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는 1988년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90년대까지 10여년을 주말 저녁 예능의 최강자였다. 주병진, 이경규, 강호동 등의 걸출한 코미디언을 탄생시켰고, ‘양심 냉장고’, ‘이경규가 간다’ 등의 히트코너를 제조해냈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서는 시청률의 하락과 함께 프로그램은 방향성을 잃기 시작한다. 마치 MBC 예능프로그램들의 베타 테스터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여러 코너들이 난립했다 급하게 종영되기를 반복했고, 시청자들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엔 경쟁주자들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재미를 솜씨 있게 요리해 제공했다. 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의 복귀 이후에도 그 위기의 징후는 여전하다. 김교석 TV 평론가와 위근우 기자가 제대로 보기 전에 먼저 울기 십상인 ‘우리 아버지’와 ‘단비’를 눈물을 닦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편집자주

MBC 의 리뉴얼은 MBC 의 재림이었다. 코너 순서를 바꿔도 봤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호불호를 논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미미하다. 가장 화제작이었던 ‘헌터스’는 진작 콘셉트를 바꿨으나 역시나 공공성과 공익을 추구하는 선상에서 또 다른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고, 아프리카에서 ‘워터 퐈~!’를 터뜨렸던 ‘단비’도 매주 심금을 울리는 사연으로 시청자들의 울음보를 터뜨리고 있다. 또 다른 눈물 코드 프로그램인 ‘우리 아버지’의 ‘아빠 냉장고’는 새로운 의 가치, 정서, 방향의 선언과도 같다.

안 그래도 슬픈데 울라고 등 떠미는 카메라
<일밤> vs <일밤>│눈물도, 웃음도 강요하지 말라
vs <일밤>│눈물도, 웃음도 강요하지 말라" />‘IMF시절 예능’의 감동코드는 신파와 다를 바가 없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나보다 더한 사람, 혹은 비슷한 처지의 사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굳은 의지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었다. 요즘 프로그램들이 눈물의 감동 코드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의 사연을 보며 얻었던 감동을 이제 시청자들은 리얼 버라이어티 출연진들의 관계에서 얻는다. 예를 들자면 KBS ‘남자의 자격’ 마라톤 특집과 MBC 의좋은 형제 특집의 감동. 즉, 덜 직접적이고 촌스러운 방식으로 눈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눈물을 찾아가는 것으로 모자랐는지 지난주는 촬영 전날 아들의 49제를 마친 이광기 특집으로 이뤄졌다. 물론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나 너무나 불편한 것은 이광기가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에 북받쳐 오를 때마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줌인과 클로즈업이다. 안 그래도 슬픈데 그의 눈물을 보고 같이 울라고 강요하는 것. 조금 진정되나 싶으면 무조건 영상 편지를 쓰라며 가슴을 후벼 판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연만큼 안타까운 것은 ‘우리 아버지’가 분명 재미있다는 점이다. 우리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동네 명물들을 만나기 때문에 매회 신선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당에서 빙상 타던 세용이 형을 만나거나 “정가은 누나 목소리가 우리 작은 엄마 목소리랑 똑같아요”와 같은 누구도 예상 못할 상황들에서 생생한 웃음이 만발한다. 또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신동엽의 순발력과 재치 또한 오랜만에 돋보인다. 신동엽만 만나면 일반인들도 순식간에 예능인으로 탈바꿈하니 요즘과 같은 집단 MC체제에 적응 못하던 신동엽 앞에 활개치고 놀 멍석이 깔린 셈이다.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원하는 것
그런데 신동엽의 재능은 눈물을 위한 감초에 머문다. 웃음 뒤로는 강박적일 정도로 감동이 따라붙는다. 무뚝뚝한 사춘기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끄집어내기 위해 말을 돌리고, 묻고 또 묻는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세요?” “우리 부모님을 가장 존경합니다”라는 문답은 사실여부를 떠나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라는 말만큼 상투적이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얻기 위해 눈물을 클로즈업하고 가장 슬픈 사연의 주인공에게 아빠 냉장고를 선사한다. 희망을 주는 것은 좋지만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나열하고 그중 가장 슬픈 사연을 골라 선물을 주는 방식은 감동의 강요와 동정이 결합되어 눈물의 순도를 탁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간지럽다. 눈물을 보여주면서 눈물을 뽑아내는 가장 일차원적인 접근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의 경우 의좋은 형제 특집에서 5년 만에 처음으로 멤버들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손발 오그라드는 사랑한다는 멘트를 5년 만에 내뱉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매주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런 말을 얻어내려고 한다. 시청자들이 시크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주말 예능을 즐겨보는 시청자들의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PD의 연출작이기에 더욱 어리둥절하다. 시청자들은 일요일 저녁에 눈물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쇼를 보고 싶어한다. 웃는 와중에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우리 아버지’에서 감동과 눈물만을 핀셋으로 끄집어내는 것을 일컬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표현한다.
글 김교석

