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우냐?” SBS 에서 예비 사위인 현수(정경호)에게 정인(이민정)과의 속도위반을 문제 삼으며 슬쩍 농을 걸던 정길(강석우)은 현수의 눈물에 당황하며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며 급히 태도를 바꿨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좁은 어깨를 더욱 움츠리며 다크서클이 드러난 눈가에 눈물을 글썽글썽 맺는 정경호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급히 달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는 모습도 화보인 차가운 도시 남자의 한 방울 눈물과는 거리가 먼, 그저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안쓰러운 글썽거림이다.
결핍의 순간을 포착하다 사실 정경호는 동년배의 연기자들 중 유별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다. 물론 상당히 고운 선을 얼굴에 그려 넣은 미남이지만 그렇다고 모델 같은 신체비율과 조각 같은 얼굴의 소유자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독특하게도 스타의 빛나는 아우라 대신 어떤 결핍의 순간을 자신의 표정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자신만이 잘할 수 있는 연기를 개척해가고 있다. 그의 얼굴과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던 KBS 의 최윤이 매력적이었던 건 한국을 대표하는 톱스타라서가 아니라 톱스타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약자일수밖에 없는 약점을 드러내서였다. 다시 말해 그가 자신의 캐릭터 안에 담아내는 결핍은 단순히 스테레오타입의 유약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평면적일 수 있는 인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일종의 음각 같은 것이다. 역시 인기 가수인 정훈 역을 맡았던 영화 에서 인기가 있을 때의 자신만만함, 혹은 소속사에 버림 받고 하반신 마비까지 오자 주변 사람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모습은 사실 전형적이었다. 하지만 정훈이 샤워실에 나체 상태로 쓰러져 치욕과 다급함이 섞인 목소리로 수정(윤진서)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정훈의 캐릭터도, 정경호의 연기도 예측 가능한 지점 너머의 매력을 획득한다. 특히 넓고 듬직하기보다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두려움과 억울함에 조금씩 떨리는 그 흰 등은 정경호만의 육체적 특징이 작품 속 캐릭터를 얼마나 잘 형상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훤칠하지만 상당히 마른 그의 몸매와 얼굴은 어딘가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종종 연기력과는 별개로 정경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가령 폭력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친구를 위해 무의미한 폭력에 빠져드는 상호의 불안한 얼굴과 함께 영화 은 폭력의 허망함이라는 주제의식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초등학생 패거리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고, 여고생 깡패의 발길질에 나동그라지는 영화 속 종범은 코믹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그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약함이 잠시 좋아할 뻔했던 상은(강혜정)에게 꺼지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잔인함에 두려워하는 종범의 표정으로 드러날 때, 는 정신 지체 여성과 일반 남성의 수혜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닌 하나씩의 결핍을 가진 남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해피엔딩의 시발점이 되는 정경호의 성장 하지만 종범을 비롯해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정말 작품 안에서 매력적일 수 있었던 건, 그 결핍이 오히려 성장을 위한 동력이 되면서 작품 전체에 해피엔딩의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즉 하반신 마비에서 벗어나 수정의 사랑에 감사하게 된 정훈,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어머니(이혜영)와 무혁(소지섭)의 화해를 돕는 최윤, 질투와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수현(이준기)을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MBC 의 민기처럼.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쁨보다는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의 결승전 패배가 작품으로서는 더 재밌지 않느냐”는 정경호의 취향은 그래서 흥미롭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좌절한다는 플롯은 분명 비극의 구조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희망을 제시할 때, 느끼한 성공담보다 훨씬 감동적인 결말이 만들어질 수 있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멍구 커플’로 인기를 모은 의 현수를 통해 정경호의 인지도가 부쩍 올라간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능력 있는 자동차 개발자지만 한 여자만 바라보느라 대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미팅 한 번 못해 본 숙맥, 책임감 있는 대가족의 장손이지만 간암에 걸린 할아버지를 위해 간이식을 준비하는 애인 앞에선 눈물 흘리는 게 전부인 이 캐릭터는 결코 최윤이나 민기처럼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훨씬 인간적으로 공감 가는 모습으로 홈드라마 안에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전부터 정경호가 만들어온 양면적 이미지에 명도를 조금 높이고 그 사이에 여러 디테일을 채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해사함 안에 결핍을 담아내는 자신의 캐릭터를 좀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소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의 복귀작 KBS ‘위대한 계춘빈’과 그가 연기할 왕기남은 앞으로 그의 연기 세계가 얼마나 원숙해졌는지 짐작할 하나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마음을 미술로서 치유하는 미술치료사이지만 정작 스스로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환자인 왕기남은 과거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많이 닮았다. 