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유연석. 본명은 안연석. 그냥 발음하면 ‘아년석’으로 들려서 소속사에서 다른 성을 붙여보자고 했다. 어머니 성이 조씨라 조연석으로도 해봤는데 앞으로 조연만 맡을 이름 같았다. 그렇다고 주연석으로 하는 것도 이상하고. (웃음) 그래서 고민하다가 유연석으로 바꿨는데 어감이 좋은 거 같다.
태어난 날은 1984년 4월 11일.
아버지께서 측량학 교수시다. 원래 서울에 살다가 6살 때 아버지께서 지방 국립대에 부임하시면서 경상남도 진주로 이사 갔다. 학창시절을 거의 그곳에서 보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기를 배우겠다는 생각에, 재수하는 형을 따라 서울에 올라가 둘이 세종대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요즘도 둘이 같이 삼성동 근처에서 같이 지낸다. 가끔 어머니께서 밥을 하러 오시고.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 표준어를 다 구사할 수 있다. 어릴 때 집에서 부모님은 표준말을 쓰셨지만 나는 밖에서 친구들이랑 노니까 사투리를 썼다. 그러다 서울 올라오면서 고쳤는데 지금도 진주에 내려가서 친구를 만나면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배우로서 사투리와 표준어를 쓸 수 있다는 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 마른 체형이었기 때문에 왜소해 보이고 싶지 않아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살이 안 찌는 게 상당히 콤플렉스였는데 요즘은 군살 없이 잔근육이 발달한 몸매가 인기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에는 고등학교 때 연기 배우던 학원에서 알게 된 누나 덕에 출연했다. 그 당시 나보고 유지태 닮았다고 놀리던 누나인데, 나중에 의상 팀에 들어간 거다. 그래서 유지태 선배 아역 오디션이 있을 때 내게 연락했고 그 덕에 출연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프로필을 돌리거나 그런 적은 없다.
MBC 촬영 초반에는 헐떡이며 뛰는 장면을 위해 슛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글리세린을 발라 땀낸 것 같은 효과도 내고 미리 뛰기도 했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많이 뛰어야 해서 저절로 땀으로 범벅이 되고 숨을 헐떡였다.
마라톤은 최소한의 활동량으로 오래 달려야 한다. 단거리 때처럼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팔을 휘젓는 자세가 아니라 상체를 곧게 세우고 거의 다리만 바퀴처럼 굴러간다는 느낌으로 달려야 한다. 처음 배웠을 땐 굉장히 어색했지만 촬영할수록 그 자세가 편하다는 걸 알겠더라.
경주 날씨가 참 신기하다. 이미 서울에서 반팔 입던 시기라 마음 놓고 반팔 다수와 긴팔 티셔츠 하나만 가져갔는데 동해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 때문에 결국 파카를 공수해야 했다. 특히 밤 장면 찍을 땐 겨울만큼 추웠다. 그러다 6월 초가 되니 갑자기 날씨가 확 더워졌다. 마침 마라톤 장면을 찍어야 할 때였는데. (웃음)
허지만의 속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데 방영되지 않아 아쉬운 장면이 있다. 드라마 후반을 보면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 슬럼프를 겪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후에 사실은 지만이 발목 부상 때문에 힘들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보고 아버지가 왜 그렇게 방치하느냐고 해서 나는 이런 거 다 참고 잘 해왔으니 상관 말라고 하는데, 그게 방영됐으면 지만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답답함이 더 잘 드러날 수 있었겠지.
세종대학교 후문 근처 마포 갈비와 닭발 가게에서 자주 술을 마셨다. 영화예술학과가 연극을 하는 무방관이 그쪽에 있어서 밤늦게까지 연극 연습하고 무대 작업하고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게 참 좋았다. 하지만 술안주가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화양리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나물집을 추천한다.
