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이 지배하는 세계" />
궁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산다. 그리고 외로움이 짙어질수록 삶을 지탱하기 위해 선택한 일은 집착의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가진 왕(조휘)은 되레 아무것도 갖지 못한 중전의 몸종 자숙(전미도)을 탐하고, 구중궁궐 믿을 사람이 없어진 중전(김지현)은 술을 탐한다. 왕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서른세 살” 최상궁(태국희)은 음모를 만들어내고,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하내관(안세호)은 그런 최상궁을 희롱한다. 하지만 이 안에도 서로의 외로움을 쓰다듬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몸종 자숙과 그런 그녀를 사랑해 스스로 거세하고 입궁한 내관 구동(김대현)이다.
지난 10월 19일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은 왕세자의 실종사건을 계기로 시대와 공간의 아이러니 속에 피어난 사랑과 “본질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린다. 연출가 서재형과 한아름 작가의 손을 거쳐 태어난 이 작품은 2005년 ‘젊은연극 시리즈’로 선정되어 관객 앞에 섰다. 당시 연극의 틀을 깬 기발한 상상력과 신선한 형식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6년의 앵콜공연과 3년간의 지방공연을 거치며 꾸준히 내공을 다져왔다. 그리고 매번 음악의 비중이 높은 작품을 만들어왔던 두 제작자는 “음악극을 하는 극단”을 위해 연극을 뮤지컬로 변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동안 연극 가 으로, 연극 이 로 변신했지만 원작의 그늘에 가려져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은 뮤지컬로의 변신에 성공했을까. │상상력이 지배하는 세계" />
익숙한 재료에서 신선한 맛이 난다 │상상력이 지배하는 세계" />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한다면, 은 변신에 성공했다. 그들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관습적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새로움을 만들어냈고, 연극에 비해 좀 더 친절해진 방식으로 극을 풀어내 신선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껴안았다. 구동과 자숙의 사랑이야기가 극 전반에 익숙함을 전한다면, 신선함은 가장 먼저 무대에서 드러난다. 얼핏 체스판처럼 보이는 바닥과 벽에 붙은 의자, 기능적으로 쓰이는 사다리가 전부인 휑한 무대.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는 그 어떤 대극장 공연보다도 더 풍성하게 변신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동선은 거대한 궁궐을 형상화하고, 배우들의 입을 통해 만들어지는 갖가지 소리효과는 5.1 채널 못지않은 공간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마임을 연상시키는 몸짓과 표정은 “공간에 정서를 남기며” 관객과 배우가 함께 약속된 상황을 그려나간다. 그래서 무대에 거대한 살구나무가 없어도, 천정에 매달린 작고 시린 살구 한 알은 자숙을 향한 구동의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국악으로 이름을 알린 황호준 작곡가는 “뮤지컬의 장르관습과 전제를 깨뜨리는” 과정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그래서 은 노래를 위한 노래가 아닌 “연기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작곡되었다. 얼핏 노래 초반부가 랩처럼 들릴 수 있는 하내관의 ‘내시의 운명’은 알아도 발설할 수 없고, 표할 수 없는 내관의 감정을 서술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또한, 둥둥 울리는 거대한 북소리에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사운드가 얹히고, 캐릭터에 맞춰 재즈와 클래식으로의 전환도 이루어지는 음악의 다양성은 공연장 크기의 한계까지 훌쩍 뛰어넘는다.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면 은 긴장과 이완의 작품이다. 사라진 왕세자를 둘러싼 7명의 중심인물과 자객은 끊임없이 궁궐을 달리고, 감찰 상궁은 그 와중에 각종 경우의 수를 따지며 용의자를 찾아낸다. 이 과정은 눈을 뗄 수 없는 추리극의 긴장이다. 하지만 한없이 진지해지는 긴장의 순간 고개를 드는 것은 바로 해학의 이완이다. 왕은 광기와 깨방정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로 중전을 향해 “귀 먹었소”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의관은 재치 넘치는 행동으로 또 다른 웃음을 준다. 90분이라는 시간동안 시공간이 마구 뒤섞이지만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 배우들의 몸짓에도 근육의 긴장과 이완이 계속되며, 한시도 쉬지 않고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그래서 사라진 왕세자는 과연 찾았냐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뮤지컬 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11월 7일까지 공연된다.