당장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게 금전적, 정서적 도움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연예인들이 직접 봉사자로 참여하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MBC ‘단비’가 좋은 프로그램인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건 좋다, 나쁘다가 아닌 그런 식의 평가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해 ‘단비’는 비평적 개입을 차단시키는 윤리적인 보호망을 두르고 있다.

착한 프로그램의 외피가 감추고 있는 것
<일밤> vs <일밤>│눈물도, 웃음도 강요하지 말라
vs <일밤>│눈물도, 웃음도 강요하지 말라" />물론 잠비아에서 우물을 뚫어주는 극적인 순간에 ‘단비방울은 그렇게 세상을 안았습니다’ 같은 자막을 굳이 붙이거나, 단비 열차를 타고 2009년의 선행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후광을 덧입히는 감정 과잉의 연출에 대해 지적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미학적 촌스러움은 ‘단비’에 있어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것은 이 프로그램이 윤리적 차원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연출적 문제도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고, 당원 축적병에 걸린 수정이에게 간 이식을 시켜주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순진 씨를 위해 결혼식 이벤트를 꾸민 ‘단비’의 성과에 생채기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윤리적 알리바이를 통해 만들어진, 조금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착한 예능의 외피는 일종의 트릭이다. 이 프로그램의 진짜 문제는 얼핏 어설퍼 보이는 연출이 실은 타인의 고통을 들이미는 불편한 시선을 효과적으로 은폐한다는 사실이다.

‘단비’라는 제목의 원래 의미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비밀’, 즉 조건 없는 베풂이지만 정작 이 프로그램은 그 베풂의 과정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우물을 뚫기 위해 24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까지 갔지만 실제로 결정적인 도움을 준 건 후반부에 잠시 등장한 시추기였고, 순진 씨의 결혼식을 위해 MC들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그저 부산스럽게 나열됐을 뿐 그들이 정확히 어떤 노력을 하는지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는 시커먼 흙탕물을 그 자리에서 마시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이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감격해하는 순진 씨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MC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이것을 보며 울컥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감정은 감동이라기보다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사람을 보며 느끼는 충격과 고통에 가깝다. 그 감정은 무척 강렬하고도 즉각적이어서 몇 번이나 주사바늘에 찔리면서 그것이 마지막 주사이길 바라는 수정이의 절규를 끝까지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이 얼마나 가학적인지 미처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강요적인 시선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덕목인 베풂의 가치 역시 강요한다. 즉 MC들이 봉사를 하며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 스스로 베풂의 당위를 곱씹고 공감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저렇게 아파하는 사람들을 모른 척하겠느냐며 죄책감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눈물을 통한 정화부터 수혜자의 미소를 보며 느끼는 안도감까지 ‘단비’는 시청자의 감정을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선행을 베푸는 MC들의 마음도, 수혜자들의 행복도 진짜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단비’의 방식은 극도로 인위적이다.

단비, 지겨운 장마가 되지 않으려면
그래서 ‘단비’는 좋거나 나쁘기 이전에 불편하다. 과거 의 권정생 작가는 MBC 에서 자신의 책 을 선정하려 하자 “아이들에게서 책 고르는 행복을 빼앗지 마라”며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올바른 가치라 해도 그것을 강요하는 행위는 올바를 수 없다. 지금 ‘단비’에 필요한 건 더욱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내리는 비는 단비는커녕 지겨운 장마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로의 회기일 것이다.
글 위근우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글. 김교석(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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