를 할 텐데, 난 이게 마지막일 것 같다. 진짜 안 맞아.
이용진: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잘 맞는다는 뜻이다.
결국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얘긴데.
이용진: ‘옹달샘’ 형들은 누가 ‘나 이거 할래’ 라고 얘기하면 그게 아무리 별로라고 생각해도 그걸 믿어준다. 동민이 형한테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없는데 그걸 그냥 하라고 해?”라고 물어봤더니 “그거 못하게 하면 우리가 왜 개그를 같이 하냐? 그게 팀워크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는 처음에 그런 게 부족했다.
박규선: ‘옹달샘’ 형들은 칠판에 1부터 20까지 숫자를 적어놓고 대사, 연기, 호흡, 톤이 하나도 안 틀릴 때마다 숫자에 동그라미를 친다. 그렇게 20번까지 동그라미를 다 치면 연습이 끝나는데, 만약에 15번째에 누가 틀리면 1번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렇게 수년을 맞춰 온 사람들의 팀워크는 절대 무시 못 하는 거다. ‘옹달샘’ 형들뿐만 아니라 ‘졸탄’ 팀의 재형이 형한테도 많이 배웠다. 형은 남을 비하하는 개그를 절대 안 한다.
이용진: 철학이 있는 개그맨은 처음 봤다.
“인기가 한 순간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라이또’ 팀도 이것만큼은 하지 말자고 합의된 게 있나.
이용진: 절대 남들이 했던 그림 하지 말자. 비슷한 것도 하지 말자. 지난주와 완전히 다르게 만들자. 이게 우리 자존심이다.
‘라이또’ 도장을 쾅 찍는 셈이다.
양세형: 근데 또 개그에는 특허라는 게 없다. 가수들 노래처럼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코너가 끝나면 끝이다.
이용진: 기발한 거 만들어놔도 다 돌려쓰더라. 난 남이 했던 거 쓰면 자존심 상하던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박규선: 만약에 유행어 저작권이 있었으면 옛날에 ‘됐거든’으로 저작권료 엄청 많이 받았을 텐데.
그러고 보면 세 사람 모두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히트 코너도 몇 개씩 탄생시켰다.
이용진: 그래서 다들 인기가 한 순간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양세형: 하나의 무기를 다 써서 망가지면 버려야 되는데, 우리는 그 타이밍을 안다. 물론 총알이 있어야 전쟁터에 나가겠지만 일단 무기는 많다. 총알만 만들면 된다.
박규선은 다행히도 성공적으로 방송 복귀를 한 뒤에 군대에 가게 됐다.
박규선: 만약 이번 시즌에 잘 못했으면 ‘쟤는 안 웃기다’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입대하는 건데, 이제 한 방을 보여줬으니까 좋다. 올해 말이나 내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예정인데, 마음이 무겁진 않다.
일종의 자신감이 생긴 건가?
박규선: 예전엔 뭘 해도 안 웃긴 것 같고 뭘 해도 똑같은 것 같았다. SBS ‘1학년 3반’에서 했던 캐릭터가 너무 세서 그 이후에 ‘비트보이즈’를 하던 ‘신인의 한계’를 하던 사람들은 다 ‘1학년 3반’으로 기억했다.
이용진: 지금은 ‘1학년 3반’ 얘기 안 나오잖아. 그럼 극복한 거야.
하지만 ‘찐찌버거’도 ‘1학년 3반’의 규선이만큼이나 강한 캐릭터인데, 이것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또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나.
박규선: 절대로 없다. 다음…
양세형: 이건 내가 얘기할게. 네가 말하면 웃길 것 같아. 규선이는 자기 자신에게 지는 걸 못 참는 성격이기 때문에 분명히 더 센 걸 만들 거다. 용진이는 아예 그런 것에 구애를 받지 않는 스타일이고.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역할을 잘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누구 한 명이 바뀌어도 힘들었을 거다.
박규선: ‘게임폐인’이라는 틀 안에서는 우리 셋이 최고의 조합이다.
이용진: 사실 캐릭터가 서로 바뀌어도 웃기지 않겠나. 규선이가 내 캐릭터를 하고, 내가 규선이 캐릭터를 한다든지.
말 나온 김에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한 번?
이용진: 마지막에 한 번 할까? 내가 진짜 얼굴 말도 안 되게 해가지고.
양세형: 크크, 재밌겠다.
이용진: 내가 막 특수 분장해서 얼굴에 살 붙이고.
박규선: (예삐공주 목소리로) 오빠아, 안뇽하세요오- 저 ‘찐찌공주’에요. 하하하.
글, 인터뷰. 이가온 thirteen@
인터뷰. 윤희성 nin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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