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장은 괴물이다. 검사는 뱀파이어다. OCN의 두 자체 제작 드라마 (이하 < TEN >)과 의 주인공 여지훈(주상욱) 팀장과 민태연(연정훈) 검사는 상징적으로 혹은 실제로 일종의 몬스터다. 그리고 이것은 괴물 잡는 괴물이라는 여지훈의 별명대로, 괴물 같은 마음과 두뇌를 지닌 범죄자들이 매주 연쇄 살인과 유괴 등을 일으키는 세계에서 히어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경찰에, 검찰에 속한 동시에 속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여지훈은 일종의 독립적 조직인 TEN을 이끌며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 민태연은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숨긴 채 사이코메트리로 사건의 범인을 찾는다. 과거 MBC 이나 영화 처럼 우직한 경찰 조직이, 영화 처럼 눈치 보지 않는 정의로운 검사들이 그래도 정의를 실현할 거라는 믿음 바깥에서 이 작품들은 시작된다.
의 시대에 수사물이 사는 법 앞서 언급한 등은 사실 경찰과 검찰의 역할을 생각할 때 당연히 요청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건, 국민의 안전, 그리고 사법적 정의를 지키는 것이고, 그 기능이 온전히 작동한다면 그들은 그 자체로 영웅이다. 문제는 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시대다. 물론 비리 경찰 문제를 비롯해 검경 내부의 문제가 불거진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근까진 그것이 몇몇 나쁜 경찰 나쁜 검사의 일탈이라 여겨졌지, 조직 전체의 문제라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MBC < PD 수첩 > ‘검사와 스폰서’ 편이 터졌고, 현직 검사장에게 1억 원을 보냈다는 이국철 SLS 회장의 사건이 이어졌으며 뇌물로 벤츠를 받은 검사가 징계를 받았다. 더 나쁜 건 보복 수사의 혐의가 짙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사다. 금품수수가 개인의 윤리 문제라면, 보복 수사는 사법권이 원칙과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경찰청장이 희망버스에 대해 강력 대응을 선언하고, 한겨울에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것은 조직의 최소 원칙마저 정치 논리 앞에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이 안에서 검경이 국민의 안전과 정의를 지킬 수 있으리라 믿긴 어렵다. 이 시대는 과 가 아닌 의 시대다. 검찰과 경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억울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사형시켜도 상관없는 부조리의 시대.
영화 에서 볼 수 있듯, 공권력 안의 정의가 무너졌을 때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영웅 서사는 공권력 바깥에서 등장한 자경단 히어로의 이야기다. 하여 정의로운 공권력에 대한 픽션은 의 문제 설정을, 그리고 의 해답을 상상적으로나마 극복해야 한다. < TEN >, , 그리고 지난달 개봉했던 영화 은 수사물과 자경단 히어로물로 정반합을 이루며 새롭게 공권력 서사를 만들어내려 한다. < TEN >과 이 경찰 조직인 동시에 독립적인 팀을 타이틀로 사용했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 때 광역수사대 에이스였고 현재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인 여지훈이 독립적 팀을 이끌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추리물로서의 흥미진진함과는 별개로 경찰에 대한 믿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축한다. 경찰 대부분은 별로일지 모른다. 하지만 TEN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내사과가 맡았던 형사 살인 사건에 대해 상급자가 “TEN, 너희가 맡아”라 말하는 순간은 내사과도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TEN이라면 뭔가 해줄 수 있을 거라는 TV 바깥의 희망을 대변한다. 역시 파면 팔수록 비리가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경찰 조직 안에서 우직한 형사와 프로파일러가 자기들만의 특별수사본부를 만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다. 정의로운 경찰 개인이 조직을 깨끗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내부와 싸우고 싸워 경찰의 이상을 실현하는 건 가능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발명품들을 보고 있다
는 아예 초월적 존재인 뱀파이어를 끌어들여 노골적으로 히어로물과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한다. 사실 민태연은 뱀파이어 검사보다는 그냥 정의로운 뱀파이어에 가깝다. 마음만 먹으면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범인을 찾을 수 있고 심판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종종 검사로서 동료들과 벌이는 수사 자체는 긴장감 없이 맥 빠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래서 이야기가 별로라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검사여야 하느냐다. 그냥 히어로가 아닌 사법 히어로여야 하는 건 결국 상상적 영웅 서사를 빌려 정의로운 공권력에 대한 판타지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다.