과연 그는 스스로에게 덧씌워지고 확장되고 디테일해진 그 이미지를 통해 이 짧은 단막극 안에서 왕기남에게 어떤 생생함을 부여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그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배우가 하나 더 늘어난 건 확실한 것 같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결핍의 순간을 포착하다 사실 정경호는 동년배의 연기자들 중 유별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다. 물론 상당히 고운 선을 얼굴에 그려 넣은 미남이지만 그렇다고 모델 같은 신체비율과 조각 같은 얼굴의 소유자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독특하게도 스타의 빛나는 아우라 대신 어떤 결핍의 순간을 자신의 표정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자신만이 잘할 수 있는 연기를 개척해가고 있다. 그의 얼굴과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던 KBS 의 최윤이 매력적이었던 건 한국을 대표하는 톱스타라서가 아니라 톱스타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약자일수밖에 없는 약점을 드러내서였다. 다시 말해 그가 자신의 캐릭터 안에 담아내는 결핍은 단순히 스테레오타입의 유약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평면적일 수 있는 인물에 입체감을 부여하는 일종의 음각 같은 것이다. 역시 인기 가수인 정훈 역을 맡았던 영화 에서 인기가 있을 때의 자신만만함, 혹은 소속사에 버림 받고 하반신 마비까지 오자 주변 사람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모습은 사실 전형적이었다. 하지만 정훈이 샤워실에 나체 상태로 쓰러져 치욕과 다급함이 섞인 목소리로 수정(윤진서)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정훈의 캐릭터도, 정경호의 연기도 예측 가능한 지점 너머의 매력을 획득한다. 특히 넓고 듬직하기보다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두려움과 억울함에 조금씩 떨리는 그 흰 등은 정경호만의 육체적 특징이 작품 속 캐릭터를 얼마나 잘 형상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훤칠하지만 상당히 마른 그의 몸매와 얼굴은 어딘가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종종 연기력과는 별개로 정경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가령 폭력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친구를 위해 무의미한 폭력에 빠져드는 상호의 불안한 얼굴과 함께 영화 은 폭력의 허망함이라는 주제의식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초등학생 패거리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고, 여고생 깡패의 발길질에 나동그라지는 영화 속 종범은 코믹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그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유약함이 잠시 좋아할 뻔했던 상은(강혜정)에게 꺼지라고 말하며 스스로의 잔인함에 두려워하는 종범의 표정으로 드러날 때, 는 정신 지체 여성과 일반 남성의 수혜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닌 하나씩의 결핍을 가진 남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해피엔딩의 시발점이 되는 정경호의 성장 하지만 종범을 비롯해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정말 작품 안에서 매력적일 수 있었던 건, 그 결핍이 오히려 성장을 위한 동력이 되면서 작품 전체에 해피엔딩의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즉 하반신 마비에서 벗어나 수정의 사랑에 감사하게 된 정훈,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어머니(이혜영)와 무혁(소지섭)의 화해를 돕는 최윤, 질투와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수현(이준기)을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MBC 의 민기처럼.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쁨보다는 올림픽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의 결승전 패배가 작품으로서는 더 재밌지 않느냐”는 정경호의 취향은 그래서 흥미롭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좌절한다는 플롯은 분명 비극의 구조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희망을 제시할 때, 느끼한 성공담보다 훨씬 감동적인 결말이 만들어질 수 있다. 많은 시청자들에게 ‘멍구 커플’로 인기를 모은 의 현수를 통해 정경호의 인지도가 부쩍 올라간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능력 있는 자동차 개발자지만 한 여자만 바라보느라 대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미팅 한 번 못해 본 숙맥, 책임감 있는 대가족의 장손이지만 간암에 걸린 할아버지를 위해 간이식을 준비하는 애인 앞에선 눈물 흘리는 게 전부인 이 캐릭터는 결코 최윤이나 민기처럼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훨씬 인간적으로 공감 가는 모습으로 홈드라마 안에 녹아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전부터 정경호가 만들어온 양면적 이미지에 명도를 조금 높이고 그 사이에 여러 디테일을 채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해사함 안에 결핍을 담아내는 자신의 캐릭터를 좀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소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의 복귀작 KBS ‘위대한 계춘빈’과 그가 연기할 왕기남은 앞으로 그의 연기 세계가 얼마나 원숙해졌는지 짐작할 하나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마음을 미술로서 치유하는 미술치료사이지만 정작 스스로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환자인 왕기남은 과거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많이 닮았다. 과연 그는 스스로에게 덧씌워지고 확장되고 디테일해진 그 이미지를 통해 이 짧은 단막극 안에서 왕기남에게 어떤 생생함을 부여할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그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배우가 하나 더 늘어난 건 확실한 것 같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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