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보는데 ‘10관왕’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10관왕’ 설명이 필요하다고?" />
지난주에 그렇게 협박까지 했는데 이번 주에는 당연히 꽃미남 특집을 준비했겠지?
뭐, 꽃미남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품절남인 유재석, 정형돈…

어, 정말? 뚝사마가 뭘 했는데?
…이 출연하는 의 복싱 특집에 대해서 얘길 하려고 하는데.

그건 심지어 ‘여자’ 복싱 얘기잖아!
괜찮아. 아량이 바다와 같이 넓은 독자들은 이해해줄 거야. 마음씨 착한 너 역시 이해해줄 거라 굳게 믿는다.
<무한도전> 보는데 ‘10관왕’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10관왕’ 설명이 필요하다고?" />
물론 나도 이번 복싱 특집을 감동적으로 보긴 했는데 복싱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으니까 아예 궁금한 거 자체가 없는데? 굳이 따지면 길이 울면서 얘기했던 최요삼 선수가 누군지 정도?
오케이. 사실 최현미 선수가 겪은 어려움을 이야기하려면 故 최요삼 선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 에 나온 것처럼 최요삼 선수는 WBO라는 복싱 단체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그러니까 대륙간 챔피언이었는데 2007년 크리스마스 때 1차 방어전에서 승리한 이후 쓰러진 다음 결국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어. 여기까진 너도 알지? 그런데 최요삼 선수는 이미 1999년에 WBO보다 훨씬 권위 있는 단체인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을 획득했었어.

그거 되게 옛날 아니야? 그리고 그럼 왜 인터콘티넨탈이란 챔피언 방어전이란 걸 치룬 거야?
네 말대로 상당히 오래 전 일이지만 한국 복싱의 전성기였던 7, 80년대만큼 오래 전 일은 아니야. 비록 세계 챔피언에 올랐지만 이미 복싱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기 때문에 과거 홍수환이나 박종팔, 유명우 같은 챔피언들만큼 인기와 지지, 그리고 지원을 받지 못했어. 그리고 기억하겠지만 그 때는 외환위기 때문에 경제도 좋지 않았잖아. 자연스럽게 지금의 최현미 선수처럼 스폰서를 받기 어려워서 방어전을 제대로 치루지 못했어. 그러다 보니 파이트 머니를 받지 못해 기량 유지는커녕 생계를 꾸리는 것 역시 쉽지 않았고 결국 2002년에 도전자에게 6라운드 KO를 당하며 챔피언 타이틀을 잃었지.

2002년이라 해도 그분의 마지막 경기로부터 5년 전인 거잖아.
그렇지, 5년. 그 시간동안 세계 타이틀에 다시 도전하다가 실패했고 복싱을 떠나 술에 젖어 보내기도 했어. 그러다 2007년 한국 프로복싱의 불씨를 조금이라도 살려보겠다고 복서로서 적지 않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링에 복귀한 거야. 그러고선 아까 말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을 획득한 거지. 사실 이 정도의 스토리만 봐도 한국 프로복싱이 얼마나 열악한 상태였는지 잘 알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심지어 방어전에서, 그것도 마지막 12라운드 종료 10초 전에 상대방의 펀치를 맞고 뇌출혈을 일으켰어. KO로 질 수도 있는 경기였지만 그 상황에서 정신력 하나로 다시 일어나서 결국 판정승을 거뒀지. 하지만 승자 이름이 나올 때 그는 뇌출혈 때문에 링 위에 서지 못했어.

그런데 길 말로는 응급처치만 빨랐어도 살 수 있었다던데.
그것 때문에 또 복싱계가 욕을 먹었지. 빠른 조치가 필요한 상항에서 근처 종합병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40분 이상 걸리는 권투위원회 지정병원까지 이송하느라 사태가 악화됐거든. 말하자면 최요삼이라는 복서의 파란만장한 삶과 아쉬운 죽음 자체가 쇠약하고 병든 한국 복싱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지.
<무한도전> 보는데 ‘10관왕’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10관왕’ 설명이 필요하다고?" />
아, 알았다. 그런 문제들이 누적되어서 최현미 선수 역시 세계 챔피언인데도 불구하고 경기를 못 치루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지?
물론 그렇지. 다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최현미 선수가 한 단체의 세계 챔피언이라는 사실 역시 어떤 면에서는 한국 복싱의 문제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에서 최현미 선수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 정말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자막이 나와. WBA 여자 페더급 세계 챔피언 3전 2승(1KO) 1무. 이상한 거 없어? 자, 3전이라는 건 여태 세 번 싸웠다는 거고, 그 중 한 번 무승부는 챔피언 따고 나서 첫 방어전이었으니까 최현미 선수는 결국 2번의 경기 만에 세계 챔피언이 됐다는 거야. 더 정확히 말하면 1승을 거두고 나서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을 치룬 거지. 최요삼 선수 같은 경우에 20전 이상을 치러 세계 챔피언이 되기도 했지만 네가 생각해도 동네 챔피언도 아닌 세계 챔피언 도전권을 획득하기에 1전은 너무 적은 경기 같지 않아?

그렇게 말하니 조금 이상하긴 하네?
우선 오해를 피하고자 말하자면 최현미 선수는 여자 복싱 최강국 중 하나인 북한에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평양에 있는 김철주 사범대학 복싱 양성반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한국에 와서의 아마추어 복싱 전적도 16승 1패의 준수한 성적이고. 다만 문제는 기량이 아니야.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납득이 갈만한 전적을 쌓은 뒤에 타이틀전을 치러야 챔피언벨트의 권위가 생기는 건데 여자 복싱은, 특히 우리나라 여자 복싱은 그렇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워낙 복싱의 인기가 없다보니 대중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계 타이틀전이 필요하고, 그러다보니 선수층이 얇은 여자 복싱에서 조금 잘한다 싶은 선수가 있으면 전적에 상관없이 타이틀 매치를 붙이는 거야. 그런 식이니 세계 챔피언이 과연 세계 최강자인지 확신할 수 없고, 챔피언전의 질도 기대 이하일 때가 생겨.

네 말대로라면 최현미 선수가 챔피언이란 사실도 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준 거네?
바로 그거지. 결국 단기적으로 주목을 끌기 위한 수준 이하의 챔피언전은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복싱에 독이 될 수밖에 없어. 다시 말하지만 최현미 선수의 기량도 인정하고, 이번 이 만드는 감동적인 대결을 일회적 이벤트나 방송용 포장이라고 평가절하하려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방송을 본 시청자의 1%만이라도 복싱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면 박수쳐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해. 단지 그 1%의 사람들에게 나 같은 사람이 약간의 정보라도 주고 꾸준히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나 싶은 거지. 그래야 복싱 저변이 튼튼해지고 최현미 선수를 비롯한 챔피언들의 방어전도 수월해질 거고. 그게 복싱 특집의 궁극적 목적이 아닐까?

아니면?
괜찮아. 아량이 바다와 같이 넓은 독자들은 이해해줄 거야.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