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획>, 지하철은 사람을 싣고
, 지하철은 사람을 싣고" /> KBS1 수 밤 11시 40분
지하철은 노동자의 공간이다. 출퇴근 길,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몸이 반으로 접힌 채 옆 사람의 땀 냄새, 향수 냄새에 인상 한 번 찌푸려 보지 않은 서민은 없다. 그래서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쉬지 않고 달려 온 서울 지하철 2호선을 이야기한 어제의 이 ‘우리 이웃들의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다. 여기에 더해 은 강남도 강북도 가는 2호선을 통해 ‘서울’의 지친 얼굴을 담아냈다. 만화가 최호철이 쓱싹 쓱싹 스케치로 담아낸 봉천동 달동네의 얼굴과 전 국회의원 심상정이 스물세 살 ‘여공’으로 첫 발을 딛었던 기억을 담담히 떠올린 구로공단의 얼굴과 강남토박이 소설가 노희준이 “강 건너편 높은 빌딩이 있던 강북”에 대한, 지금은 역전된 동경을 고백한 잠원의 얼굴. 그리고 젊디젊은 청춘이 열사라는 이름으로 쓰러져 간 신촌의 얼굴까지.

러시아워에는 3,4천명이 함께 몸을 싣는 지하철 2호선. 사람으로 치면 심장을 닮은 이 둥근 지하철은 30년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가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먹고 점점 거대해지는 동안 이를 토해 낸 이들의 몸은 반대로 점점 쪼그라드는 것을 묵묵히 목격했다.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시티로 이름을 바꾸고, 동대문운동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배나무 밭이 있던 청담동이 욕망의 전시장이 되고, 홍대 앞 클럽들이 하나 둘 문을 닫는 그 모든 풍경을 말이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를 담은 어제의 방송에,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회고하는 것만으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하는 아쉬움을 느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목소리로라도 자꾸 되새겨 기억하고, 삽입된 밴드 아침의 노래 가사처럼 ‘내가 여기 있었던 사실’을 서로 증명해주는 게 필요하다. 불법 개조한 버스로 꼼수를 부리는 재벌 총수가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흔들리는 2호선에 몸을 싣고 마찬가지로 출렁이는 한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서울과 이 나라를 지탱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걸 자꾸만 잊어가는 시절이니 말이다.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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