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 의 말미를 장식하는 감동 코드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청자들이 꽤 있더군요. 아마 내내 잘 웃고 즐기다가도 마지막에 이르면 끝내 눈물을 빼고 마는, 그래서 재미있기보다는 감동어린 이야기가 ‘강심장’의 주인이 되는 다소 구태의연한 진행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일 걸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불만을 가졌다 치더라도 지난번 오정해 씨의 강심장 타이틀 획득에는 감히 누가 토를 달지 못 하지 싶어요. ‘무형문화제 제 5호’ 김소희 명창의 마지막 제자인 오정해 씨. 오정해 씨가 그날 전해주신 김소희 선생님의 넓고 깊은 가르침에 저도 대오각성을 하게 되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우선 고맙다는 인사부터 올립니다.
참새가 봉황의 뜻을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 되짚어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순간이 행복의 기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좌우명을 지니게 해준 분이 바로 만정(晩汀) 김소희 선생님이시다”라고 말문을 여실 때만 해도 별 기대감이 없었던 게 사실이에요. 남은 시간을 어림해볼 때 이 그다지 흥미가 안 가는 사제지간의 일화가 이번 주 ‘강심장’이지 싶어 TV를 끄고 그만 잘까 잠시 갈등을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평생을 ‘오정해’라는 이름 석 자 앞에 따라다니는 영화 의 대기록 행진과 나이 어린 소녀에게 쏟아졌던 당시의 찬사들을 언급하실 때도, “선생님은 소리 이전에 사람 만드는 데에 치중하셨다”고 하실 때만 해도 또 늘 봐온 감동스토리이겠거니 하며 심드렁해 했습니다. 심지어 “선생님이 워낙 근검절약이 몸에 배신 분인지라 하다못해 쉰 음식까지도 드셨다. 스승이 그러시니 제자인 나도 어쩔 수 없어 따라 먹었다”라고 하실 적에는 세상이 이미 달라진 판에 웬 지지리 궁상떨던 과거 이야기냐, 아끼려다 탈나 약값만 더 들겠다며 속으로 툴툴거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김소희 선생님께서 상한 음식을 드셨던 건 단순히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몸이 악기인 제자를 위해, 어떠한 최악의 상황이든 극복해낼 수 있도록 단련시키고자 솔선수범을 하신 것이라지요? 아무리 물이 설고 맞지 않는 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탈이 나지 않게, 언제 어디에 가서든 소리를 제대로 잘 낼 수 있게 제자를 미리 훈련 시켜놓으셨던 거였어요. 그리고 선생님의 혹독한 가르침을 고까워하지 않고 잘 따라준 제자는 어떤 극한의 처지에 놓이든 결코 흔들지 않는 몸과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고요. 그런데 이야기를 채 듣기도 전에 ‘궁상’ 운운부터 했으니 얼마나 면목 없는 일인지요. 그래요, 제가 나이만 헛먹었지 이리 어리석습니다. 하기야 참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존경하는 스승이 없었던 이유 덧붙여 고백하자면 저는 ‘나에게는 왜 존경할만한 스승이 없었을까? 왜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은 선생님조차 안 계신 걸까?’ 라는 의문을 평생 품고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오정해 씨의 얘기를 듣다 보니 저에게 존경할만한 스승이 나타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제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리꾼으로서의 바름과 단아함, 그리고 사람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배려, 예절 등을 꼼꼼히 일러주신 선생님도 훌륭하시지만 존경하는 선생님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제자의 뼈를 깎는 노력과 다짐이 있었기에 오정해라는 당대 명창이 탄생할 수 있었을 거예요.