사진제공. 극단 죽도록 달린다
글. 장경진 three@
궁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산다. 그리고 외로움이 짙어질수록 삶을 지탱하기 위해 선택한 일은 집착의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가진 왕(조휘)은 되레 아무것도 갖지 못한 중전의 몸종 자숙(전미도)을 탐하고, 구중궁궐 믿을 사람이 없어진 중전(김지현)은 술을 탐한다. 왕의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서른세 살” 최상궁(태국희)은 음모를 만들어내고,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하내관(안세호)은 그런 최상궁을 희롱한다. 하지만 이 안에도 서로의 외로움을 쓰다듬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몸종 자숙과 그런 그녀를 사랑해 스스로 거세하고 입궁한 내관 구동(김대현)이다.
지난 10월 19일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은 왕세자의 실종사건을 계기로 시대와 공간의 아이러니 속에 피어난 사랑과 “본질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린다. 연출가 서재형과 한아름 작가의 손을 거쳐 태어난 이 작품은 2005년 ‘젊은연극 시리즈’로 선정되어 관객 앞에 섰다. 당시 연극의 틀을 깬 기발한 상상력과 신선한 형식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6년의 앵콜공연과 3년간의 지방공연을 거치며 꾸준히 내공을 다져왔다. 그리고 매번 음악의 비중이 높은 작품을 만들어왔던 두 제작자는 “음악극을 하는 극단”을 위해 연극을 뮤지컬로 변환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동안 연극 가 으로, 연극 이 로 변신했지만 원작의 그늘에 가려져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은 뮤지컬로의 변신에 성공했을까. │상상력이 지배하는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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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한다면, 은 변신에 성공했다. 그들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관습적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새로움을 만들어냈고, 연극에 비해 좀 더 친절해진 방식으로 극을 풀어내 신선함과 익숙함을 동시에 껴안았다. 구동과 자숙의 사랑이야기가 극 전반에 익숙함을 전한다면, 신선함은 가장 먼저 무대에서 드러난다. 얼핏 체스판처럼 보이는 바닥과 벽에 붙은 의자, 기능적으로 쓰이는 사다리가 전부인 휑한 무대.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는 그 어떤 대극장 공연보다도 더 풍성하게 변신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동선은 거대한 궁궐을 형상화하고, 배우들의 입을 통해 만들어지는 갖가지 소리효과는 5.1 채널 못지않은 공간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마임을 연상시키는 몸짓과 표정은 “공간에 정서를 남기며” 관객과 배우가 함께 약속된 상황을 그려나간다. 그래서 무대에 거대한 살구나무가 없어도, 천정에 매달린 작고 시린 살구 한 알은 자숙을 향한 구동의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국악으로 이름을 알린 황호준 작곡가는 “뮤지컬의 장르관습과 전제를 깨뜨리는” 과정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그래서 은 노래를 위한 노래가 아닌 “연기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작곡되었다. 얼핏 노래 초반부가 랩처럼 들릴 수 있는 하내관의 ‘내시의 운명’은 알아도 발설할 수 없고, 표할 수 없는 내관의 감정을 서술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또한, 둥둥 울리는 거대한 북소리에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사운드가 얹히고, 캐릭터에 맞춰 재즈와 클래식으로의 전환도 이루어지는 음악의 다양성은 공연장 크기의 한계까지 훌쩍 뛰어넘는다.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면 은 긴장과 이완의 작품이다. 사라진 왕세자를 둘러싼 7명의 중심인물과 자객은 끊임없이 궁궐을 달리고, 감찰 상궁은 그 와중에 각종 경우의 수를 따지며 용의자를 찾아낸다. 이 과정은 눈을 뗄 수 없는 추리극의 긴장이다. 하지만 한없이 진지해지는 긴장의 순간 고개를 드는 것은 바로 해학의 이완이다. 왕은 광기와 깨방정을 동시에 지닌 캐릭터로 중전을 향해 “귀 먹었소”라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의관은 재치 넘치는 행동으로 또 다른 웃음을 준다. 90분이라는 시간동안 시공간이 마구 뒤섞이지만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 배우들의 몸짓에도 근육의 긴장과 이완이 계속되며, 한시도 쉬지 않고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그래서 사라진 왕세자는 과연 찾았냐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뮤지컬 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11월 7일까지 공연된다.
사진제공. 극단 죽도록 달린다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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