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네티즌들은 서울 마포구 국회의원 강용석을 ‘멘탈 甲’이라 말한다. 그는 아나운서 성희롱으로 집단모욕죄를 적용받아 의원직 박탈의 위기에 처했지만, 지난 주말 KBS 를 보며 웃고 있었다. 블로그에는 “시간도 많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방식을 잡아내는 것을 보니 작가와 개그맨들의 불꽃 튀는 창작성이 대단”하다며 출연진에 찬사를 보냈다. 에는 자신이 모욕죄로 고소한 개그맨 최효종이 출연한다. 그는 자신의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위해 국회의원을 풍자한 최효종을 같은 혐의로 고소했다.
강용석 사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끌어들인 제 3자의 얼굴을 보며 낄낄거린다. 연예인이 강용석 의원처럼 행동했다면 그는 프로그램을 하차하고, CF가 끊기고, 사생활이 파헤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법안을 처리하고,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신력만 있다면, 그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세상의 비판이 아니라 의원직 상실이다. 대중은 강용석 의원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반대로 강용석 의원은 TV를 보다 “저 사람을 고소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 고소에 최효종은 지난 주 ‘애정남’ 코너에서 풍자 개그를 계속해도 되냐는 질문을 받았다. 국회의원이 고소하면, 개그맨은 생업에 대해 다시 설명해야 한다. 강용석 의원의 고소가 그저 헤프닝이 아닌 이유다.
강용석 의원의 고소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그를 그저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조롱하고 끝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의 인격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그의 지위고, 지위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다. 쓸데없이 ‘멘탈’만 좋은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는 사익을 위해 제 3자를 법정에 끌어들일 수 있다. 법을 정하는 사람이 사익을 위해 법을 이용해도 실질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다. 다음 총선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총선 직후였다면 강용석 의원은 4년 가까이 의정 활동을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국회 윤리위원회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이후 그의 의원직 제명을 부결시켰다. 국회의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면, 그는 공직자이면서도 사익을 위해 법을 이용하고, 개그맨을, 표현의 자유를 걸고 넘어질 수 있다. 진정으로, 여론은 선거 기간에만 신경쓰면 된다.
법이 그저 권력의지를 밀어붙이는 수단이 된 시대 권력을 가진 쪽에서 법을 이용해 목적을 관철시키는 것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뚜렷한 현상 중 하나다. SBS 같은 드라마에서 권력자가 법을 이용해 혐의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서만은 아니다. 종합편성채널 인가와 FTA 비준은 모두 날치기 통과됐다. 두 사안에 대한 의견은 각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날치기 통과는 국회에서 통과된 안건은 되돌릴 수 없다는 ‘법’을 이용한 폭력적인 의결 방식이다. 그럼에도 날치기 통과는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다. 국가 중대사에 날치기 통과를 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염치가 있는 사람들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자에게 법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니라 권력 의지를 밀어붙이는 수단이 된다. 통과만 시키면, 법에 의해 결정된 것은 어떤 여론으로도 되돌리기 어렵다. 여론수렴과 정치적 협의의 과정은 필요없다.
법을 내세우고, 염치는 거두고, 여론은 무시한다. 강용석 의원의 고소에 어떤 의의를 찾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사회가 움직이는 매커니즘을 모든 대중에게 공개했다는데 있다. 국회의원이 마음만 먹으면 모두의 코미디를 방해할 수 있다. 국회의원, 프로야구 구단주,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 대표 모두 법이 설정한 자신의 권한을 내세워 국민의, 또는 소비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다. 반면 대중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FTA 비준하의 나라에서 살아야하고, 종합편성채널을 봐야하고, 8개밖에 없는 프로야구팀 중 하나를 좋아하며 산다. 강용석 의원이 최효종을 고소하면서, 이 시대를 움직인 매커니즘은 국민의 TV 앞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대중을 끌어내릴 권리는 없다 권력이 여론 대신 자신들이 만든 법조문만을 밀어붙일 때, 대중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 때 는 정치인에 대한 폭로를 바탕으로 권력과 법에 대항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을 보여줬다. 수많은 사람들의 여론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권력자들이 폭로를 통해 실질적인 타격이 가해지자 입장을 바꾼다. 그러나, 모든 대중이 의 방식으로 여론을 모을 수는 없다. 또한 는 정치인에 대한 공적인 폭로와 사적인 비난의 경계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주 는 누구나 기억해야할 기념비적인 의의를 갖는다. 강용석 의원은 “한 사람을 잡으려고 공영방송이 공기(公器)인 전파를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를 비난했다. 하지만 사회의 권력이 움직이는 방식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에 대해 당사자들이 직접적인 대응을 했다는 점에서 의 개그맨들은 반드시 풍자해야했던 일을 풍자했다. 그리고, 권력이 한 개그맨에게 주는 압박을 그들의 방식으로 이겨냈다.
