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가미 나오코 “가족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완성되는 것”
오기가미 나오코 “가족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완성되는 것”
폄하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하자면, 12월 2일 개봉을 앞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 은 그녀의 전작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작품이다. 의 핀란드 헬싱키, 의 가고시마현 요론섬을 거쳐 의 카메라는 캐나다 토론토로 그 장소를 옮겨왔다. 달라도 너무 다른 3남매 모리, 레이, 리사. 그리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남긴 고양이 센세이와 일본인 할머니. 이들의 이상한 동거의 기록인 은 외롭고 말없는 여자와 세상을 초월한 것 같은 고양이 그리고 미각과 영혼을 자극하는 ‘소울푸드’의 등장처럼 다분히 자기복제적인 혐의가 짙고,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명확한 스토리라인 없는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또 다시 의 문을 노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생은 지루함의 연속을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말하던 청년이 그 지루함을 함께 할 가족과 따뜻한 식사를 함께 하는 순간, 혹은 이기적이었던 손자가 할머니의 화장실에 숨겨진 따뜻한 비밀을 발견하는 순간, 이 영화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언어로 설명할 길 없는 무언가를 입 안으로 쑥 넣어버리고야 만다. 얼핏 단아한 식물처럼 보이지만 가장 동물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어쩌면 그녀가 세상에 내놓는 것은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슬로우 라이프’ 슬로건을 내건 선연한 캠페인도 아니다. 그저 당장 달려가 속이 꽉 찬 군만두를 먹고 싶어지는, 따뜻한 변기위에 달아오른 엉덩이를 올려놓고 싶어지는 설레는 본능의 두 시간이다. 그래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과의 인터뷰는 여느 영화감독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주제와 메시지에 대한 강박을 도통 찾아 볼 수 없는 이 여자와의 대화는 오히려 회의실보다는 식탁에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데뷔작인 에서 이어지는 , 그리고 최신작 까지 당신의 영화는 어떤 스토리를 전달하기 보다는 총체적인 삶의 방식,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기가미 나오코: 아무래도 이나 은 그런 면이 강하긴 하지만 언론에서 이 작품들이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영화”라는 평가를 들었을 때는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원래 만들 때부터 이런 저런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영화를 만들어야지, 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은 단순한 라이프스타일을 뛰어넘는 스토리, 뭔가 다른 걸 만들고 싶긴 했다.

“집의 중심에 있는 화장실, 가족의 이야기로 발전됐다”
오기가미 나오코 “가족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완성되는 것”
오기가미 나오코 “가족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완성되는 것”
제목을 으로 내세울 만큼 영화에서 ‘화장실’은 중요한 공간이다. 유독 먹는 것, 마시는 것을 자주 보여주는 것만큼 배설의 공간 역시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였을까? 순환의 완성을 위해? (웃음)
오기가미 나오코: 하하하. 그런 생각을 한건 아니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을 같이 작업한 한 핀란드 스태프에게서 얻었다. 그 분은 늘 일본의 선진적인 변기(!)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화장실에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 오곤 했다. (웃음) 뚜껑도 자동으로 열리고, 앉으면 따뜻하고, 물도 내려가는 게 너무 신기하다면서!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것이 외국에서는 신기한 것이 되는 것, 그런 점이 흥미로웠고 그러다가 화장실이 대부분 집의 중심에 위치해있다는 사실에 가족의 이야기로 발전 시켜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에서 ‘할머니’를 연기한 모타이 마사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기가미 나오코: 망설임 없이 나의 ‘뮤즈’라고 부르고 싶은 배우다. 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 길 위에 선 여자를 마사코 씨가 자전거를 타고 와서 태워가는 장면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말 한마디 없이, 아니 어떤 말도 필요 없이 그 장면을 훌륭하게 만들어내는 그녀를 보면서 에서도 영어를 하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말을 하지 않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말없이도 충분히 어떤 종류의 아우라를 풍겨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기타 없이 기타 치는 흉내를 내는 핀란드의 ‘에어기타 콘테스트’는 이미 에서 언급된 적 있는 대회인데 에서 동생 리사의 변화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오기가미 나오코: 정말 바보 같고 정말 이상한,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대회라고 생각했다. 직접 참여한 적은 없는데 경기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유튜브 영상들을 보았다. ‘부인업고 달리기’처럼 핀란드에서는 이상한 경기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게 좋다. 기타노 다케시의 에 나온 다 큰 어른들의 바닷가 스모 시합 같은 것들. 어떤 의미도 없지만, 그 장면 자체가 주는 비주얼 적인 힘이 좋다.

