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하 )은 카고시마의 초등학생 코이치(마에다 코키)가 어느 날, 반 친구로부터 ‘고속 열차가 반대편에서 서로 달려오다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작되는 모험담이다. 할머니 댁에 엄마(오오츠카 네네)와 함께 이사 온 코이치는 멀리 후쿠오카에 떨어져 사는 아빠(오다기리 죠)와 동생 류노스케(마에다 오시로)와 함께 살고 싶고, 이를 위해 엄청나게 도발적이고 위험한 소원을 준비한다. 지난 2004년 도시 한 구석에서 엄마에게 버려진 채 자라는 아이들을 그린 영화 에서 아이들의 무표정하고 텅 빈 얼굴을 통해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졌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가 이번에는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건강한 활기가 생생하게 전해지는 영화를 통해 일상의 경이로움, 그 자체가 기적임을 이야기한다. 전작들과 달리 밝고 따뜻한, 그래서 조금 낯설기도 한 을 보면서 고레에다 감독이 변한 게 아닐까 두렵기도 했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여전히 서늘한 문장 속에 따뜻한 온기를 담아 이야기하는 이였다. 어떤 질문에도 쉬이 대답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며 답을 찾아 전달하고자 했던, 담담하고 묵직한 고레에다 감독의 목소리를 여기에 전한다.은 올해 6월에 일본에서 개봉한 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났다. 일본 관객들의 반응과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의외로 어느 나라에 가도 그다지 위화감이 없는 영화인 것 같다. 일본 관객들이 웃었던 부분에서 한국 관객들도 웃더라. 어디에 가도 거의 비슷한 반응이기 때문에, 영화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구나 싶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 어린애였다” 어떤 장면에서 웃던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이들을 재워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사기 당하기 쉽다”고 말한 장면이나 류노스케가 아버지한테 “양육 수당 절반 줘”라고 말하는 장면 같이 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낼 때 웃더라.
아이들이 여정 중 여러 선의와 만난다. 그것들이 모인 것이 바로 영화가 말하는 ‘기적’이 아닌가 싶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인간의 선의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 느껴졌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강한 긍정이 느껴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럴지도. 사실 처음엔 아이들이 악의와 만나는 것도 생각했다. 왜 그만두었냐면, 주인공 소년인 형 코이치가 품고 있는 감정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상당한 악의였기 때문이다. 가족이 다시 함께 살면 좋겠다는 바람보다 화산이 폭발해서 전부 없어져 버리면 좋겠다는 쪽이 강했으니까. 그런데 여정을 통해 코이치 스스로 그것이 악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자신이 품고 있는 이 욕망이 얼마나 사람들을 상처 입힐지 깨닫게 되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노부부를 비롯해 많은 우연들이 겹쳐지는 조건을 만들었다. 그저 소원을 외치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도 결국 외치지 않는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
영화 속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나 어른들의 걱정 혹은 불안과는 별개로 그들은 스스로 자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기적’이구나 싶기도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스스로의 힘으로 자란다고 믿고 있다. 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매일 깨달아가고 있다. 물론 나의 성격이나 존재가 아이한테 영향을 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를 갖기 전에는 부정적으로도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상관없이 하나의 생명으로 강렬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이란 대단하구나, 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아이였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꽤 어린이답지 않은 아이였다. 어른스러웠다고 할까, 귀엽지 않은 아이였다. (웃음) 기적을 믿지 않는 아이였다.
