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평범하다. 부자 집에 얹혀 허드렛일이나 돕는 식객이다. 평범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하지만, 이 남자 어딘가 이상하다. 알고 보니 평범한 외모로 여자들 마음을 쥐락펴락 했던 천하의 바람둥이다. 아내와 자식은 모르는 어떤 비밀을 안고 있다. 올해의 흥행작 중 한 편인 <방자전>과 <페스티발>은 그렇게 오달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준다. 평범한 얼굴과 평범한 신분을 가졌지만, 그는 작품 속에서 늘 무언가를 저지를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진 남자였다.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 같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부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까지, 그는 매번 평범한 조연으로 나오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강렬하게 자신의 인상을 남길 줄 안다. 그건 오달수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연기이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 때는 연기가 그냥 일상이었어요. 낮에는 새 작품을 준비하면 저녁에는 공연 중인 작품을 연기하고, 그렇게 매일 매일 살았죠.” 그런 선택을 한 것을 보니 연기를 정말 좋아했나보다하고 묻자 역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대답이 돌아온다. “아뇨.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연극 포스터도 거기서 인쇄했어요. 그래서 극단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연극을 시작했어요.” 수없이 연기하고, 또 연기하던 그 시절의 경험은 그에게 어떤 연기도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들었고, 어떤 배역이든 자신만의 색깔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만약 킬러를 연기한다면, 다 같은 킬러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킬러라고 해도 굉장히 사연이 있을 수도 있고, 건조하게 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역이든 배역의 그런 배경을 담고 이해해야죠.” 여러 편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그는 지금도 얼마든지 평범한 듯 비범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준비가 돼 있었다. 그래서, 오달수에게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 영화에 대해 들었다.




1. <성난 황소> (Raging Bull)
1980년 | 마틴 스콜세지

“걸작이죠. 로버트 드니로가 유명한 복서에서 삼류 인생으로 전락했을 때의 모습은 너무 대단해요. 권투 선수로서의 연기도 대단하지만 살이 쪘을 때의 모습은 정말 놀랍다고 밖에 할 수 없어요. 이런 역할이라면 누구라도 해보고 싶겠죠.”

많은 명작들을 쏟아낸 마틴 스콜세지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한 때는 화려했지만 몰락해버린 은퇴한 권투선수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인생에 대한 성찰은 물론 당시 미국사회를 깊이 있게 바라본다.



2. <대부> (Mario Puzo`s The Godfather)
1972년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는 다 좋지만, 역시 1편이 가장 좋아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영화죠.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제임스 칸이 연기한 소니가 끌려요. 물론 <대부>는 말론 브란도가 끌고가는 영화지만, 말론 브란도를 중심으로 벌이는 인간 군상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소니에요. 거칠고 대책 없지만 인간적으로 짠하고, 굉장히 용을 쓰며 산다는 (웃음) 생각이 들어요.”

최근 디지털로 재개봉 됐을 만큼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걸작. 한 마피아 가문의 흥망사를 대서사시처럼 풀어내면서 수많은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연출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빛을 발하고 있다.



3. <도그빌> (Dogville)
2003년 | 라스 폰 트리에

“<도그빌>을 보고 굉장히 충격에 빠졌어요. 영화나 연극은 결국 관객과 배우의 약속이잖아요. 그 약속을 한 번 맺으면 관객은 그대로 영화가 전하는 세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거든요. <도그빌>이 딱 그래요. 굉장히 연극적인 무대잖아요. 바닥에 선만 그어서 누구 집 누구 집 이렇게 해놓고. 그런데 거기서 벌어지는 인간의 이야기가 너무 강렬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런 거에 신경 안 쓰게 되죠. 거기서 나오는 어떤 캐릭터든 연극으로 연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개봉 당시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작품. 연극적인 세트를 통해 모든 사건이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형식적인 독특함뿐만 아니라, 그 세트 안에서 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박해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찬반 논쟁이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니콜 키드먼의 얼굴이 크게 박힌 포스터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The Spiriting Away Of Sen And Chihiro)
2001년 | 미야자키 하야오

“이 영화는 딸이 일곱 살 때 함께 본 영화에요. 딸하고 영화 볼 기회가 많지 않아서 특히 이 작품이 기억에 남네요. 딸이 무척 좋아하기도 했구요. 모든 영화 통틀어서 그 가마 할아범 같은 캐릭터를 본 적이 없어요. 인간의 상상력으로 저런 걸 만들어내나 싶은 캐릭터였어요.”

오달수의 설명대로 인간의 동화적인 상상력을 마음껏 풀어낸 작품.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말썽꾸러기 같던 소녀 아이가 신들의 세계에서 열심히 일을 배우는 내용이기도 하다. 아이에게는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른에게는 인간 세계든 신의 세계든 직장 생활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5. <넘버 3> (No. 3)
1997년 | 송능한

“그렇게 통쾌하게 본 영화가 없어요. 1990년대 후반의 영화인데, 조폭과 검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렇게 사회에 대해 폭로한 작품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우연찮게 양아치로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연극을 해서 더 인상 깊었죠. 특히 송강호 씨의 캐릭터는 정말 길이길이 남을 만 했죠.”

조폭 영화의 붐을 일으킨 작품이자, 지금도 조폭 영화의 걸작으로 거론되는 작품. 인텔리 같은 조폭과 험악한 검사라는 캐릭터 설정은 이후 많은 작품에 영향을 줬고, 재기발랄한 입담 속에 감춰진 사회 풍자는 대중적인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게 만들었다.




“요즘엔 바쁘니까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 일단 고민하게 돼요. 이걸 내가 하는 게 가능한가 (웃음) 하지만 결국 마음에 들게 되면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구요.” 오달수는 최근 끊임없이 출연제의를 받고 있다. SBS <드림>으로 드라마 출연을 한데 이어 <방자전>과 <페스티발>에 연이어 출연했고, 송강호 주연의 <소금인형>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연기를 일상처럼 해왔던 그에게는 작품의 양이 문제가 아닌듯 하다. “<페스티발>에서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도 그런 사람이거든요. 내가 왜 이 결혼생활을 하고 있을까, 나에게 지금 무엇이 행복한가. 그걸 생각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어떤 일을 벌이게 되는 거죠.” 오달수에게는 연극을 만나면서 그 우연한 기회를 얻었고, 지금 행복이 무엇인지 찾은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그를 평범한 조연 배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달수는 지금 행복한 페스티벌 중이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