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은 익숙해지지 않은 배우다.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배우라는 뜻은 아니다. 굳이 단편영화 <사과>, <미스 마플과의 하룻밤> 같은 데뷔 초 작품들을 열거하거나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성공 이후 꾸준히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언급할 필요 없이, 지금 당장만 봐도, 그는 MBC <민들레 가족>에 출연 중이고, 영화 <반가운 살인자> 역시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지금 당장 체력의 배터리가 방전돼도 이상하지 않을 다작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일목요연한 표정으로 압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가 김동욱이라는 배우에게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캐릭터는 <커피프린스 1호점>의 귀여운 바리스타 하림이지만, 남자끼리 운동하고 노는 걸 좋아해 조금은 거친 학창시절을 보내고, 영화 <발레 교습소>에서도 까칠한 느낌의 소년 가장을 연기했던 그에게 “밝고 귀여운 역은 처음”이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출한 이윤정 감독의 눈길을 끌었던 고등학생 동희(<램프의 요정>) 역시 상당히 마초적인 느낌의 인물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그가 만들어온 수많은 표정 중 오히려 하림은 이질적일 정도다. 좀 더 대중적인 작업을 떠올려도 마찬가지다. KBS <파트너>의 변호사 윤준은 로펌 내 막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하림 스타일의 ‘귀염둥이 막내’가 아닌 서열 최하위라는 부담감 안에서 귀찮은 일을 맡아 하는 고단한 막내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의 최대 흥행작인 영화 <국가대표>의 흥철은 분위기 메이커라는 면에서는 하림을 연상케 하지만 깐죽대며 현태(하정우)의 성질을 긁는 모습은 차라리 KBS <못 말리는 결혼>의 삼백에 좀 더 가까워보였다.

그래서 김동욱은 낯익은 동시에 익숙해지지 않은 배우다. 이 이율배반은 결국 그가 다른 삶을 사는 배우로서의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그의 얼굴은 낯익지만, 배우로서 그가 표현해내는 수많은 캐릭터는 언제나 처음 본 느낌이기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새로운 캐릭터들 모두 언제나 기억할만한 첫인상을 남기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김동욱의 새로운 매력을 알려준다는 사실이다. 그가 자신에게 새로운 취향을 가르쳐줬다며 골라준 다음의 곡들이 그러하듯.




1. Queen의 < Jazz >
“예전부터 음악 듣는 건 굉장히 좋아했지만 록음악은 별로 듣지 않았어요. 퀸처럼 클래식한 밴드의 음악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다 이번에 록밴드 노브레인과 함께 영화 <반가운 살인자> 로고송을 부르면서 록음악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정말 신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퀸의 ‘Don`T Stop Me Now’와 ‘I Was Born To Love You’처럼 신나는 곡을 듣고 있어요. 거의 이 두 곡만 무한 반복해서 듣죠.” 록, 아니 20세기 음악의 역사에서 퀸의 음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있을까. 로큰롤과 사이키델릭, 발라드, 심지어 클래식적인 요소까지 아우르는 그들의 음악은 각 앨범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는데, 그 중 < Jazz >는 시원한 질주감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특히 대중에게도 친숙한 넘버인 ‘Don`T Stop Me Now’는 퀸의 디스코그래피 안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달리는’ 곡이다.



2.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 Sogyumo Acacia Band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So Good Bye’ 뮤직 비디오에 출연한 걸 계기로 이들의 음악을 듣게 됐어요. 예전에는 인디 밴드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음악도 정말 좋다는 걸 알았어요.” 정규 앨범과 요조와의 작업, 그리고 영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 등을 통해 이제는 홍대라는 바운더리를 넘어 그 이름을 알리고 있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지만 1집 < Sogyumo Acacia Band >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 잔잔한 울림의 음악이 이토록 멀리 퍼져 나갈 것을 예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자극적인 음악에 질린 사람들에게 러닝 타임을 꽉 채우기보다는 최소한의 표현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민홍의 어쿠스틱 기타와 송은지의 보컬은 담백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이라이트로 달려가기보다는 차분한 멜로디를 반복하는 ‘So Good Bye’는 그런 소규모 아카시아만의 미니멀리즘을 잘 드러내는 곡이다.