어른이 된 뒤, 그런 아이였던 자신이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좀 더 어린애다운, 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웃음) 천진난만하게 어리광도 부릴 수 있는 아이가 부럽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환경이라기보다 아무래도 성격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꼭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뛴다. 그게 처음엔 의아했는데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아이들은 “와아아~” 하면서 한 명이 뛰기 시작하면 따라 뛰거나, 참 많이 뛰었던 것 같다. 결국 뛰지 않게 되면서 어른이 되었구나 싶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일단 뛴다. (웃음) 아이들이란, 그냥 뛴다고 생각했다. 영화적인 장치로서가 아니라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달리는 장면에 쿠루리의 음악이 잘 어울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처음 음악에 쿠루리를 떠올린 것도 아이들이 뛰는 장면을 그릴 때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차를 쫓아 달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촬영하면서, 모험을 하는 이 아이들의 등을 밀어주는 것 같은 음악을 넣고 싶었다. ‘록이 좋겠다, 아, 쿠루리로 할까!’ 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각자가 소망하는 꿈, 일어났으면 하는 기적을 말하는데 이것이 만들어진 대사가 아니라 진짜 그 아이들의 속마음 같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다. 아이들의 꿈을 그대로 이야기한 부분도 있다. 후쿠오카에서 류노스케와 친구들이 칸나의 집 2층에 모여 소망을 서로 이야기하는 장면을 찍을 때, 사전에 한 명씩 불러서 지금부터 이런 장면을 찍을 건데 “넌 뭘 바라니?” 라고 물었다. 영화에서처럼 “‘여유 교육’이 다시 시작되면 좋겠다”라든지 “숙제가 없어지면 좋겠다”, “가면 라이더가 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정말로 그 아이들이 갖고 있는 소망이었기 때문에 “그럼, 그걸 그대로 이야기 해 줘”라고 부탁해서 그 장면을 촬영했다. 찍으면서 아이들끼리 서로 물어보게 했고, 내가 아이들한테 귓속말로 “뭔가 또 없는지 물어 봐”라고 하면서 서로가 파고들어서 대답을 끌어내는 작업을 했다. 보통 영화처럼 대사를 전달해서 이야기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안을 파서 거기서 나오는 감정이나 말을 하도록 찍은 장면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이야기하는 건 일종의 책임” 주인공 형제를 연기한 마에다 형제는 일본의 유명한 만담형제다. 오디션 당시에도 “서있는 모습조차 다른 아이들과 다른 존재감”을 느낄 정도로 첫인상이 강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들의 에너지가 좋은 의미로 적당한 수준에서 눌린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디렉팅 때문이라기보다 아이들의 앙상블로 이뤄진 것이다. 오디션을 할 때 마에다 형제를 선택한 뒤, 그들과 어떤 아이들이 함께 하면 좋을까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꽤 오랜 공을 들였다. 마에다 형제의 템포나 대사의 리듬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만의 말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찾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꽤 강한 아이들을 만났고, 그래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함께 작업할 때는 예상치 못했던 일도 일어날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예상외의 일도 있고, 영화를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변해가는 부분도 있었다. 그 변해가는 모습,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아, 이 아이가 연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구나’ 라든지 ‘이 아이와 저 아이는 점점 사이가 좋아지지만, 저 아이와 이 아이는 좀처럼 친해지지 않는구나’ 같은 것도 보이고.
영화에서 종종 ‘지켜본다, 응시한다’는 느낌을 주는 순간들이 있다. 형제가 키를 재는 장면 같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삶이 있고 어쩌면 우리는 그걸 잘 지켜봐주기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 장면이 확실히 그렇지만 영화 전체를 통해서도 가지고 있던 자세다. 이번 영화도 야마자키 유타카 촬영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그도 나처럼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던 사람이다. 다큐멘터리의 눈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지켜보는 눈’이다. 대상을 어디서 바라볼 것인가 에서부터 카메라 앵글을 정한다. 보통 극영화에서는 무엇을 그려서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찍거나 하기 때문에 한계를 정해두지 않지만, 야마자키 씨와 함께 작업할 때는 극영화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카메라 포지션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던 것이 영화 작업을 할 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점이 가장 크다. 툇마루에 서 있는 형제를 바라볼 때의 카메라는 ‘역시 여기네, 결코 저쪽은 아니네’ 라는 점을 그와 공유하고 있었다. 영화를 찍을 때는 항상 관객을 의식해서 ‘보여준다’는 것과 대상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 둘 다 들어가 있지만, 나는 바라보는 쪽의 시선이 강한 촬영감독이 좋다.
