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10] 불치병 첫사랑 이야기에 이렇게 울 줄은 몰랐습니다
[PIFF+10] 불치병 첫사랑 이야기에 이렇게 울 줄은 몰랐습니다
멈칫 멈칫, 상대를 향해 다가가는 손. 보잘 것 없는 사탕 한 알을 수줍게 받아드는 손. 한 걸음 씩 걸을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손. 그리고 마침내 맞잡은 두 손. 제 15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개막작 연인들의 거의 유일한 애정 표현은 손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징치우(조우 동유)와 라오산(샨 도우)의 사랑은 뜨거운 고백도, 육체적인 화학작용 없이도 “평생을 함께 하는” 영생을 얻었다. 2000년대 들어 , 등 중국 대륙의 화려함과 거대함을 담은 블록버스터들을 연달아 내놓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 폐막식 연출까지 맡았던 장이모우 감독. 그러나 돌연 무명의 신인배우들과 함께 작은 규모로 만든 로 부산을 찾는다고 했을 때 그의 초기작들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느덧 중국의 ‘국민 감독’이 되어버린 그가 제 4회 PIFF의 폐막작이었던 나 처럼 시대의 아픔을 보통 사람을 통해 얘기하던 시절로 회귀한 줄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는 그들과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다시 필부필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사랑이다. 영화는 혼란스러웠던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보다는 징치위와 라오산의 첫사랑에 집중한다. 중일전쟁의 격전지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영웅나무’라는 칭호를 얻은 산사나무가 영화 말미에선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사랑을 상징하는 정표로 바꿔 불린 것처럼.

징치우는 농촌 현장실습에서 만난 라오산과 사랑에 빠진다. 첫눈에 반한 둘은 만남을 이어가지만 징치우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자유연애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출신성분이 나쁜 징치우는 일자리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비밀연애는 해를 넘기면서 들통이 나고 라오산은 백혈병을 얻어 징치우를 떠난다. 불치병에 걸린 첫사랑과의 가슴 아픈 이별이라니! 이제는 ‘신파’라고 욕먹기 십상이며 로맨스 소설, 드라마, 청춘영화에서 만들고 또 만들었던 이야기다. 그러나 에는 식상한 클리셰 대신 장이모우라는 거장이 정성스럽게 담아낸 소중한 순간들이 살아 있다. 사라지고 다시 올 수 없어 더 아름다운 그 때가. 막 피어나기 시작한 사랑의 순간과 사소한 오해에도 끝날 만큼 약하지만 죽음을 유예시킬 만큼 강한 사랑의 두 얼굴을 목격하고 난 뒤, 할 수 있는 것은 손수건을 찾는 것뿐이었다. 정말 몰랐다. 불치병으로 이별하게 된 연인들의 이야기에, 그것도 PIFF 개막작으로 이렇게 펑펑 울 줄은.

장이모우 “시대의 아픔보다는 사랑을 담아내려고 했다”
[PIFF+10] 불치병 첫사랑 이야기에 이렇게 울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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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작업한 영화들은 초기작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크고 화려했다. 그러나 는 당신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고 느낄 만큼 소박하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나.
장이모우 감독: 최근엔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상업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추세다. 그런 영화들과 비교해선 규모면에선 작으니까 소박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원작이 된 소설의 좋은 이야기와 소재를 접했고, 나 또한 순수한 사랑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직접 겪었는데 본인의 체험이 영화에 영향을 미쳤나.
장이모우 감독: 문화대혁명은 성장기에 겪은 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는 최대한 그 배경에서 멀리 떨어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예전에는 인생의 고난이나 힘든 부분을 직접적으로 묘사했지만 여기선 시대보다는 둘의 사랑을 더 담아내려고 했다.

사실 불치병에 걸린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굉장히 많이 되풀이 되어왔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장이모우 감독: 물론 남자 주인공이 백혈병으로 죽는 이야기는 지난 30년 동안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원작에서 처음 접했을 때도 그 내용 자체는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불치병에 걸려 죽는다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연기자들이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봤다.

[PIFF+10] 불치병 첫사랑 이야기에 이렇게 울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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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부산=이지혜 기자
사진. 부산=채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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