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이순재 선생님, 진짜 남우주연상 받으실 것 같다”
강풀 “이순재 선생님, 진짜 남우주연상 받으실 것 같다”
탁월한 이야기꾼인 온다 리쿠는 소설 속 인물의 입을 통해 좋은 이야기의 불가사의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도 소설을 사람이 쓴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거든. 어딘가 소설이 열리는 나무 같은 게 있고, 다들 거기서 따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만화가 강풀이 몇 년 동안 꾸준히 만들어내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볼 때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최근 영화화된 를 비롯해 벌써 네 편의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대중, 그리고 타 매체 창작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동시대 최고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대중적인 스토리텔러임이 분명한 그 창작의 나무는 어디에 그 뿌리를 대고 있을까. 스스로를 가장 대중적인 사람으로 평가하는 강풀 작가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최근에 가 영화화되었다. 원작 느낌이 잘 살아있던데.
강풀 : 아유, 다행이다. (웃음) 이번에 반응이 좋은 편이라 나도 많이 기쁘다. 물론 이전의 영화들도 다 좋았다. 어차피 객관적이지 못한 사람이라 내 원작으로 만드는 영화들이 다 좋아보였는데 이번에는 더 각별했다. 네 번의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그 때마다 내가 영화를 보고 반응하는 지점마다 관객들이 반응하는 걸 보고 많이 기뻤다.

“나는 오히려 클리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풀 “이순재 선생님, 진짜 남우주연상 받으실 것 같다”
강풀 “이순재 선생님, 진짜 남우주연상 받으실 것 같다”
배우들의 힘이 이야기를 잘 살리는 느낌이었다.
강풀 : 이순재 선생님은 이번에 진짜 남우주연상 받으실 거 같다. 배우 분들에게 너무 감사한다. 어떨 땐 선생님들이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니까 가만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서있기만 해도 눈물이 나더라.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연기를 오래 하신 분들이라 확실히 다르구나 싶었다.

그런 건 어떤 면에서 만화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혹 이번 영화에서 만화로는 보여줄 수 없었던 인상적 장면이 있었나.
강풀 : 만석이 할아버지(이순재)가 생일 케이크 놓고 ‘그대를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부분. 걸걸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 무뚝뚝한 정이 있지 않나. 거기서 너무 좋았다. 만화에선 목소리가 안 나오기 때문에 불가능한 부분이었는데 그게 공감각적으로 전달될 때의 쾌감이 컸다. 영화에서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그럼에도 가 재밌는 건 이야기의 재미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과거 연재 후기에서 다른 작품을 연재할 계획이었고, 그 작품들로 재미를 줄 자신이 있었다고 했었다. 이 작가는 재미의 공식을 알고 있는 건가 싶더라.
강풀 : 내 장점이 남들 좋아할만한 것만 좋아한다는 거다. 예술영화, 예를 들어 이름이 ‘~스키’인 감독의 영화를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뭔 말인지 몰라서. 나는 대중의 한 가운데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써놓고 재밌으면 남들도 재밌을 거라 생각하는 거다.

말하자면 본인 스스로 대중의 좋은 표본인 건가.
강풀 : 나에게 특별한 시선이 있고 남들과 달랐다면 대중적인 만화를 못 그렸을 거다. 나는 남들이 좋아할 만한 거, 그해 가장 흥행한 영화를 좋아한다.

상투적인 것, 클리셰의 힘이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단순히 클리셰만 남발된다면 오히려 재미가 없지 않나.
강풀 : 나는 클리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신인작가들 보면 남들과 뭔가 다른 걸 하겠다고 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다. 진부하고 흔해빠진 설정이 괜히 흔한 게 아니다. 재밌으니까 반복되고 클리셰가 되고, 언젠가 진부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그걸 좋아한다. 거기에 내 색만 넣으면 된다고 본다.

바로 그 강풀의 색이라는 게 중요할 거 같다. 스스로는 무엇이라 보나.
강풀 : 사람. 결국 모든 이야기가 사람이 주인공인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내 주인공들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연재를 시작하지 못한다. 얘가 얘를 왜 좋아할까,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이해를 하고나서 글을 쓰고 글이 완성되면 만화를 연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물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 같다. 비록 진부한 설정이어도 얘가 이래서 이렇구나, 하면서 이야기기 진행된다. 그리고 여태 9편의 장편이 나왔는데 결국 다 착한 사람 이야기다. 의 살인마나 의 ‘그 분’을 빼면 전부 착한 인물들이다. 때론 너무 성선설에 기초한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런 만화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세상이 각박한데 만화 주인공까지 우울하지 않고 착한 모습을 보이니 독자들도 좋아하는 것 같고.

그런 착한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게, 현실에 없는 것을 독자에게 충족시켜주고 싶은 건가, 아니면 스스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건가.
강풀 :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게 맞다.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전에 내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보는데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본다.

그럴만한 계기가 있나.
강풀 : 우리 아버님이 목사님이셨는데 기독교 집안이라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우리 집은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그런데 가정환경은 정말 좋았다. 형편이 안 좋은 것과 환경은 별개더라. 부모님께 굉장히 사랑받고 자랐다. 굉장히 나를 믿어주셨다. 그런 게 작용하는 거 같다. 주변 친구에게 쓰디쓴 배신을 당해본 적도 없고. 운이 좋은 건지 좋은 사람만 만났다 하다못해 영화를 하거나 계약을 할 때도, 기본적인 마인드가 망해도 기분 좋게 같이 망하자는 마인드다. 지금까지 그건 흔들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것들이 내 이야기의 토대가 되는 것 같다.

