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시아>가 소개하는 이 봄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그 마지막 주인공은 지난달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한 소히다. 보사노바를 비롯한 브라질 음악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를 잃지 않는 그녀의 음악은 장르적이면서도 편협하지 않은 세계를 그린다. 그리고 음악을 닮은 그녀의 목소리는 다양한 노래를 거침없이 소화하면서도 건강하고 청아한 본래의 색을 지켜낸다. 그래서일까. 소히의 조용하고 차분한 대답들 사이에는 오랜 시간 다듬어졌음에 틀림없는 생각의 큰 뿌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13년의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1집 발표 이후 2집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히 :
보시기에는 4년 정도가 걸렸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을 한건 1년 정도다. 그 전에는 공연하고, 곡도 쓰면서 보냈고.

“원래부터 인기가수가 꿈이었다”



2집 앨범의 프로듀싱을 이한철이 맡았다. 불독맨션의 2집의 라틴적 정서가 떠올라서 시너지를 기대했는데, 역시나 장르적인 색채가 더 강해진 느낌이다.
소히 :
물론 이한철 씨가 라틴 음악도 좋아하시는데, 무엇보다도 나의 색깔을 최대한 살리려고 해 주셨다. 1집 때는 스스로 타협점을 찾으려 한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재즈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둠둠’은 쌈바인데 가요적인 느낌이 나기도 했고. 2집에 있는 ‘거짓말’은 카니발 쌈바곡인데 진짜 브라질 악기들을 동원해서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그런 변화들은 확실히 있다.

이한철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소히 :
대중음악 시상식에 신인상 후보로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이한철 씨는 ‘올해의 노래’상을 받았는데 그날 내가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것을 봤다고 인사를 해 주셨다. 이후에 관심사가 비슷한 것을 알고 주변에서 연결을 해 주신 덕분에 이한철 씨의 레이블로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프로듀서의 색깔이 워낙 뚜렷하다보니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소히 :
송라이팅에 영향을 받은 부분은 있다. 노래들이 비슷비슷해지는 것을 경계해서 다소 곡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한철 씨가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좀 더 쉽게 쓸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해 주셨다. 앨범을 처음 구상할 때도 팬들에게 어필할 것인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질 것인지를 물어 오셨는데 후자를 선택했다. 예전부터 인기가수가 꿈이었으니까. (웃음) 너무 어렵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거다.

‘산책’ 같은 곡이 특히 그렇다. 평범한 발라드곡으로 불러도 괜찮은 곡이지 않나.
소히 :
바로 그 곡이 이한철 씨가 쓴 곡이다! 일반적인 발라드 작법에 보사노바 리듬을 가미해서 재미있는 곡이 나온 것 같다.

97년도에 밴드 베이스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고 안다. 신 안에서 오랫동안 활동 했다.
소히 :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벌써 십년이 넘었다. 라이브 클럽 드럭에 갔다가 밴드 하는 친구들과 가까워지면서 베이스를 시작했다.

드럭이라면, 취향이 굉장히 하드했던가 보다. (웃음)
소히 :
미국에 이민 간 사촌 언니가 잠시 한국에 들어와서 같이 살았던 때였다. 언니가 록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혼자서는 심심하니까 고3이었던 나를 드럭에 데리고 간 거다. (웃음) 그래서 엄마가 사촌언니를 좀 미워하셨지.

록이 취향이 아니었으면 어떤 음악을 좋아했었나?
소히 :
흑인음악에 빠져 있었다. R&B를 너무 좋아해서 노래 연습도 하고, 오디션도 보고 그랬다. 지금도 가끔씩 R&B 곡을 혼자 부르고는 하는데, 시원하게 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한다.

“좀 더 과감하고 솔직한 가사를 써야겠단 생각이 있다”



그렇다면 브라질 음악으로 노선을 변경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소히 :
우연한 계기였다.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베스트 앨범을 반값에 파는 걸 보고, 커버가 예쁘길래 구입을 했었다. (웃음) 이지 리스닝한 보사노바 곡들이었는데, 듣고는 반해서 보사노바 카페에 가입을 했다. 그 카페에서 전체 메일로 밴드 베이스를 구한다는 공지가 왔길래, 오디션을 보고 브라질 밴드를 시작한 거다.

그 후에 밴드를 벗어나서 솔로 싱어송라이터로 또 다시 변모했다.
소히 :
밴드를 할 때도 간간히 노래를 만들고, 내가 작곡한 노래는 직접 부르기도 했다. 그때부터 곡 쓰는 연습을 시작한 덕분에 나중에 본격적으로 곡 작업을 할 때는 많이 힘들지 않더라. 기타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줄 때가 있는데, 재미를 느끼게 하려고 기타 연습을 하면서 직접 노래를 만들어 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들 굉장히 어려워 하더라.

당연한 일이다. 작곡이 쉬울 리가 있나. (웃음)
소히 :
자유롭게 ‘나비야’같은 곡을 만들어도 되는데 말이다. 선뜻 시도하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곡의 포인트와 발음의 악센트가 묘하게 일치되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곡 작업을 하고나서 가사를 붙이는 편인가
소히 :
1집의 ‘앵두’는 곡의 느낌을 살리려고 그냥 가사를 얹은 경우지만, 2집의 곡들은 모두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곡을 만들고, 그러면서 가사가 함께 완성되었다.

