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최지혜! 곰곰이 생각하고 다시 돌아와. 나, 진국이다~” KBS (이하 )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의 김기열은 자칭 ‘괜찮은 남자’, 타칭 ‘쪼잔한 남자’다. 세 남자가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온갖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이 코너에서 김기열은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 디테일한 말 개그와 표정으로 소위 ‘구(舊)남친’의 찌질함을 보여주는 비장의 무기다. 에 입성한지 어느덧 6년, 선배 변기수의 리액션을 주로 담당했던 ‘오빠’와 ‘까다로운 변선생’부터 후배 박영진, 김영희를 돋보이게 해 준 ‘두분토론’까지 그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코너를 뒷받침해오다 드디어 무대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온 그를 만났다. 다음의 인터뷰는 까칠하고 소심하지만 내 여자에게만큼은 따뜻한 남자 김기열에 관한 모든 것이다.

도착하기 전 “옷에 커피를 쏟아서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커피를 쏟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던가.
김기열: 와, 큰일났다.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갔는데, 입을 옷도 없고 사러 갈 시간도 없고. 인터뷰 한다고 며칠 전에 백화점 가서 새로 산 후드티였는데, 커피 때문에… (가방에서 안경과 머플러를 주섬주섬 꺼내며) 알록달록하고 깜찍한 티셔츠 색깔에 맞춰서 안경이랑 머플러도 준비해왔는데 결국 하나도 못 썼다.

“실제로 데이트 비용은 내가 거의 다 낸다”
김기열 “요즘 제일 웃긴 개그맨은 ‘이별대세’의 나”
김기열 “요즘 제일 웃긴 개그맨은 ‘이별대세’의 나”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괜찮다. (웃음) 요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코너가 상승세인데, 현장 반응은 어떤가.
김기열: 이제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송병철과 허경환에 비해 밋밋하게 나오니까 환호가 적었는데, 요즘에는 유행어도 나오면서 반응이 괜찮아졌다.

“나, 진국이다~”, “치, 내가 널 진짜 사랑하긴 했나 보다” 같은 대사가 유행어로 뜰 줄 알았나.
김기열: 가장 뜰 거라고 예상했던 유행어는 ‘요즘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딨냐’였다. 실제로 내가 연애할 때 제일 많이 썼던 말이다. 나도 연예인인데 데리러 가고 데려다 주고, 진짜 이런 남자가 어딨냐, 요즘 세상에 이런 남자 없다면서. (웃음)

본인은 연애할 때 어떤 남자친구인가.
김기열: 진짜 잘해준다. 전화도 자주 하고 선물도 사 주고, 매일 만나려고 노력하고. 데이트 비용도 거의 9:1 아니면 10:0이다.

와, 부담스럽지 않나.
김기열: 당연히 버겁지. 그런데 내 성격이 ‘두분토론’의 남하당 박영진 대표와 비슷하다. 남자는 하늘이다! (웃음) 여자 친구가 나한테 선물을 사줄 순 있겠지만, 평소 데이트 비용은 거의 내가 부담한다.

처음 이 코너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김기열: 처음에는 콩트 형식이었다. 이민정이라는 여자가 세 남자와 동시에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세 남자가 여자 집 앞에 와서 막 따지다가 서로 싸우는 콘셉트였다. 그런데 감독님이 한 명씩 나와서 말하는 게 재밌고 오래갈 것 같다고 하셔서 스탠딩 형식으로 바꿨다.

연애에 관한 코너이다 보니,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본인들의 경험담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
김기열: 첫 회는 전적으로 내 경험이었다. 내가 영화표를 사고 여자 친구가 팝콘과 콜라를 사면 내가 또 밥을 사야 된다. 그런데 팝콘이랑 콜라를 먹으면 분명히 배가 부를 텐데 일부러 나 돈 쓰게 하려고 밥 사달라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난 커피를 안 좋아하니까 여자 친구가 커피를 살 필요도 없고. 결국 내 손해잖아.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해도 다들 이런 생각 할 거다. 허경환도 의외로 쪼잔하다. “남자가 8시 넘어서 만나자는 건, 저녁을 먹고 오라는 뜻이야”라는 대사도 허경환의 아이디어였다. 와, 진짜 걔가 그럴 줄은 몰랐다.