이것은 현실의 공권력에 지친 시청자들을 안심시키려는 다독거림일까, 공권력에 대한 믿음을 은연중에 강요하려는 새롭고도 세련된 선동일까. 알 수 없지만 이야기라는 것이 TV와 스크린 안에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영화와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빤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야기란 동시대를 반영하는 거울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이야기 안에서 산다. 내부 모순 없이 잘 짜인 이야기 안에서만 사람들은 세상을 불안한 미지의 영역이 아닌 해석 가능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권선징악의 우화 없이 윤리적 요청이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다시 말해 어떤 이야기들은 현실의 무언가를 견뎌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명되어야 한다. 지금 < TEN >을 비롯한 일련의 수사물들을,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해당 장르 작품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의 시대에 수사물이 사는 법 앞서 언급한 등은 사실 경찰과 검찰의 역할을 생각할 때 당연히 요청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건, 국민의 안전, 그리고 사법적 정의를 지키는 것이고, 그 기능이 온전히 작동한다면 그들은 그 자체로 영웅이다. 문제는 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시대다. 물론 비리 경찰 문제를 비롯해 검경 내부의 문제가 불거진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근까진 그것이 몇몇 나쁜 경찰 나쁜 검사의 일탈이라 여겨졌지, 조직 전체의 문제라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MBC < PD 수첩 > ‘검사와 스폰서’ 편이 터졌고, 현직 검사장에게 1억 원을 보냈다는 이국철 SLS 회장의 사건이 이어졌으며 뇌물로 벤츠를 받은 검사가 징계를 받았다. 더 나쁜 건 보복 수사의 혐의가 짙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사다. 금품수수가 개인의 윤리 문제라면, 보복 수사는 사법권이 원칙과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더라도 국민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경찰청장이 희망버스에 대해 강력 대응을 선언하고, 한겨울에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것은 조직의 최소 원칙마저 정치 논리 앞에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이 안에서 검경이 국민의 안전과 정의를 지킬 수 있으리라 믿긴 어렵다. 이 시대는 과 가 아닌 의 시대다. 검찰과 경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억울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사형시켜도 상관없는 부조리의 시대.
영화 에서 볼 수 있듯, 공권력 안의 정의가 무너졌을 때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영웅 서사는 공권력 바깥에서 등장한 자경단 히어로의 이야기다. 하여 정의로운 공권력에 대한 픽션은 의 문제 설정을, 그리고 의 해답을 상상적으로나마 극복해야 한다. < TEN >, , 그리고 지난달 개봉했던 영화 은 수사물과 자경단 히어로물로 정반합을 이루며 새롭게 공권력 서사를 만들어내려 한다. < TEN >과 이 경찰 조직인 동시에 독립적인 팀을 타이틀로 사용했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 때 광역수사대 에이스였고 현재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인 여지훈이 독립적 팀을 이끌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추리물로서의 흥미진진함과는 별개로 경찰에 대한 믿음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축한다. 경찰 대부분은 별로일지 모른다. 하지만 TEN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내사과가 맡았던 형사 살인 사건에 대해 상급자가 “TEN, 너희가 맡아”라 말하는 순간은 내사과도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TEN이라면 뭔가 해줄 수 있을 거라는 TV 바깥의 희망을 대변한다. 역시 파면 팔수록 비리가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경찰 조직 안에서 우직한 형사와 프로파일러가 자기들만의 특별수사본부를 만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다. 정의로운 경찰 개인이 조직을 깨끗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내부와 싸우고 싸워 경찰의 이상을 실현하는 건 가능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발명품들을 보고 있다
는 아예 초월적 존재인 뱀파이어를 끌어들여 노골적으로 히어로물과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한다. 사실 민태연은 뱀파이어 검사보다는 그냥 정의로운 뱀파이어에 가깝다. 마음만 먹으면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범인을 찾을 수 있고 심판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종종 검사로서 동료들과 벌이는 수사 자체는 긴장감 없이 맥 빠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래서 이야기가 별로라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검사여야 하느냐다. 그냥 히어로가 아닌 사법 히어로여야 하는 건 결국 상상적 영웅 서사를 빌려 정의로운 공권력에 대한 판타지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다.
이것은 현실의 공권력에 지친 시청자들을 안심시키려는 다독거림일까, 공권력에 대한 믿음을 은연중에 강요하려는 새롭고도 세련된 선동일까. 알 수 없지만 이야기라는 것이 TV와 스크린 안에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영화와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빤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야기란 동시대를 반영하는 거울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이야기 안에서 산다. 내부 모순 없이 잘 짜인 이야기 안에서만 사람들은 세상을 불안한 미지의 영역이 아닌 해석 가능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권선징악의 우화 없이 윤리적 요청이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다시 말해 어떤 이야기들은 현실의 무언가를 견뎌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명되어야 한다. 지금 < TEN >을 비롯한 일련의 수사물들을,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해당 장르 작품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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