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수트를 국가를 위해 내놓으라고? 내가 아이언맨이고 수트는 내 몸인데 국가를 위해 매춘을 하라는 건가?” 영화 에서 아이언맨 혹은 아이언맨 수트의 주인인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국회청문회에서 일갈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 그건 억지다. 만약 헐크에게, 혹은 판타스틱 4에게 같은 요구를 했다면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이 어울릴지 모른다. 남과 다른 슈퍼히어로로서의 능력은 그들의 진짜 몸에 속한 것이니까. 하지만 아이언맨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토니 스타크가 꼭 필요하진 않다. 그의 수트만 있다면 공군 중령 제임스 로드(돈 치들)도, 연약한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우)도 아이언맨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광하고 선망하는 히어로로서의 아이언맨은 과연 수트인가, 아니면 수트를 입은 토니 스타크인가. 이 모호한 양가적 감정은, 하지만 아이언맨이라는 히어로만의 매력이다.

그 남자들의 장난감 수집 욕구, 폭발하다
아이언맨│히어로 수트를 입은 셀러브리티 라이프
아이언맨│히어로 수트를 입은 셀러브리티 라이프
영화 이 철들지 않는 남성의 장난감 수집 욕구를 자극하며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건 새삼스러운 사실일 것이다. 비행능력에 최첨단 무기를 달고선 내가 직접 입고 움직일 수 있는 티타늄 합금 동체라니. 영화 의 실사화한 변신 로봇이 어릴 적 가슴 뛰던 시절로 회귀하게 만들어주는 장난감이라면, 아이언맨 수트는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과 아이폰, 아우디 R8처럼 나이 먹어가는 남자들을 위한 현재 진행형의 장난감이다. 말하자면 아이언맨을 선망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팬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아이언맨이 되고 싶다는, 더 정확히는 아이언맨 수트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세상의 모든 욕심나는 장난감에 대해 그러하듯. 하이테크 히어로보다는 하이앤드 히어로에 더 가까운 아이언맨에 대한 애정은 그래서 이율배반적이다. 아이언맨이 좋은 건, 누구나 될 수 있기 때문이지만 또한 누구나 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양립하기 어려운 명제의 절충안은 하나다. 억만장자에 천재 과학자인 토니 스타크에게만 아이언맨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고 그가 누리는 프리미엄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 단,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건 ‘개나 소나’ 아이언맨이 되는 것이다.

에서 토니 스타크가, 그리고 관객이 경험하는 최악의 악몽은 그래서 악당 위플래시(미키 루크)도, 경쟁자 해머(샘 록웰)도 아닌, 토니 스타크의 수트를 빼앗아 만든 ‘프로토타입’ 전투수트 워 머신이다. 프로토타입이라니! 아이언맨과 동일한 능력을 가진 수트를 프레스로 식판 찍어내듯 대량생산하게 될 때, 아이언맨은 그 프리미엄을 잃는다. 이것은 동시에 주인공이 남들과 다르기에 영웅일 수 있는 슈퍼히어로 서사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되는 건, 이 끔찍한 상황을 만든 건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아이언맨임을 밝힌 토니 스타크라는 것이다. 그는 배트맨 같은 어둠의 기사가 되는 대신 양지의 셀러브리티 히어로가 되는 길을 택했다.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서의 삶을 숨기기 위해 방탕한 억만장자의 가면을 쓰지만, 토니 스타크는 마치 아르마니를 입듯 아이언맨 수트를 입은 채 쇼의 주인공이 되고 파티를 열고 여자를 꼬신다. 그 과시욕은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이 대리만족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누리는 프리미엄이 너무나 대단한, 유일무이한 것이기에 당연한 수순처럼 국가는 수트를, 혹은 아이언맨을 공공의 소유로 만들고 싶어 한다. 즉 토니 스타크가 겪는 고난은 비록 영화적으로 과장되었음에도 스타가 된 히어로로서 지금 이 세상에서 겪게 될 법한 실존적 문제다. 이것은 수천에 달하는 영웅과 악당이 있는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최근 아이언맨이 유독 도드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블 유니버스를 현실로 만드는 이름
아이언맨│히어로 수트를 입은 셀러브리티 라이프
아이언맨│히어로 수트를 입은 셀러브리티 라이프
사실 쟁쟁한 영웅들이 즐비한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아이언맨은 인기 캐릭터일지언정, 돌연변이 집단 X-Men과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처럼 대중적인 빅네임은 아니었다. 추억의 아케이드 게임인 에서도 그는 호크 아이 등과 함께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의 어벤저스 동료 중 한 명으로 등장할 뿐이었다. 하지만 초능력이 아닌 하이테크 기술로 무장하고, 영웅으로서의 책임감보다는 인생을 즐기는 아이언맨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블 유니버스는 좀 더 현실 세계와 가까워지게 된다. 흔히 가장 현실적 고민을 가진 영웅으로 언급되는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조차 강박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공적 정의를 위해서만 사용하려 한다는 걸 떠올리면 아이언맨은, 그리고 토니 스타크는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마블 애니메이션의 에릭 롤만 사장은 “아이언맨처럼 수 년 뒤 기술이 발달하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은 개연성, 그리고 모두들(영웅들이) 가상의 도시가 아닌 뉴욕에 사는 존재라는 것들이 보편적 공감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 부분에서 DC 코믹스와 우리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아이언맨이 마블 유니버스의 대표 캐릭터는 아닐지 몰라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마블 유니버스의 보편적 세계관을 지탱하는 존재인 건 사실이다. 때문에 마블 유니버스에서 조금 벗어나 주인공으로서 포커스를 받는 순간, 현실의 관객들은 그 어떤 히어로보다 반갑게 그를 맞이하고 감정이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는 토니 스타크, 그리고 그와 지상 최강의 장난감을 동경하는 철없는 어른들이 좀 더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후속편을 위해 한 번 쯤 거쳐야 할 일종의 성장통 같은 작품이다. 회사 경영도 고민하고 악당 위플래시도 물리치고 국가로부터의 간섭으로부터 수트를 지키기도 해야 한다. 이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해결만 된다면 앞으로 남은 것은 얼굴을 드러낸 셀러브리티 영웅으로서 인생을 마음껏 즐기는 것뿐이다. 사실 정확히 말해 는 그 과정을 해결하기보다는 교묘하게 피한다. 다만 확실한 건, 이 작품은 왜 사람들이 아이언맨에 열광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토니 스타크가 정부와의 갈등을 통해 결국 수트를 자신만의 것으로 공인받는 과정은, 그에게 자신을 투영해 수트를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팬들을 위해 제공하는 알리바이이기도 하다. 하여 처음에 제기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열광하고 선망하는 히어로로서의 아이언맨은 수트이자, 수트를 입은 토니 스타크이며 언젠나 그와 함께 수트를 입는 우리 자신이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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