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감독의 에 대해 성장영화라고도 혹은 청춘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멜로영화에 가깝다. 그것도 깊은 슬픔을 동반한. 평범한 고등학교 학생이자 단짝이었던 기태(이제훈)와 희준(박정민), 동윤(서준영)의 관계는 지극히 미세한 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고, 모두가 미성숙하기 때문에 서로를 구원할 수 없는 아이들은 점점 더 어긋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한다. 한 발만 더 다가서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던 마음은 미안하다는 말로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와 그보다 더 크게 다친 자존심에 가려 자꾸만 비껴나간다. 고작 1cm 정도밖에 되지 않을 듯한 그 거리가, 세 소년의 비극이다.
괴물 같은 신인의 등장,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제훈은 바로 그 미묘한 1cm의 경계 사이에 있는 배우다.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때문에 박박 깎아놓은 머리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단정한 이목구비는 더없이 말쑥하고 순해 보이는 청년의 모습이지만 표정 없이 거울 속 자신을 응시하는 순간 그에게서는 기태의 싸늘한 광기가 스친다. 방금 전까지 함께 웃던 ‘친구’에서 다음 순간 따귀를 후려갈기며 “씨발, 내가 우습냐?”고 윽박질러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하는, 차가운 다혈질의 기태는 분명 학원물 속 흔한 ‘일진’들과 달리 전혀 새로운 캐릭터였다. “기태가 처음 등장했을 땐 ‘오, 쟤 무섭다.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느낌으로 보이지 않길 바랬어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주먹을 들이대고 위협한다고 무서운 건 아니니까. 그냥 아무렇지 않게 즐겁게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섬뜩함이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만히 있더라도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상대가 무의식적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아이로 만들자는 게 감독님과 이야기 끝에 나온 방향이었어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십대 남자아이, 창백한 얼굴 위에 말 그대로 질풍노도와 같은 내면적 갈등을 드러낸 기태는 의 누구 한 사람 불을 당기면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괴물 같은 신인의 등장’이라는 표현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 청년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 앞에 서는 걸 좋아했고 배우가 되기를 꿈꿨지만 가족의 반대로 공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전공인 생명공학을 공부할수록 지치는 건 자신이었다. “DNA 구조를 배우면서도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인생 자체가 갉아 먹히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스스로에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다시 던져 봤고 학교를 휴학한 뒤 연기를 시작했죠.” 그것이 2004년이었다. 그리고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제훈은 소속이 없는 삶을 살았다. 연극과 뮤지컬, 단편영화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했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했다.
“주위 사람들이 저를 보고 웃으면 좋겠어요” “불안했어요. 그래서 많이 배웠죠.” 반듯하면서도 진중한, 그러나 오랜 수련의 시간만큼 자신을 자연스레 내보이는 방법을 터득한 이제훈은 밝은 얼굴로 회상한다. “처음엔 1, 2년 안에 승부 안 나면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기라는 건 거듭할수록 뭔가 쌓이고, 그러면서도 더 어려워지는 분야거든요. 제가 정말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분명 남들과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정말로 기회가 하나씩 찾아왔다. 남자친구에게 지극히 헌신적이고 사랑스런 게이 석을 연기한 영화 에서 기태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전쟁 당시 어린 나이에 중대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갈등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이 기대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에 쏟아지는 찬사에도, 자신을 비추기 시작한 스포트라이트에도 이 ‘화제의 신인’의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주위 사람들이 저를 보고 웃으면 좋겠어요. 나로 인해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배우들이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신뢰와 사랑을 동시에 받아야 할 테니까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살면 돈과 명예를 떠나 스스로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먼 길을 돌아 배우라는 평생의 꿈을 이룬 그에게 그 밖의 바람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미 이 평범해 보이는 청년은 한국 영화계 다음 세대의 희망으로 손꼽히고 있으니 말이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괴물 같은 신인의 등장,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제훈은 바로 그 미묘한 1cm의 경계 사이에 있는 배우다.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때문에 박박 깎아놓은 머리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단정한 이목구비는 더없이 말쑥하고 순해 보이는 청년의 모습이지만 표정 없이 거울 속 자신을 응시하는 순간 그에게서는 기태의 싸늘한 광기가 스친다. 방금 전까지 함께 웃던 ‘친구’에서 다음 순간 따귀를 후려갈기며 “씨발, 내가 우습냐?”고 윽박질러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하는, 차가운 다혈질의 기태는 분명 학원물 속 흔한 ‘일진’들과 달리 전혀 새로운 캐릭터였다. “기태가 처음 등장했을 땐 ‘오, 쟤 무섭다.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느낌으로 보이지 않길 바랬어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주먹을 들이대고 위협한다고 무서운 건 아니니까. 그냥 아무렇지 않게 즐겁게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섬뜩함이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만히 있더라도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상대가 무의식적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아이로 만들자는 게 감독님과 이야기 끝에 나온 방향이었어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십대 남자아이, 창백한 얼굴 위에 말 그대로 질풍노도와 같은 내면적 갈등을 드러낸 기태는 의 누구 한 사람 불을 당기면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괴물 같은 신인의 등장’이라는 표현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 청년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 앞에 서는 걸 좋아했고 배우가 되기를 꿈꿨지만 가족의 반대로 공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전공인 생명공학을 공부할수록 지치는 건 자신이었다. “DNA 구조를 배우면서도 이게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인생 자체가 갉아 먹히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스스로에게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다시 던져 봤고 학교를 휴학한 뒤 연기를 시작했죠.” 그것이 2004년이었다. 그리고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제훈은 소속이 없는 삶을 살았다. 연극과 뮤지컬, 단편영화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했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했다.
“주위 사람들이 저를 보고 웃으면 좋겠어요” “불안했어요. 그래서 많이 배웠죠.” 반듯하면서도 진중한, 그러나 오랜 수련의 시간만큼 자신을 자연스레 내보이는 방법을 터득한 이제훈은 밝은 얼굴로 회상한다. “처음엔 1, 2년 안에 승부 안 나면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기라는 건 거듭할수록 뭔가 쌓이고, 그러면서도 더 어려워지는 분야거든요. 제가 정말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분명 남들과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정말로 기회가 하나씩 찾아왔다. 남자친구에게 지극히 헌신적이고 사랑스런 게이 석을 연기한 영화 에서 기태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전쟁 당시 어린 나이에 중대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갈등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이 기대되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에 쏟아지는 찬사에도, 자신을 비추기 시작한 스포트라이트에도 이 ‘화제의 신인’의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주위 사람들이 저를 보고 웃으면 좋겠어요. 나로 인해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배우들이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신뢰와 사랑을 동시에 받아야 할 테니까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살면 돈과 명예를 떠나 스스로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먼 길을 돌아 배우라는 평생의 꿈을 이룬 그에게 그 밖의 바람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미 이 평범해 보이는 청년은 한국 영화계 다음 세대의 희망으로 손꼽히고 있으니 말이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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