혹시 최지혜도 전 여자 친구 이름인가? (웃음)
김기열: 모르는 사람이다. 이름이 흔해야 사람들이 ‘와, 내 이름 부른다’고 좋아할 것 같아서 최대한 평범하게 지었다. 전국의 최지혜들이 고맙다고 하더라. (웃음)

같은 남자가 보기에 세 남자의 캐릭터는 어떤가.
김기열: 진짜 밥맛없다. 그 중에서도 내 캐릭터가 진짜 최악이다. 쪼잔한 것도 모자라 생색까지 내고. 내 캐릭터의 초점은 돈이 아니라 생색이다.

“사소한 호흡과 리액션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김기열 “요즘 제일 웃긴 개그맨은 ‘이별대세’의 나”
김기열 “요즘 제일 웃긴 개그맨은 ‘이별대세’의 나”
이번 코너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메인 캐릭터인데, 그 전까지는 거의 모든 코너에서 소위 ‘깔아주는’ 역할이었다.
김기열: (변)기수 형이 ‘오빠’에 이어 ‘까다로운 변선생’까지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솔직히 싫었다. 앞에서 웃기고 싶은 마음에 그 제안을 거절하고 대학로에서 내가 웃기는 코너를 올리고 있었는데, 박준형 선배님하고 기수 형이 ‘딱 한번만 하자, 그냥 앉아 있다가 받아치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막상 해보니까 재밌더라. 기수 형이랑 멘트를 주고받다 보니까 새로운 코드도 나오고.

그러면서 개그의 호흡이나 리액션에 대해 많이 배웠겠다.
김기열: 신인 개그맨들은 자기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에 와보면 사소한 호흡이나 리액션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기수 형의 애드리브 실력은 거의 인간 문화재급이다. ‘까다로운 변선생’에서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기수 형이 그걸 애드리브로 받아쳐서 ‘나가!’라고 외치면 되니까 전혀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코너를 뒷받침하는 역할이 주어졌을 때 많이 속상하지 않았나.
김기열: 코너가 잘 되는 게 최우선이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내가 뒤로 물러나면 코너들이 잘 된다. ‘두분토론’도 김대성이 빠지고 내 대사가 줄어드니까 확 뜨더라. 나는 코너의 전체적인 판을 보는 편인데, 한 2~3주 지나고 영진이가 빵빵 터지니까 얘한테 모든 걸 몰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에서 본인 스스로 웃기는 캐릭터를 맡게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김기열: 원래부터 그런 캐릭터를 하고 싶었으니까 너무 재밌다. 사실 이런 종류의 코너들을 검사 맡고 다듬다가 결국 엎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까 ‘혹시 내가 뒤에서 받아주는 역할이 더 잘 맞는 건가’, ‘개그맨 말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 되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코너가 잘 되는 게 중요하다. 이게 잘 돼야 다음 코너에서도 웃기는 캐릭터로 밀고 나갈 수 있다.

그동안 웃기는 것보다 멀쩡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던 이유가 ‘잘 생긴 개그맨’ 이미지 때문은 아니었을까.
김기열: 실제로 잘 생기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자꾸 그렇다고 얘기하니까 진짜 부담스럽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나쁜남자’나 ‘연인’ 코너에서도 착하고 좋은 남자친구로 나왔는데, 진짜 나랑 안 맞았다. 나도 개그맨인데 왜 안 망가지고 싶겠나.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바보 역할을 하기엔 너무 어색하고, 최대한 말로 웃기고 망가지는 캐릭터를 계속 구상하고 있다. 이제 로맨틱하고 멋진 역할은 절대 안 할 거다.

그러면 본인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기열: 사실 난 외모 콤플렉스가 있다. 사람들이 날 만만하게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식당에서 음식 값을 천 원씩 더 받은 적도 많다. 하도 그러다 보니 음식이 나오면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을 다 해놓는다. 중, 고등학교 때는 새 학기가 되면 친구들이 ‘내가 너 이길 것 같다’면서 시비를 많이 걸었다. 그래서 싸움도 진짜 많이 했고, 진 적도 거의 없다. 물론 지금 동료 개그맨들은 이런 얘기 하나도 안 믿는다. (웃음)

“김대희, 김준호 선배처럼 되고 싶다”
김기열 “요즘 제일 웃긴 개그맨은 ‘이별대세’의 나”
김기열 “요즘 제일 웃긴 개그맨은 ‘이별대세’의 나”
지금까지 했던 코너들 중에서 실제 본인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 누구인가.
김기열: ‘소심지존 기열킹’이다. 소심하고 예민하지만 뜻대로 안 풀리면 한 번씩 지르고. 그러고는 또 후회하고 상대방이 화내면 어떡할까 걱정하고.

