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슴다 –;
1. 사망했습니다. 생명연장이 불가합니다.
2. 어레스트인가? 바이탈 측정하고! 200줄 차지! 물러서! 샷! 아… 결국…

‘죽었슴다 –;’는 일반적으로 사망선고와 같은 본디 의미로 통용되어 성적, 인기, 가계의 몰락을 설명하는 동사로 쓰인다. 이에 더해, 월드컵 경기 결과 등과 관련하여 극심한 하락세, 대위기를 뜻하기도 하는 등 점차 그 사용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표현이다. 디씨인사이드 물고기 갤러리의 유저, 무너매니아가 30kg 상당의 대왕 문어 사육을 준비하고 시도하며 끝내 실패에 이른 과정을 짧게 정리한 연속 게시물에서 유래된 이 문장은 그가 남긴 마지막 게시물의 제목과 일치한다. ‘-슴다’라는 보고형 축약 어미에서 지나치게 담담한 심경이 드러나는 것 같지만, 폐업하는 횟집에서 대형 수조를 확보하고, 시장에서 싱싱한 문어를 공수하는 등 준비에 정성을 기했지만 결국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단식을 선택한 문어의 진심을 마주한 그의 당혹스러움이 뒤에 덧붙여진 ‘–;’이라는 이모티콘에서 엿보인다. 또한 그의 게시물에서는 좌절된 호기심과 허무하게 낭비된 금전에 분노하기 보다는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닌 문어의 상태를 재빨리 음식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식이취향과 사후처리 방법을 고민하는 태도를 통해 능동적이고 유연한 사고의 변화를 읽어 낼 수 있기도 하다. 요컨대, ‘죽었슴다 –;’는 죽음이라는 절명의 상황 앞에서 오열과 원망으로 시간을 지체하기 보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현대인의 생활 태도를 집약한 표현인 것이다.

한편, 서양에서 문어는 불길함을 상징하는 음험한 동물로 간주된다. 특히 유명한 바다 괴물 크라켄은 바다 뱀, 혹은 고래를 닮았던 초창기 모습에서 점차 대형 문어와 유사한 형태로 변모하면서 문화권이 갖고 있는 문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반영해 왔다. 그러므로 마물인 문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도 짐짓 침착한 태도는 묘령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앞날을 내다보는 월컵선녀문어보살의 경우라면 대접에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내 맛에 반해 나를 절단할 시에는 포세이돈의 불호령을 면치 못할 것이야.
용례[用例]* 가재도 죽었슴다 –; 우왕 굳!
* 거북이가 머리를 내어놓지 않아서 죽었슴다?
* 방송을 본 여친님께 죽었슴다 —
* 아직 안 죽었슴다! 기다리십쇼!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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