어쩌면 오기가미 나오코는 PPL에 있어 거의 최고의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리메코, 이딸라, 아르텍 같은 핀란드산 제품들에 이어 이번엔 토토비데를 사야하나 하는 고민이 들 정도였다. 또한 의 시나몬롤과 오니기리, 의 랍스터, 얼음빙수, 삿포로 맥주, 이번엔 극장문을 뛰쳐나오자마자 일본식 군만두를 사먹어야겠더라. (웃음)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인가? 당신의 부엌과 집의 풍경이 궁금해진다.
오기가미 나오코: 하하하. 아마 그 풍경은 안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정말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다. 대신 핀란드에서 사온 각종의 다양한 패브릭이 많다. 엄마가 북유럽에서 사온 천으로 커튼도 만들어 주셨다. (웃음)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집안 꾸미기에는 늘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요리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내가 정말 요리를 잘할 거라는 오해들을 하는데, 전혀 그렇진 않다. 은 어쨌든 요리가 주가 되는 영화였으니까 진짜 요리를 전문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보통은 미술팀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식인데 그 정도로는 만족스러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종 광고에서 명성을 쌓은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지마 나미(, 뿐 아니라 드라마 , 등의 푸드 스타일링도 담당했다)의 도움을 받았다. 그저 촬영용으로 보기만 좋은 게 아니라 진짜 맛있다. 촬영이 끝나면 그녀가 만든 음식을 스태프들이 나눠 먹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밥을 함께 먹는 순간 누구라도 어쩐지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기가미 나오코: 완전한 타인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그런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는 언제나 내 영화의 중요한 테마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여전히 각각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 속에서 그리고 싶은, 함께 모여 사는 풍경은 그런 거다. 서로에게 너무 의존하지는 않고 독립적으로 살지만 여전히 가깝고 연결되어 있는 느낌. 그런 인간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계속적으로 표현하게 될 것 같다. 갑자기 블록버스터 SF영화를 찍는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웃음)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에서도 역시 고양이가 등장을 한다. 혹시 고양이를 키우나.
오기가미 나오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간 세 마리를 키웠다. 두 마리는 2년 전에 죽었고 한 마리는 이번 8월 마지막 날 저 세상으로 떠났다. 다시 새로운 녀석을 입양하려고 한다. 사실 징크스 혹은 이상한 믿음인데 영화에 고양이가 나오면 성공을 하더라. 그래서 매작품마다 고양이가 들어가는 샷을 꼭 찍으려고 노력한다.(웃음)

어쩌면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에서 각각의 구성원이 가졌으면 하고 말했던 독립적인 삶의 방식이 고양이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기가미 나오코: 한 번도 그렇게 연결 시켜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재미있는 관점이다. 정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다양한 여행의 경험이 영화를 만드는데 영감을 준다”
오기가미 나오코 “가족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완성되는 것”
오기가미 나오코 “가족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완성되는 것”
시나리오는 혼자 쓰는 편인가? 작업 방식도 궁금하다.
오기가미 나오코: 늘 직접 쓰고 작업속도는 좀 빠른 편이다. 보통 첫 스크립트는 일주일이면 쓰고 그 이후에 퇴고하는 시간을 포함해 한 1달 정도 걸리는 정도다. 의 경우는 촬영이 한 달이었는데 실제 촬영 일수는 19일이었다.

작업방식은 꽤 빠르게 진행되고 촬영도 빠른데 영화 속 세계의 속도는 매우 느리게 흘려가는 것이 신기하다.
오기가미 나오코: 그러게, 촬영하고 영화작업을 하는데 있어서는 빠른 편인데 그 외의 삶은 10시간 넘게 자고 매일 맥주마시고 정말 게으르다 싶을 정도로 느린 사람이다. 전작들을 통해 나의 페이스와 유머를 알았고 을 통해 다른 언어로 표현되더라도 여전히 나의 속도와 유머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나저나 의 촬영지는 왜 핀란드였나. 영화 속에서는 핀란드 여행을 결심한 이유가 눈을 감고 지도에서 손가락이 가리킨 곳이라서, 라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오기가미 나오코: 실재 영화 로케이션이 그렇게 결정되진 않았다. (웃음) 당시는 그곳이 어디인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그저 프로듀서가 가장 좋아했던 나라가 핀란드여서 핀란드가 된 거다. 그런데 우연히도 내가 14살 때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 하던 교환학생이 핀란드소녀였다. 함께 6개월 정도 머물러서 어쩐지 핀란드 사람들에 대한 친근감이 있었다.

이제 또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오기가미 나오코: 새 작품은 이제 겨우 1고를 완성한 상태라서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프랑스 십대 소녀들을 데리고 유럽에서 로드무비를 찍을 예정이라는 것 정도?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가?
오기가미 나오코: 정말 좋아한다! 라오스도 인상 깊었고 작년엔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라. 아무래도 다양한 여행의 경험이 영화를 만드는데 영감을 준다. 언젠가 아프리카,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나올 수도 있겠다.

의 경우도 일본에서 촬영되었지만 어쩐지 일본이 아닌 공간, 거의 무국적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사람들은 좁은 도시에 대한 답답함 때문인지 유독 해외에 대한 동경이 크다고 들었다. 혹시 여행이 아니라 아예 일본을 떠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
오기가미 나오코: 음… 어려운 질문이다. 도쿄를 좋아하지만 살기에 만만한 도시는 아니다. 고향은 치바였고 대학을 졸업하고 22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렇게 6년간 미국 LA에서 살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10년을 살았다. 을 찍으며 6개월가량 캐나다에 나가 있었을 때 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그래서 사실 내년엔 뉴욕에 갈 것 같다. 뭔가 계획이 있어서 가는 건 아니다. 그냥 딱 1년만 살아보고 싶어졌다.

글. 백은하 o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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