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때 페퍼톤스는 인디계의 아이돌이라 불렸다. 과거형이다. 이제 그들은 인디 레이블 소속도 아니고 아이돌이라고 말하기엔 정규 3집 앨범이란 숫자의 무게감이 만만찮다. 그들이 지난해 12월에 발매한 3집 < Sounds Good! >은 이처럼 인디계의 아이돌일 수 없는 정체성의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앨범이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그들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지금 페퍼톤스가 느끼는 변화와 그에 대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2집 < New Standard > 이후 1년 반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그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처음에 예정됐던 것보다 음반이 많이 늦었다. 녹음도 몇 번이나 새로 했다고도 하던데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나.
신재평 : 2008년 3월에 2집을 내고 그 다음 봄에는 음반을 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라디오의 고정 게스트가 되고, 안테나뮤직으로 회사를 옮기는 등 처음 겪는 일들 때문에 곡 작업만 몰두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곡 작업에 들어간 건 2009년부터였고. 4월 즈음에는 내고 싶었는데 만들다보니 스스로 갸우뚱하게 되는 면이 있어서 신중하게 가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작업이 늦어지고 공연이 잡힌 9월에 내려고 했는데 그 때까지도 못 맞춰서 앨범 없는 공연이 됐다. 그러고서도 시간이 후딱 가서 해를 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박차를 가해 앨범이 나왔다.
이장원 : 해를 넘기는 것보다 연말에 공연이 잡혀서. (웃음)
“이번 앨범은 예쁘고 상큼한 1집에 더 가깝다”

신재평 : 앞으로 음악을 오래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인지도도 필요하고 노선도 잘 정해야 하니까. (유)희열이 형이나 (김)동률이 형 이런 분들이 우리에게 앨범 한 장 한 장 만들 때 생각을 많이 하고 작전을 짜라고 했다. 그 사이에 시행착오도 좀 있었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 방향으로 가도 되는지 확신도 없었고. 사실 앨범을 다 만들어 놓고서도 되게 헷갈린다.
기본적으로 3집은 3집의 색이 있겠지만 굳이 따지면 2집보단 1집에 가까운 느낌이다.
신재평 : 정확하다. 이번에 고민했던 게 1집과 2집의 노선 사이였다. 1집은 예쁘고 상큼한 감성을 보여줬고, 2집은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다하느라 록킹한 ‘New Standard’ 같은 곡도 나왔고. 사실 우리가 아무 간섭 없이 3집을 만들었다면 2집을 확장해서 만들었을 거 같다. 그때가 만들면서 기분이 좋았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흥행이라는 게 중요했고, 대중에게 좀 더 사랑받은 음반은 1집이기 때문에 1집에 좀 더 가까운 방법을 택했다. 또 이번에도 2집처럼 만들면 1집 때의 감성을 앞으로도 놓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결국 목적지를 재설정하는 건데 그러면서 두 멤버 사이의 의견 조율도 쉽진 않았을 거 같다.
이장원 : 많이 싸웠다. 어차피 답이 뭔지는 모르는 상황에서 만날 싸우고 삐지고 미루고 그러다가 앨범이 나왔다. 만약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면 앨범을 내지 못하고 지금도 싸우고 있겠지. (웃음)
어떤 부분이 많이 달랐던 거 같나.
신재평 : 나는 선배들의 충고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이었고, 이 친구는 기존 우리 스타일을 더 유지하자는 쪽이었다. 그러다보니 가사의 단어 하나 가지고도 나는 우리의 새로운 정서를 대표할 단어라고 생각해서 썼는데 장원이는 낯 뜨겁다고 하면서 충돌이 있었다.
이장원 : 별 생각 없이 시작한 밴드고, 우리의 정서가 무엇이냐에 대해 서로 정색하고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3집 즈음 되니까 여러 사람과 일을 같이 하게 되고 그 때 듣게 되는 이야기 중 어떤 걸 받아들이고 어떤 걸 흘리느냐에 있어 서로 좀 달랐던 거 같다. 나는 페퍼톤스를 미치광이 과학자, 혹은 또라이 밴드라고 생각했는데 (웃음) 재평이는 좀 더 예쁜 말을 찾는 거 같고. 내 입장에선 그게 조금 두려워서 고집을 부렸던 거지.
그게 음악적으로 접점을 찾았던 것 같다. 가령 ‘Ping-Pong’ 같은 경우 분명 페퍼톤스 스타일의 사운드를 내지만 과거라면 좀 더 과도하게 썼을 효과음을 딱 탁구의 느낌을 청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까지만 드러내더라.
신재평 : 사실 ‘지금 나의 노래가 들린다면’ 같은 곡은 파트 별로 뜯어서 들어보면 우리가 만든 그 어떤 노래들보다 더 화려하다. 기타는 계속 솔로 들어가고, 베이스는 공연에서 애 먹을 정도로 완전 말도 안 되는 프레이즈 연주하고, 드럼 필인도 엄청 화려하고. 그런데 그런 보컬의 멜로디가 중심에 서면서 나머지 파트는 현란하되 딱 귀에 들리지 않고 서포트하는 느낌이 강해졌다. EP < A Preview > 이후에는 우리가 알아서 믹싱을 했는데 이번에는 토이 앨범을 믹싱해주시던 엔지니어 분과 작업을 했다. 그랬더니 노래가 잘 들리는 방향으로 믹싱됐다. 나는 그게 더 고수의 느낌인 것 같다.
“또라이 같은 모습을 사랑해주던 이들을 실망시키진 않을까”