가사를 보고 있으면 일기장에서 발췌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사를 위해 관념어로 포장한 것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소히 :
루시드 폴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냉각이라는 단어가 가사로 그렇게 잘 붙을 줄 몰랐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한동안은 가사를 쓸 때 같은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 같아서 고민도 있었는데 시를 쓰는 친구가 책을 많이 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 비욕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좀 더 과감하고 솔직한 가사를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있다. 그래야 새로운 게 나오겠지.

‘그럼 그렇지’같은 경우는 ‘어쩌겠소’ 같이 남성적인 어미를 사용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소히 :
정태춘 씨가 쓸 것 같은? (웃음)

그런 느낌이 있기는 하다. 브라질 음악이라는 지향이 뚜렷한데도 미묘하게 포크적인 정서가 감지된다. 예전에 신해철이 라디오에서 ‘90년대에 나왔으면 대성했을 가수’라고 소개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소히 :
어려서는 포크 음악을 안들었다. 기타 하나에 곡을 만들다보니 포크를 점점 더 듣게 되는 부분은 있다. 그리고, 신해철 씨의 말은 아무래도 내가 멜로디적으로 신해철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러신 것 같다. (웃음) 1, 2집을 굉장히 좋아했고, 나중에 라디오에 출연해서 그런 이야기를 밝혔을 때도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내 이름은 웃음을 부르는 이름”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브라질 음악을 주로 들었겠다.
소히 :
1집 작업을 할 때는 보사노바를 주로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브라질의 팝에 해당되는 MPV를 많이 듣는다. 다양한 장르가 시도되고 있어서 한국 가요와의 접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브라질 음악 차트를 보면 의외로 상위 랭크된 곡들이 대부분 록이다. 보사노바는 현지에서 트로트처럼 오래된 음악으로 여겨지고.

브라질 외에도 제3세계 음악들에 기호가 있나
소히 :
관심은 있는데 많이 듣지는 못한다. 다만, 지역 특색을 살리는 팀들을 좋아한다.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이라는 영국 팀은 멤버들이 아랍 태생이다. 그래서 록을 하면서 아랍 악기들을 사용한다. 그런 시도들이 좋다.

그런 점에서 앨범에서 눈에 띄는 곡이 ‘강강수월래’다.
소히 :
그런 고민들이 반영된 곡이다. 브라질 음악을 하고는 있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지 않나. 브라질의 지역 색을 가져다가 음악을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을 하다가 두 가지를 섞어보려는 욕심이 생기더라, ‘비온 뒤’는 자진모리 장단을 보사노바 기타치듯이 시도한 거고, ‘강강수월래’도 그런 방식으로 작업한 곡이다.

한국적인 브라질음악이라니,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장르다.
소히 :
얼마 전에 스톡홀름에 가서 공연을 하고 온 적이 있다. 스웨덴에서 코리아 필름 페스티벌을 하는 분이 영화제를 위해 공연을 해달라고 초청을 한 거였는데, 유튜브를 통해 알았다고 하시더라. 외국 인디 레이블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서 그리로 연락을 해 왔던데, 출국하기 직전까지도 농담은 아닐까 생각 했었다. (웃음) 그 분이 봤던 그 영상이 바로 `강강수월래`였다. 외국인에게는 확실히 독특했던 것 같다.

현재적인 고민들을 하는 것 같은데, ‘Boa Tarde’의 가사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TV를 비판하는, 가장 현재적인 가사다.
소히 :
TV라기 보다는 광고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3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간호를 하는데, TV에서 계속 보험, 상조 광고가 나오더라. 심하지.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나 싶었다. 그 시각에 광고를 보는 사람은 아프거나, 직장이 없거나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불안한 사람들 아닌가. 그 사람들을 타겟으로 그런 광고를 계속 내보낸다는 게 너무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더라. 그런데 그 곡을 듣고 글 쓰는 친구가 90년대 감수성이라고 하더라. 지금 가요 신에서는 사회 비판하는 가요가 거의 없으니까. 옛날에는 015B나 신해철 같은 뮤지션들이 사회, 환경 얘기를 했지 않나. 아침엔 우유 한 잔, 시티라이프 같은. (웃음)

심각한 이야기로 흘러갔는데, 이름인 sorri는 브라질 어로 웃음이라고 알고 있다.
소히 :
처음 만난 브라질 친구에게 내 이름이 최소희라고 말했더니 알려주더라. 포르투갈어에 그런 단어가 있다고. 원래 웃음은 sorrir인데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과거형인 sorri로 정했다. 원래 내 이름의 한자 뜻도 웃는다는 의미인데 신기하지 않나. 검색하면 원더걸스가 더 많이 나오고, 영어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웃음) 언젠가 한대수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쏘리? 뭐가 그렇게 미안해?”하고 웃으시더라. 어쨌든 웃음을 부르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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