군대에서 영화를 찍은 경험이 있다. 병장 때였는데 부대별로 사고 예방 창작물을 만들어야 했다. 마침 후임 중에 동국대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한 친구가 있어 둘이 같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간부들을 졸랐다. 장비 같은 건 우리 학교에서 빌려 오겠다고. 결국 승낙을 받아 6㎜ 디지털 카메라로 자살 예방 홍보물을 만들었는데 그게 부대에서 상을 타서 3박 4일로 휴가도 다녀왔다.
MBC 에서 아버지로 나오신 김갑수 선생님은 정말 자상하시다. 그 정도 연배와 경력이 있는 선생님이면 촬영하다가 감독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도 가끔 있다. 특히 같은 경우에는 공포물이라 밤 신이 많고 그래서 밤샘촬영이 많았다. 촬영 팀이 정확하게 자는 시간을 주지 않고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를 그냥 디졸브해서 촬영을 이어갔는데 선생님은 단 한 번도 불만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백종찬 역을 위해 쓴 반무테 안경은 내가 직접 고른 거다. 스타일리스트에게 안경을 준비해달라고 하고서 이것저것 보니 가장 재수 없어 보이는 게 (웃음) 그 안경이었다. 안경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것 같다. MBC 에선 동그란 테의 안경을 썼는데 그러면 좀 똘똘이 스머프 같은 느낌이 나더라.
한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에는 집 근처 코엑스에서 거리 응원을 나가보려 했다. 조별 예선 때는 촬영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고, 얼마 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는 전반까지 한강에 나가서 보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친구들이랑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봤다.
필름 카메라를 좋아한다. 아버지께서 측량을 하셔서 카메라에도 관심이 많으신데 내가 군대 있을 때 라이카 M3라는 모델을 하나 주셨다. 원서 5권과 함께. 군대에서 그걸 가지고 공부하다 보니 찍히는 것만큼이나 찍는 걸 좋아하게 됐다. DSLR도 하나 있지만 그다지 좋은 건 아니라 촬영할 때 모니터용으로 쓴다. 폴라로이드나 필름 카메라만 8대 정도 있다. 폴라로이드가 좋은 건, 스태프들과 함께 찍고 선물로 주면 좋아하더라. 요즘은 다들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올리기만 하고 사진을 가질 일은 없으니까. 또 그렇게 하면 외부 홈피나 이런 곳에 사진이 유출될 일도 없고.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태어난 날은 1984년 4월 11일.
아버지께서 측량학 교수시다. 원래 서울에 살다가 6살 때 아버지께서 지방 국립대에 부임하시면서 경상남도 진주로 이사 갔다. 학창시절을 거의 그곳에서 보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기를 배우겠다는 생각에, 재수하는 형을 따라 서울에 올라가 둘이 세종대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요즘도 둘이 같이 삼성동 근처에서 같이 지낸다. 가끔 어머니께서 밥을 하러 오시고.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 표준어를 다 구사할 수 있다. 어릴 때 집에서 부모님은 표준말을 쓰셨지만 나는 밖에서 친구들이랑 노니까 사투리를 썼다. 그러다 서울 올라오면서 고쳤는데 지금도 진주에 내려가서 친구를 만나면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배우로서 사투리와 표준어를 쓸 수 있다는 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너무 마른 체형이었기 때문에 왜소해 보이고 싶지 않아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사실 살이 안 찌는 게 상당히 콤플렉스였는데 요즘은 군살 없이 잔근육이 발달한 몸매가 인기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에는 고등학교 때 연기 배우던 학원에서 알게 된 누나 덕에 출연했다. 그 당시 나보고 유지태 닮았다고 놀리던 누나인데, 나중에 의상 팀에 들어간 거다. 그래서 유지태 선배 아역 오디션이 있을 때 내게 연락했고 그 덕에 출연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프로필을 돌리거나 그런 적은 없다.
MBC 촬영 초반에는 헐떡이며 뛰는 장면을 위해 슛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글리세린을 발라 땀낸 것 같은 효과도 내고 미리 뛰기도 했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많이 뛰어야 해서 저절로 땀으로 범벅이 되고 숨을 헐떡였다.