가령 에서 이뿐이 할머니(윤소정)가 약속 장소에 늦었을 때, 일반 트렌디 드라마라면 서로 어긋나고 오해하고 3회 정도 갈 이야기가 평탄하게 풀려나간다. 그런 감정적으로 꼬이는 걸 싫어하나.
강풀 : 그런가보다. 여태 내가 그린 만화에서 오해와 불신은 별로 없었다. 믿음과 사랑만 있었지. (웃음) 지금 보니 그렇군.

“나는 내가 그린 만화를 다 좋아한다”
강풀 “이순재 선생님, 진짜 남우주연상 받으실 것 같다”
강풀 “이순재 선생님, 진짜 남우주연상 받으실 것 같다”
좋은 환경을 통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면,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어떻게 발견했나.
강풀 : 재능을 발견했다기보다는 학교 다닐 때부터 이야기 보는 걸 좋아했다. 장편소설들. 특히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김용 소설에 빠져 살았다. 몇 십 권씩 읽을 정도로. 또 한 동안 나 같은 김성종 선생님 책을 많이 읽었다. 단편은 잘 안 봤다. 그 때 동네 도서관에 가면 일주일에 책을 두 권만 빌려주는데 내가 하도 빨리 보고 갔다 주니까 도서관 사서 아주머니께서 너는 열권씩 빌려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송파도서관, 고덕도서관에서 열권씩 빌려 봤었다.

앞서 인간의 선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럼 김용 소설을 보면서도 협객의 도 같은 걸 좋아한 건가.
강풀 : 내가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결정적 게 때문이다. 여기서 소용녀가 16년 지나서 만나자고 거짓말을 하고 양과와 헤어지지 않나.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몰래 를 읽는데, 16년 뒤에 양과가 절정곡에 나와 기다리는 장면을 읽으며 소름이 끼쳤다. 하루가 지나는 걸 막고 싶어서 해가 남은 방향으로 산을 올라가지 않나. 울부짖으면서. 진짜 스펙터클하다. 절정의 무공을 발휘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천하제일의 무공을 지닌 사람도 사랑 앞에서 어쩔 수 없구나, 싶으며 이야기의 쾌감을 느꼈다. 지금도 그 때 그 모습이 마치 꿈을 꾸듯 보인다. 교과서에 책을 숨긴 채 선생님을 힐끔힐끔 살피며 책을 보던 내 모습이.

특히 양과 캐릭터는 의 주인공 중 가장 입체적이지 않나.
강풀 : 그렇지, 너무 입체적이지. 비열한 면도 있지만 결국 착한 일을 하고 마는. 내가 아는 만화와 영화, 소설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게 양과다.

그런 캐릭터와 이야기의 취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겠다. 다만 왜 꼭 만화라는 장르였는지 궁금하다. 그것도 컷으로 나눠진 만화가 아닌.
강풀 : 대학교 학생회 홍보부에서 대자보로 만화를 그리며 이게 정말 재밌는 작업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무조건 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나는 박스 만화를 그릴 줄 몰랐다. 만화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연출에 대해 잘 몰랐고, 그래서 대자보 만화의 틀을 가져왔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찾은 거였고, 여기에 모니터로 보는 웹툰의 성격에 맞춰 종스크롤 형식의 만화를 만든 거다. 물론 나 이전에도 그 방식을 개발한 사람이 있겠지만.

그래서일까. 프레임으로 연출하는 박스 만화에 비해 오히려 당신 만화를 영화로 담아내기 더 어려워 보일 때가 있다. 스크롤을 내리며 귀신과 눈이 마주치는 듯한 느낌을 준 처럼.
강풀 : 만화가니까 만화로 제일 잘 표현하는 거겠지. 내 원작이 영화화되는 게 이번에 네 번째인데, 여태 흥행이 잘 안 됐던 게 그런 이질감 때문이었던 거 같다. 만화에서 이렇게 표현했는데 영화에선 어떻게 나올까 보면 낯서니까. 매체마다 장단점이 있는 거 같다. 호러 만화를 그려도 만화에서는 소리가 안 나오지 않나. 앞서 말한 의 생일 장면처럼 영화만이 가능한 장면도 있는 거고. 나로선 만화로서 가장 적절한 연출을 찾을 뿐이다. 만화로 표현하기 가장 좋은 이야기들을 썼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은 아예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 같던데.
강풀 : 애니메이션은 한일 합작으로 내년이나 내후년에 한일 동시 개봉 목표인 것 같더라. 영화랑 드라마 판권은 5년이 지나도록 만들지 못해서 내가 다시 회수했다. 다들 의욕적으로 가져가셨는데 못 만드시더라. (웃음)

그럼에도 다들 군침을 흘릴만한 게, 장르물의 쾌감이 가장 큰 작품이니까.
강풀 : 나도 그 시리즈를 그릴 때 가장 신난다. 가장 공상을 많이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차피 시간능력이라는 건 다 뻥이지 않나. 가장 많이 뻥을 칠 수 있는 작품이라 그릴 때 제일 신난다. (웃음)

자신이 신나고 재밌으니까 우리도 재밌는 거고?
강풀 : 진짜 팔불출인데 나는 내가 그린 만화를 다 좋아한다. (웃음) 재미없을 것 같으면 아예 시작을 안 하니까. 그려놓고 후회하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게 왜 재밌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표현할 말이 없다. 때문에 내가 계속 연재를 할 수 있는 건, 내가 재밌게 만드는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독자 분들이 좋아해줘서 계속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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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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