며칠 전 안타깝게도 법정 스님께서 타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자니 스님과 김소희 선생님은 참으로 많이 닮은 분들이시더군요. 일생동안 무소유를 실천하시며 후학들을 위해 소리 소문 없이 장학금을 내놓으신 점하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신 점하며, 거의 흡사한 길을 쭉 걸어오셨더라고요. 어리석은 저는 이제 그 많은 가르침 중에 우선 한 가지만 받아 가슴에 아로새기려 합니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남의 도움을 일체 받지 않으려고 애쓰셨다 들었어요. 성낸다는 뜻의 怒(노)는 마음 心(심)위에 노예 奴(노)자가 얹힌 글자라잖아요. 누군가를 부리려다 보면, 누군가의 도움을 자꾸 얻으려다보면 상대방이 노하기 마련이라는 얘기일 거예요. 저도 두 분처럼 무상보시는 실천 못할지언정 오정해 씨가 한참 수련하셨을 때처럼 내 일신상의 일은 반드시 내 손으로 해결하는 기본 수칙부터 지켜보려고요. 오정해 씨도 선생님의 ‘소리꾼 중에서 교수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대로 교단에 서게 되셨으니 소리 말고도 선생님의 깊고 넓은 가르침을 알리기에 최선을 다해주실 거죠? 어째 오정해 씨가 한 스승 아래의 동문이라도 된 양 가깝게 느껴지는군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참새가 봉황의 뜻을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 되짚어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순간이 행복의 기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좌우명을 지니게 해준 분이 바로 만정(晩汀) 김소희 선생님이시다”라고 말문을 여실 때만 해도 별 기대감이 없었던 게 사실이에요. 남은 시간을 어림해볼 때 이 그다지 흥미가 안 가는 사제지간의 일화가 이번 주 ‘강심장’이지 싶어 TV를 끄고 그만 잘까 잠시 갈등을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평생을 ‘오정해’라는 이름 석 자 앞에 따라다니는 영화 의 대기록 행진과 나이 어린 소녀에게 쏟아졌던 당시의 찬사들을 언급하실 때도, “선생님은 소리 이전에 사람 만드는 데에 치중하셨다”고 하실 때만 해도 또 늘 봐온 감동스토리이겠거니 하며 심드렁해 했습니다. 심지어 “선생님이 워낙 근검절약이 몸에 배신 분인지라 하다못해 쉰 음식까지도 드셨다. 스승이 그러시니 제자인 나도 어쩔 수 없어 따라 먹었다”라고 하실 적에는 세상이 이미 달라진 판에 웬 지지리 궁상떨던 과거 이야기냐, 아끼려다 탈나 약값만 더 들겠다며 속으로 툴툴거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김소희 선생님께서 상한 음식을 드셨던 건 단순히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몸이 악기인 제자를 위해, 어떠한 최악의 상황이든 극복해낼 수 있도록 단련시키고자 솔선수범을 하신 것이라지요? 아무리 물이 설고 맞지 않는 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탈이 나지 않게, 언제 어디에 가서든 소리를 제대로 잘 낼 수 있게 제자를 미리 훈련 시켜놓으셨던 거였어요. 그리고 선생님의 혹독한 가르침을 고까워하지 않고 잘 따라준 제자는 어떤 극한의 처지에 놓이든 결코 흔들지 않는 몸과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고요. 그런데 이야기를 채 듣기도 전에 ‘궁상’ 운운부터 했으니 얼마나 면목 없는 일인지요. 그래요, 제가 나이만 헛먹었지 이리 어리석습니다. 하기야 참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존경하는 스승이 없었던 이유 덧붙여 고백하자면 저는 ‘나에게는 왜 존경할만한 스승이 없었을까? 왜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은 선생님조차 안 계신 걸까?’ 라는 의문을 평생 품고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오정해 씨의 얘기를 듣다 보니 저에게 존경할만한 스승이 나타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제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리꾼으로서의 바름과 단아함, 그리고 사람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배려, 예절 등을 꼼꼼히 일러주신 선생님도 훌륭하시지만 존경하는 선생님의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제자의 뼈를 깎는 노력과 다짐이 있었기에 오정해라는 당대 명창이 탄생할 수 있었을 거예요.
며칠 전 안타깝게도 법정 스님께서 타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자니 스님과 김소희 선생님은 참으로 많이 닮은 분들이시더군요. 일생동안 무소유를 실천하시며 후학들을 위해 소리 소문 없이 장학금을 내놓으신 점하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신 점하며, 거의 흡사한 길을 쭉 걸어오셨더라고요. 어리석은 저는 이제 그 많은 가르침 중에 우선 한 가지만 받아 가슴에 아로새기려 합니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남의 도움을 일체 받지 않으려고 애쓰셨다 들었어요. 성낸다는 뜻의 怒(노)는 마음 心(심)위에 노예 奴(노)자가 얹힌 글자라잖아요. 누군가를 부리려다 보면, 누군가의 도움을 자꾸 얻으려다보면 상대방이 노하기 마련이라는 얘기일 거예요. 저도 두 분처럼 무상보시는 실천 못할지언정 오정해 씨가 한참 수련하셨을 때처럼 내 일신상의 일은 반드시 내 손으로 해결하는 기본 수칙부터 지켜보려고요. 오정해 씨도 선생님의 ‘소리꾼 중에서 교수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대로 교단에 서게 되셨으니 소리 말고도 선생님의 깊고 넓은 가르침을 알리기에 최선을 다해주실 거죠? 어째 오정해 씨가 한 스승 아래의 동문이라도 된 양 가깝게 느껴지는군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