3. 이영미의 <이영미 1st Single>
“뮤지컬 쪽에서 정말 유명한 배우인데 앨범을 낸 걸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정말 실력파 보컬인데 인디 신에서 활동하시거든요. 앞서 말한 것처럼 소규모 아카시아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의 음악에도 관심을 두다가 접하게 되고 좋아하게 됐죠. 특히 이영미 씨가 직접 작사 작곡한 ‘안녕’이라는 곡을 즐겨 들어요.” <밴디트>, <헤드윅>, <지킬앤하이드> 등 대형 뮤지컬에서 폭발적 가창력을 보여줬던 이영미가 뮤지컬 넘버가 아닌 자신의 음악에 욕심을 낸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역시 뮤지컬 배우이자 록커인 송용진이 설립한 인디레이블에서 만들어진 그녀의 첫 앨범에는 단 세 곡이 수록됐을 뿐이지만, 단순히 목소리를 예쁘게 내는 것이 아닌, 풍부한 성량을 통한 공간감과 뮤지컬 배우다운 표현력은 세 곡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 든다.



4. Bon Jovi의 < Crush >
“본 조비의 음악도 노브레인과의 작업 덕에 좋아하게 된 경우예요. 전부터 듣던 음악이 아니라 ‘It`s My Life’나 ‘Living On A Prayer’ 정도의 제목만 기억하지만 여러 곡을 듣고 있어요. 옛날 밴드지만 이제야 그 매력을 알게 된 거죠.” 스래시 메탈의 거장 메탈리카의 보컬 제임스 햇필드는 활동 초기, 자신의 기타에 ‘Kill Bon Jovi’라는 문구를 새겨 넣을 정도로 록 스피릿을 중요시하던 밴드들에게 본 조비를 비롯한 소위 LA 메탈 밴드들은 잘생긴 얼굴과 팝적인 멜로디로 무장한 변절자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동시대의 메탈리카와 90년대 초반 등장한 너바나를 위시한 시애틀 그런지의 도전 속에서도 여전히 본 조비는 새로운 음반을 냈고, 여전히 동시대 안에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1983년에 결성했던 본 조비가 2000년 내놓은 음반 < Crush >와 이 앨범의 히트 넘버 ‘It`s My Life’는 그들이 21세기에도 통하는 음악을, 그것도 메탈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5. 서지원의 < Tears >
“학창시절, 하루 종일 오디오를 틀어 놓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어요. 한시라도 음악을 듣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던 시절인데, 그때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故 서지원 씨의 ‘76-70=♡’이에요. 가수이자 작곡가인 박선주 씨와 함께 부른 곡인데 나중에 보니 박선주 씨가 작곡한 곡 중에 좋은 게 많더라고요.” 1995년 11월에서 1996년 1월까지의 약 2개월은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에서 가장 큰 상실감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듀스의 멤버에서 솔로로 컴백한 김성재의 죽음과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들려온 서지원의 부고. 이제 10년을 훌쩍 넘긴 과거의 일이 됐지만 그를 인기 가수로 만든 ‘내 눈물 모아’가 수록된 2집 < Tears >을 들으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박선주와 화음을 이루던 ‘76-70=♡’, 타이틀곡만큼 인기를 끌었던 ‘I Miss You’ 같은 곡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목소리는 아직 십 대의 여린 느낌 그대로다.




“재미있게 만들고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선택한 거죠. 정민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과거에 내가 맡았던 인물들의 이런 면과 비슷하고, 이런 건 배제하고, 이런 건 부각해야지, 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정민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어떻게 잘 표현해야 할지를 고민했을 뿐이죠.” <반가운 살인자>에서 호시탐탐 일을 그만둘 궁리만 하는 불량 형사 정민 역을 맡은 것에 대해 김동욱은 이렇게 말했다. 말하자면 개봉 전부터 ‘깝동욱’이라고 알려진 정민이라는 캐릭터는 흥철이나 하림의 재림이라기보다는 대본에 표현된 그대로의 정민인 셈이다. 아마도 그는, <반가운 살인자>를 통해 다시 한 번 처음 보는 사람인 것 마냥 천연덕스럽게 관객을 향한 첫 인사를, 그리고 첫인상을 남길 것이다. 그 결과물은 성공적일까. 알 수 없지만 이 익숙해지지 않은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만으로 이미 그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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