개그맨 개인은 국회의원보다 힘이 약할 수 있다. 하지만 개그맨은 무대 위에서, 대중의 지지를 얻는 한 국회의원에게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은 아니다”라고 맞받아 칠 수 있고, “국민 여러분들이 저한테 시사 개그를 하지 말라고 하시면 절대 안하겠습니다. 하지만 특정인물 한 명이 하지 말라고 하면 저는 끝까지 시사개그를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다. 법과 권력 앞에서 여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권력자도, 법도 대중이 환호하는 무대 위의 개그맨을 끌어내릴 수는 없다. 개그맨의 과감한 풍자가 대중을 모았고, 대중이 그가 풍자할 권리를 지켜주고 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말하고, 사람을 모으고, 그들을 공감시키고, 그것에 대해 기록해야 한다. 법을 이용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 못했다면, 우리는 살기 위하여 더 열심히 살아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글. 강명석 기자 two@
강용석 사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끌어들인 제 3자의 얼굴을 보며 낄낄거린다. 연예인이 강용석 의원처럼 행동했다면 그는 프로그램을 하차하고, CF가 끊기고, 사생활이 파헤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법안을 처리하고,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신력만 있다면, 그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세상의 비판이 아니라 의원직 상실이다. 대중은 강용석 의원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반대로 강용석 의원은 TV를 보다 “저 사람을 고소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 고소에 최효종은 지난 주 ‘애정남’ 코너에서 풍자 개그를 계속해도 되냐는 질문을 받았다. 국회의원이 고소하면, 개그맨은 생업에 대해 다시 설명해야 한다. 강용석 의원의 고소가 그저 헤프닝이 아닌 이유다.
강용석 의원의 고소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그를 그저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조롱하고 끝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의 인격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그의 지위고, 지위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다. 쓸데없이 ‘멘탈’만 좋은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는 사익을 위해 제 3자를 법정에 끌어들일 수 있다. 법을 정하는 사람이 사익을 위해 법을 이용해도 실질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다. 다음 총선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총선 직후였다면 강용석 의원은 4년 가까이 의정 활동을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국회 윤리위원회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이후 그의 의원직 제명을 부결시켰다. 국회의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면, 그는 공직자이면서도 사익을 위해 법을 이용하고, 개그맨을, 표현의 자유를 걸고 넘어질 수 있다. 진정으로, 여론은 선거 기간에만 신경쓰면 된다.
법이 그저 권력의지를 밀어붙이는 수단이 된 시대 권력을 가진 쪽에서 법을 이용해 목적을 관철시키는 것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뚜렷한 현상 중 하나다. SBS 같은 드라마에서 권력자가 법을 이용해 혐의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서만은 아니다. 종합편성채널 인가와 FTA 비준은 모두 날치기 통과됐다. 두 사안에 대한 의견은 각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날치기 통과는 국회에서 통과된 안건은 되돌릴 수 없다는 ‘법’을 이용한 폭력적인 의결 방식이다. 그럼에도 날치기 통과는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다. 국가 중대사에 날치기 통과를 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낄 염치가 있는 사람들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자에게 법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니라 권력 의지를 밀어붙이는 수단이 된다. 통과만 시키면, 법에 의해 결정된 것은 어떤 여론으로도 되돌리기 어렵다. 여론수렴과 정치적 협의의 과정은 필요없다.
법을 내세우고, 염치는 거두고, 여론은 무시한다. 강용석 의원의 고소에 어떤 의의를 찾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사회가 움직이는 매커니즘을 모든 대중에게 공개했다는데 있다. 국회의원이 마음만 먹으면 모두의 코미디를 방해할 수 있다. 국회의원, 프로야구 구단주,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 대표 모두 법이 설정한 자신의 권한을 내세워 국민의, 또는 소비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다. 반면 대중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FTA 비준하의 나라에서 살아야하고, 종합편성채널을 봐야하고, 8개밖에 없는 프로야구팀 중 하나를 좋아하며 산다. 강용석 의원이 최효종을 고소하면서, 이 시대를 움직인 매커니즘은 국민의 TV 앞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대중을 끌어내릴 권리는 없다 권력이 여론 대신 자신들이 만든 법조문만을 밀어붙일 때, 대중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 때 는 정치인에 대한 폭로를 바탕으로 권력과 법에 대항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을 보여줬다. 수많은 사람들의 여론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권력자들이 폭로를 통해 실질적인 타격이 가해지자 입장을 바꾼다. 그러나, 모든 대중이 의 방식으로 여론을 모을 수는 없다. 또한 는 정치인에 대한 공적인 폭로와 사적인 비난의 경계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주 는 누구나 기억해야할 기념비적인 의의를 갖는다. 강용석 의원은 “한 사람을 잡으려고 공영방송이 공기(公器)인 전파를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를 비난했다. 하지만 사회의 권력이 움직이는 방식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에 대해 당사자들이 직접적인 대응을 했다는 점에서 의 개그맨들은 반드시 풍자해야했던 일을 풍자했다. 그리고, 권력이 한 개그맨에게 주는 압박을 그들의 방식으로 이겨냈다.
개그맨 개인은 국회의원보다 힘이 약할 수 있다. 하지만 개그맨은 무대 위에서, 대중의 지지를 얻는 한 국회의원에게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은 아니다”라고 맞받아 칠 수 있고, “국민 여러분들이 저한테 시사 개그를 하지 말라고 하시면 절대 안하겠습니다. 하지만 특정인물 한 명이 하지 말라고 하면 저는 끝까지 시사개그를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다. 법과 권력 앞에서 여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권력자도, 법도 대중이 환호하는 무대 위의 개그맨을 끌어내릴 수는 없다. 개그맨의 과감한 풍자가 대중을 모았고, 대중이 그가 풍자할 권리를 지켜주고 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말하고, 사람을 모으고, 그들을 공감시키고, 그것에 대해 기록해야 한다. 법을 이용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 못했다면, 우리는 살기 위하여 더 열심히 살아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글. 강명석 기자 two@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