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처럼 세상에 대해 따끔하게 훈수를 두는 동혁이형이지만, 학창시절 그는 친구들에게 돋보이고 싶어 하는 장난기 많은 소년이었다. “학교에서는 까불까불하고 그랬어요. 튀고 싶어서 교복을 벗고 사복을 입고 학교를 간 적도 있고, 하루는 고무신을 신고 등교한 적도 있고. 그땐 학생주임 선생님이 구레나룻을 한쪽만 자르고 다녔는데, 그거 잘리기 싫어서 그 선생님 스케줄을 미리 알았다가 먼저 등교하고 그랬어요. 한 마디로 괴짜였죠.” 친구들 앞에서는 배꼽 잡게 만드는 웃음들을 풀어놨지만, 정작 그런 장기를 작업(?) 하는 데 쓰지는 못했다. 그는 여자 앞에서는 숙맥이었다. 맘에 드는 여자 아이가 추파를 던져도 “나는 너 싫어~”라며 튕기면서 속으로는 아쉬워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가 주머니 속 꾸깃꾸깃 접어놓은 종이를 펴들며 자신이 선택한 노래들을 하나둘씩 불러주기 시작한 건 이 무렵이었다. 닭똥집 먹고 키스한 첫 사랑의 테마곡에서부터 미래의 아내에 바치고 싶은 청혼곡까지. 소파에 앉아 있던 그는 자신의 연애담을 전자상가에서 물건 설명하듯 자세하게, 때로는 직접 일어서서 행동으로 재현까지 해 보이며 노래에 얽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너무 수위가 센 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거침없는 우리의 동혁이형이 ‘여인들과 함께 한 노래들’을 테마로 5곡을 선정했다. 아, 여기에 샤우팅은 없다.

“첫 키스는 고3 수능시험 끝나고 했어요. 남들은 첫 키스 하면 귀에서 종소리가 난다는데, 저는 술 먹고 왕게임 하다가 키스를 했어요. (웃음) 그 키스한 친구는 옆 학교 퀸카였는데, 진짜 예뻐서 결국 사귀었어요. (웃음) 애들은 막 난리도 아니었죠. 네가 어떻게 걔랑 사귀냐면서 말이죠. 그때 삐삐가 유행이었는데 괜히 전화해서 공중전화 부스에 곰 인형을 두고 나오거나, 그 친구가 살던 복도식 아파트에 길목에 촛불을 깔아 놓고 이벤트를 한다든지, 제 딴에는 참 잘해줬어요. 그렇게 사귀다 결국 제 자존심 때문에 헤어졌어요. 그때 길거리에서 터보의 ‘회상’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올 때예요. 둘이서 바닷가를 간 적은 없지만, 마치 방황하는 주인공의 가사가 제 얘기 같아서, 한동안 이 노래만 들으면 우울하고 그랬어요.”

“대학에 가서 여자를 사귀었죠. 근데 제가 군대를 가면서 제일 친한 친구한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줬어요. 자주 챙겨달라면서 부탁하고 갔는데, 상병 휴가 나와서 애가 막 울면서 그 애에게 고백했다면서 저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와. 휴가는 나왔는데 혼란스럽더라고요. 만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제가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쯤 그 애는 저보다 그 친구에게 관심을 더 보였고 (웃음)… 그 어느 날, 글씨도 참 못쓰던 여자 친구가 평소에 안 쓰던 편지를 장문으로 써서 부대로 보냈더라고요. 나쁜 예감이 들어서 뒤부터 봤더니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고 돼 있더라고요. 충격이었죠. 편지 안에는 그동안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저에게 섭섭했던 게 빼곡하게 적혀 있더라고요. 그 후로 ‘잘못된 만남’ 노래가사를 듣는데 어찌나 귀에 쏙쏙 박히던지.”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용산 전자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이번엔 여자한테 진짜 잘해주기로 마음먹던 차에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랑 만나게 됐어요. 서로 일찍 출근해서 용산역에서 만나는 아침 데이트 같은 거 하고, 걔네 집까지 바래다주고 오면 차비가 없어서 근처 목욕탕에서 자는 그런 연애를 했죠. 참 잘해줬는데, 이게 또 남자가 막 잘해주니까 매력이 없는가 봐요. 결국 한동안 연락이 안 돼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 친구 집에 얼굴 보러 갔어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시간이 늦어서 택시비까지 챙겨갔죠. 근데 김건모의 ‘빗속의 여인’이 생각나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 싶어 비를 쫄딱 맞았어요. 비와 함께 털어버리려고요. 이후에 개그맨이 되고 나서 만났는데, 기분이 별로더라고요. 그냥 추억은 기억 속에 있을 때 아름다운 거 같아요.”

“제가 남을 웃겨야하는 걸 직업으로 삼고 있는 연예인이죠. 제가 웃기는 사람이라서 가끔 저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 미래의 와이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면서도 멋진 연예인이 되고 싶어요. 싸이의 ‘연예인’처럼 말입니다.” 1, 2, 3집에 걸쳐 ‘잘 노는 언니, 오빠’에 대한 싸이의 고찰을 보여줬다면, 싸이가 결혼한 2006년에 내놓은 4집 의 ‘연예인’은 그가 한 여자에게 정착하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곡이다. ‘나의 그대가 원한다면 어디든 무대야. 오늘부로 너의 연예인이 되기 위해 데뷔무대. 코믹, 멜로, 액션, 에로 맘에 드는 걸 찍으시죠’라는 가사는 진지하고 엄숙한 노래로 점철됐던 결혼식 축가에 일대 혁명을 불어넣는 신선한 댄스곡으로 결혼식장에서 한 때 유행처럼 불려졌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프러포즈로 쓰고 싶은 노래예요.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딱 분위기 잡고 손가락에 반지 끼워 주면서 불러주고 싶은 노래 있죠. 이 노래가 딱 그래요. 최근에 다시 듣고 있는데 레이 찰스의 음색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Ellie My Love’는 J-pop의 선구자 ‘서던 올 스타즈’(Southen all stars)가 1979년 발표했던 곡으로 레이 찰스가 1990년 < Would You Believe >에서 리메이크 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느린 템포의 소울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레이 찰스의 노래를 고른 장동혁은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며 ‘Ellie My Love’를 흥얼거리며 마지막 곡으로 선곡했다. 7살 때 녹내장이 걸려 앞을 보지 못하는 아픔을 소울로 승화시킨 레이찰스 특유의 감성과 슬픔이 잘 묻어나오는 곡이다.

글. 원성윤 기자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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