얼마나 소심하길래?
김기열: 되게 예민하고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편이다. 요즘 최대의 고민은 새벽에 위층에서 쿵쿵 소리가 나는 거다. 젊은 여자가 혼자 사는데, 한 번 얘기하러 올라갔더니 자기는 조용히 책만 읽었다고 하더라. 새벽에 밖에 나가서 불 켜진 집을 확인했는데, 그 집 밖에 없었다. 그러면 분명 그 집에서 나는 소린데, 절대 아니라고 하니까 와, 나도 미치겠다. 성격이 예민하니까 살도 잘 안 찐다.

소심하면서도 치밀한 성격이 본인의 개그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치나.
김기열: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디테일한 개그 소재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휘순이 형 개그를 참 좋아한다. 오늘 밤에 나와, 못 나가, 왜 못 나와, 택배 받아야 돼, 이런 거. (웃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김기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면 상대방 이길 생각만 하고, 영화를 보면 거기에 푹 빠지니까 딴 생각을 안 하게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좀 시원해진다. 아, 로또 한 방이 돼야 여유롭게 살 텐데…

혹시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뭘 하고 싶나.
김기열: 당첨금을 찾기 전에 우선 한 달 동안 집에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미리 통장을 몇 개 만들어놓을 거다. 그리고 농협에 가서 통장에 돈을 나눠 놓고 빈손으로 멋있게 나오는 거지. 돈을 쓸 때도 부모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비밀로 하고 슬금슬금 쓸 생각이다. 주변에서 ‘얘가 왜 갑자기 차를 바꾸지?’, ‘갑자기 왜 명품 옷을 사 입을까?’라고 의심해도 ‘아, 그냥 한 번 질러봤어’라고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도 혹시 들킬 수 있으니까 로또도 계속 살 거다. 흐흐, 얼마나 재밌을까?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1등이 많이 안 나오는 회차에 당첨되고 싶다. 콕 집어 얘기하자면, 5명 이하일 때?

에 입성한 지 6년이 지났다. 이제는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은 위치인데, 본인은 어떤 선배인가.
김기열: 객관적으로 코너를 평가하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 선배다. 후배나 동료들이 ‘이 코너 재밌을까’라고 물어보면 재미없어도 ‘잘 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직설적으로 얘기한다. 그거 진짜 재미없어, 하지 마!

반대로, 본받고 싶은 선배는 누구인가.
김기열: 김대희, 김준호 선배님. 나는 개그맨 몇 년 해보고 안 되니까 접을까 말까 생각했는데, 이 분들은 10년 넘게 에서 활동하시면서 후배들과 잘 어울리신다. 그 꾸준함과 리더십을 배우고 싶다.

혹시 유상무, 유세윤, 장동민의 ‘옹달샘 트리오’처럼 당신도 내 패밀리가 있나.
김기열: ‘우리 넷이 모이면 두려움이 없다’는 뜻의 ‘우네뚜’라고 있다. (웃음) 멤버는 나, 박영진, 김대성, 정태호다. 작년 여름에 결성했는데 초대 회장은 영진이고, 2대 회장은 태호 형이다. 이번 선거에서 태호 형은 매달 10만원 씩 기부하고 나는 개그 아이디어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태호 형이 당선된 걸 보면, 아이디어보다 돈이 더 좋은가 보다. (웃음) 미신일 수도 있지만 회장이 되면 다들 잘 나가는 것 같다. 작년 여름에 영진이가 회장 되고 나서 ‘두분토론’이 확 떴고, 태호 형도 지금 대박 코너를 하나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제일 웃긴 개그맨은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의 나인 것 같다. (웃음)

코미디 말고 다른 영역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김기열: 시트콤에서 쪼잔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중학교 때 MBC 을 봤는데, 진짜 최고의 시트콤이었다. 특히, 신동엽 선배님을 보고 많이 흉내냈다.

‘두분토론’을 보면 진행도 잘 할 것 같은데.
김기열:예전에 MC나 DJ를 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기회가 와야 할 수 있는 거지. 아마 안 될 것 같다, 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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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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