신재평 : 그렇지. 과거 앨범의 인트로는 굉장히 장황하지 않나. 한참 연주 나오고 노래 나오고 다시 한참 간주 나오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담백하게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나는 곡이 많다. 전에는 우리가 잘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프로그램 짜고 엇박 넣고 변주 들어갔는데 이제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는 믿음으로 좀 더 담백하게 갔다.
과거 인터뷰에서 3집을 내면 메이저 기획사 같은 세련됨과 인디 스타일의 조화를 이루고 싶다는 욕심을 얘기했었는데 어느 정도 만족하나?
신재평 : 나는 좀 더 대중적으로 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둘의 의견을 조율하며 가운데 지점에서 앨범이 나왔으니까.
이장원 : 대중음악을 오래 하는 건 그만큼 많은 대중이 관심을 가져주고 서포트를 해야 가능하다는 걸 인정한다. 망가지면서 할 수는 없는 거지. 그렇게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어디까지 마음을 열고 해야 하느냐를 고민한 건데 한 편으로는 우리의 또라이 같은 모습을 사랑해주던 사람들을 실망시키진 않을까 걱정했던 거다.
결국 음악을 어떻게 오래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신재평 : 모든 게 거기서 시작됐지. 아티스트로서 누구나 하는 고민일테고. 정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티스트 입장에선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게 생긴다. 지금 우리 나이가 안정적 생활과 치열함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기인 거 같다.
이장원 : 누구나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지 않나. 저녁에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고, 공과금 밀리지 않고, 아이가 태권도 배우고 싶으면 도장에 보내줄 수 있는. 그런데 한 편으로는 다이내믹한 삶을 원하고. 결국 가장 좋은 건 안정적인 현금 흐름 (웃음) 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건데 현실이 녹록치 않으니 그 안에서 고민을 하는 거지.
음악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할 수도 있는 거고.
신재평 : 나는 그러고 싶다.
이장원 : 나는 잘 모르겠다. 뭘 해야 할지. 내게 주어진 가능성이 많이 있어서 지금으로선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고 영리하게 잘 하고 싶다. 나는 기회비용, 매몰비용을 되게 싫어한다. (웃음) 투자한 게 있으면 뽑아내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기회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길이 음악일 수도 있지 않나.
이장원 : 가능성이 없진 않다. 두고 봐야지. 성실하게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는 게 중요한 시기인 거 같다.
“걸그룹에게 곡을 주기위해 프리젠테이션도 할 수 있다”


이장원 : 우리가 시장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외주작업, 다른 메이저 가수에게 곡을 많이 주는 거다. (웃음) 그 중 걸그룹에게 곡을 주는 게 꿈이고.
신재평 : 걸그룹을 위해 300곡을 준비했다. (웃음) 그건 농담이고, 양복을 하나씩 준비한 다음에 대형 기획사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러고 보면 전에 카라의 ‘Rock U’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장원 : 카라 얘기는 얘랑 해라. 난 소녀시대를 좋아한다. 프레젠테이션도 SM엔터테인먼트에 가서 이 파트는 태연이 부르고, 여기선 자리 배치와 안무를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막상 하려니 안 되지만.
신재평 : ‘Rock U’가 최고지. 요즘 나온 ‘미스터’도 좋지만. 이런 곡을 쓰는 분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카라를 비롯해 걸그룹들이 들고 나온 음악이란 게 그들이 만든 게 아니라 결국 시스템이 만든 음악이지만 굉장히 매끈하니까 충분히 박수쳐줄만하다고 생각한다.
뮤지션들도 걸그룹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시대, 말하자면 다양한 취향이 인정받는 시대인 것 같다. 그 안에서 페퍼톤스만의 노선이라는 게 있나.
이장원 : 처음 밴드를 만들 때 우리가 되게 해피해서 이 기쁨을 노래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웃음) 뭔가 일을 벌이고 싶었는데 지금 하는 것과 비슷한 류의 음악을 듣고 있었고 좀 기쁜 마음을 노래하자는 방향을 정하게 됐다. 그렇게 음악을 만들고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또 음악을 만들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항상 우리가 기뻐서 그걸 노래하면 좋겠지만 우리도 사람이고 인생이 있고 고민이 있지만 지금의 방향은 유지하고 싶다. 나름의 사명감이지.
신재평 : 2집의 ‘New Hippie Generation’을 비롯한 우리의 경쾌한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고 자기 삶이 즐거워졌다는 피드백을 받고 감격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만든 음악이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 순간을 만든다는 것만큼 동기부여가 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우리가 만든 음악을 누군가 듣는다는 것만으로 신났는데 음악을 들은 사람이 신난다면 만드는 입장에선 행복하지. 그래서 이런 음악을 꾸준히 유지하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이 개똥철학이 결코 후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루저니, 하는 20대에 대한 자조적 얘기도 재밌겠지만 우리는 젊으니까 희망차고 갈 길이 많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연애도 실패하고 궁상을 떨지만 그래도 다 잘 될 거라는 그런 이야기.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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