에도 에서처럼 한자 ‘望’을 쓰는 ‘노조미’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색깔도 방향성도 다른 영화인데, 같은 이름이 나온 것을 보고 당신에게 ‘희망’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 그렇네.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강한 느낌의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름은 단순한 게 좋다고 생각해서 전에 썼던 이름을 다시 쓴다거나 한다. (웃음) 물론 에서 배두나가 연기한 인형의 이름이 노조미였던 것은 의미가 있다. 그녀가 안고 있는 공허함이나 텅 비어있는 느낌이 보통은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그 영화에서는 타자와 관계를 맺는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생명이 갖고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을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이름으로써 ‘희망’이라는 의미의 노조미를 붙였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렇고 당신의 영화에는 늘 죽음이 존재한다. 데뷔작 부터 는 물론 도 그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음… 죽음, 그 자체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과 그들의 남겨진 가능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남겨진 사람들이 그 후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에 대한 생각은 20대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그런데, 최근에는 아무래도 인생을 50년이나 살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죽은 사람을 생각하거나 누군가를 잃은 후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죽은 이에 대한, 아무 것도 표현할 수 없게 된 이들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의 책임이라고도 생각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로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이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하긴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 여행 가방 속 여동생이나 의 배낭 속 개처럼 일상 속에 죽음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낯설면서도 자연스러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처음 를 만들고, 유럽 사람들에게 소개되었 때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서양에서는 생이 끝나고 나서 죽음이 시작된다. 즉 생과 사가 대립하는 개념이지만 당신의 영화에서는 죽음이 삶의 일부로서 그려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굉장히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건 분명 내가 독특한 것이 아니라 동양적인 사고관이다. 동양에서는 생과 사가 분명히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생은 사의 일부이고, 사는 생의 일부라는 입장을 무의식적으로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일본인이고 아시아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서양처럼 이분법의 세계관을 가진 나라에 영화를 보여주면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도 영화를 갖고 해외에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깨닫게 된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나와 개인의 나는 나눠지지 않는다” 은 새로 개통된 큐슈 신칸센 고속열차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영화의 무대가 당신이 주로 그린 도쿄가 아닌 카코시마와 후쿠오카인데, 이 점도 영화의 색깔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태어나서 자란 곳이 도쿄이기 때문에 도쿄가 아닌 곳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아무래도 여행자의 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주인공 소년이 오사카에서 이사를 왔다는 설정을 두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찍는 쪽이 좀 더 자신을 갖고 찍을 수 있기 때문에. 큐슈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의 시선으로 그 마을을 찍는 것은 좀 더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부분들도 있다. 코이치의 화산재에 대한 태도라든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다. 그런 위화감은 내가 이십 몇 년 전, 대학생 때 처음으로 카고시마에 갔을 때 놀랐던 그 느낌이다. ‘어째서, 이렇게 화산 가까이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게다가 재가 날리고 있는데 어째서 모두들 평범하게 살고 있는 거지?’라고 하는 감정을 코이치에게 전부 겹쳐두었다. 영화에 나오는 가루칸 떡 같은 경우도 그 때 처음 맛보고 ‘뭐야, 이 아무 맛도 안 나는 과자는?’이라고 생각했다.
2년 전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상영되었을 때, 자신의 영화가 해외 팬들을 지지를 받는 것을 느낄 때면 “도쿄가 아닌 다른 세상의 사람들도 모두 고독하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신에게 도쿄는 어떤 의미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려운 질문이네. (웃음) 음… 지역공동체가 무너진 것이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쿄에도 많은 마을, 지역이 있으니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을 예로 들면 지연이라고 하는 사람들 간의 연결 고리가 굉장히 희박해졌다. 에서도 그려졌지만 가족들도 각자 떨어져 살고 있고. 지역이라는 수평의 연결이 없을 뿐 아니라 핵가족이다보니 윗세대와 수직적으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결국 모두가 단체로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래서 편리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 “한 명의 어른으로서 ‘무조건 이루어지길 바라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무책임’이라는 표현이 좀 강할 지도 모르지만, 살면서 뭔가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슈퍼맨이나 히어로가 나타나서 해결해주는 것이 이야기로서는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까 좀 싫다. 아이들이 보는 것을 만들 때 그런 식의 작업은 하고 싶지 않다. 이번 영화에서도 ‘가족이 예전처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라거나 ‘죽었던 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풍요롭고, 인생은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나와 한 개인의 나는 그다지 나눠지지 않는다.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느끼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기본으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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