마라톤은 최소한의 활동량으로 오래 달려야 한다. 단거리 때처럼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팔을 휘젓는 자세가 아니라 상체를 곧게 세우고 거의 다리만 바퀴처럼 굴러간다는 느낌으로 달려야 한다. 처음 배웠을 땐 굉장히 어색했지만 촬영할수록 그 자세가 편하다는 걸 알겠더라.
경주 날씨가 참 신기하다. 이미 서울에서 반팔 입던 시기라 마음 놓고 반팔 다수와 긴팔 티셔츠 하나만 가져갔는데 동해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 때문에 결국 파카를 공수해야 했다. 특히 밤 장면 찍을 땐 겨울만큼 추웠다. 그러다 6월 초가 되니 갑자기 날씨가 확 더워졌다. 마침 마라톤 장면을 찍어야 할 때였는데. (웃음)
허지만의 속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데 방영되지 않아 아쉬운 장면이 있다. 드라마 후반을 보면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 슬럼프를 겪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후에 사실은 지만이 발목 부상 때문에 힘들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보고 아버지가 왜 그렇게 방치하느냐고 해서 나는 이런 거 다 참고 잘 해왔으니 상관 말라고 하는데, 그게 방영됐으면 지만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답답함이 더 잘 드러날 수 있었겠지.
세종대학교 후문 근처 마포 갈비와 닭발 가게에서 자주 술을 마셨다. 영화예술학과가 연극을 하는 무방관이 그쪽에 있어서 밤늦게까지 연극 연습하고 무대 작업하고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게 참 좋았다. 하지만 술안주가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화양리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나물집을 추천한다.
군대에서 영화를 찍은 경험이 있다. 병장 때였는데 부대별로 사고 예방 창작물을 만들어야 했다. 마침 후임 중에 동국대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한 친구가 있어 둘이 같이 영화를 만들겠다고 간부들을 졸랐다. 장비 같은 건 우리 학교에서 빌려 오겠다고. 결국 승낙을 받아 6㎜ 디지털 카메라로 자살 예방 홍보물을 만들었는데 그게 부대에서 상을 타서 3박 4일로 휴가도 다녀왔다.
MBC 에서 아버지로 나오신 김갑수 선생님은 정말 자상하시다. 그 정도 연배와 경력이 있는 선생님이면 촬영하다가 감독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분들도 가끔 있다. 특히 같은 경우에는 공포물이라 밤 신이 많고 그래서 밤샘촬영이 많았다. 촬영 팀이 정확하게 자는 시간을 주지 않고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를 그냥 디졸브해서 촬영을 이어갔는데 선생님은 단 한 번도 불만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백종찬 역을 위해 쓴 반무테 안경은 내가 직접 고른 거다. 스타일리스트에게 안경을 준비해달라고 하고서 이것저것 보니 가장 재수 없어 보이는 게 (웃음) 그 안경이었다. 안경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것 같다. MBC 에선 동그란 테의 안경을 썼는데 그러면 좀 똘똘이 스머프 같은 느낌이 나더라.
한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에는 집 근처 코엑스에서 거리 응원을 나가보려 했다. 조별 예선 때는 촬영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고, 얼마 전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는 전반까지 한강에 나가서 보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친구들이랑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봤다.
필름 카메라를 좋아한다. 아버지께서 측량을 하셔서 카메라에도 관심이 많으신데 내가 군대 있을 때 라이카 M3라는 모델을 하나 주셨다. 원서 5권과 함께. 군대에서 그걸 가지고 공부하다 보니 찍히는 것만큼이나 찍는 걸 좋아하게 됐다. DSLR도 하나 있지만 그다지 좋은 건 아니라 촬영할 때 모니터용으로 쓴다. 폴라로이드나 필름 카메라만 8대 정도 있다. 폴라로이드가 좋은 건, 스태프들과 함께 찍고 선물로 주면 좋아하더라. 요즘은 다들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올리기만 하고 사진을 가질 일은 없으니까. 또 그렇게 하면 외부 홈피나 이런 곳에 사진이 유출될 일도 없고.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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