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에서는 성우 손정아가 연기하는 주인공 류시우(일본명 료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극장에서는 오직 일본 성우가 연기하는 오리지널 버전만을 개봉했으며, 더빙 버전은 22일 디지털 케이블 VOD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해외 애니메이션이 보통은 더빙과 자막 두 개 버전으로 개봉한다는 것, 그리고 TV 시리즈가 국내에서 이미 더빙 버전으로 방송됐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더 이상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조금씩 국내 성우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가시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외화 더빙에서 내레이션까지 좁아지고 있는 성우들의 영역
그 많던 성우들은 어디 갔을까
그 많던 성우들은 어디 갔을까
배한성 하면 맥가이버가 떠오르는 것처럼, 목소리 연기를 하는 성우들에게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업은 더빙, 특히 외화 시리즈 더빙이다. 하지만 의 배한성과 의 이규화, 서혜정처럼 원래의 ‘미드’ 배우보다 성우의 목소리가 더 먼저 각인되는 경우는 이제 흔치 않다. 인터넷의 발달과 자막의 공유로 많은 ‘미드’ 팬들은 배우의 목소리와 자막에 더 익숙해졌으며, 실제로 공중파를 제외한 케이블과 위성 플랫폼에서는 자막을 이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애니메이션 역시 강수진이 이누야샤를 연기한 같은 몇몇 경우가 아니면 자막 버전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내레이션 분야도 마찬가지다. MBC 시리즈는 배우 안성기, 김남길, 현빈에 이어 송중기가 더빙을 맡았고, 이들의 내레이션 참여는 출연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된다. 지난 해 tvN 의 성우 서혜정이 주목을 받은 이후, 올해 SBS 의 성우 김세원 정도가 활약한 것을 제외하면 성우들의 내레이션 참여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성우들의 새로운 영역 찾기
그 많던 성우들은 어디 갔을까
그 많던 성우들은 어디 갔을까
지난 10일 열린 < In Dreams 그대 귓가에 달콤한 사탕발림 >(이하 )과 내년 2월 열릴 (이하< STSV >)가 흥미로운 건 그 때문이다. 는 팬들의 라디오 극본을 공모한 후 조규준, 전승화, 방우호, 류승곤, 김두희가 직접 연기하는 모습을 공개하고 그들의 화보집을 발매했다. < STSV >는 홍범기, 박성태, 최승훈, 이호산, 신용우, 장민혁, 박영재, 정재헌 등이 출연해 성우의 캐릭터를 살린 미니드라마나 낭독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두 이벤트는 모두 팬들의 기획에서 시작해 성우의 스타성이 유의미한 수요로 이어져 주목받고 있다. ‘정모’와 ‘팬미팅’을 통해 알게 된 인맥 만으로 성우 캐스팅을 마쳤고, 홍보도 블로그와 트위터로 이어진 게 전부다. 하지만 에는 130여 명의 팬들이 모였고, < STSV >의 경우 300여 개의 객석이 매진됐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방송 환경 안에서 성우의 역할이 확대되고, 대중적 인기가 올라가는 선순환 구조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한 축이 무너졌을 때 이러한 이벤트는 수익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부족하나마 성우의 스타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그리고 애니메이션 팬들이 스타 성우 더빙을 요청하는 단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처럼 변화된 현실에서 성우들은 새로운 영역을 찾아가고 있다. 성우들의 팬들이 그 힘을 더하고 나선 상황에서, 이들이 만들어낼 또 다른 목소리가 궁금해진다.

사진제공. 인 드림즈, STSV

글. 강성희 인턴기자 s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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