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9년 전 과거가 초인종을 누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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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현장의 스틸 기사로, 개인전을 준비하는 포토그래퍼로 바쁜 삶을 살아가는 지현(이나영). 그녀에게는 조금씩 마음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는 남자친구 준서(김준석)가 있다. 조심스럽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등 뒤의 세상을 믿고 걸어도 좋을 만큼의 신뢰와 사랑을 쌓았을 즈음, 그녀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9살 소년은 손지현이란 이름의 “아빠”를 찾아왔다고 말한다. 쓸모도 의미도 없던 남자라는 성을 맹장처럼 떼어낸 지 벌써 9년. 어렵게 얻어낸 잠깐의 평화는 친아들의 등장과 함께 한 순간에 깨진다. 더 이상 아빠일 수 없는 아빠와 이제는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아들의 기묘한 동거는 그렇게 가짜 콧수염만큼이나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넘어간다.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9년 전 과거가 초인종을 누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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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흥행영화의 뇌세포, 클래식 로맨틱 코미디의 심장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9년 전 과거가 초인종을 누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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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불쑥 찾아와 주인공을 친 아빠라고 주장하는 아이, 성을 바꾸는 분장쇼와 그를 둘러싼 러브스토리. 를 보면서 누군가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21세기 을, 누군가는 친구의 누나(김혜수)를 짝사랑해 여장을 감행했던 20세기 의 순애보를 떠올릴 것이다. 는 아이와 미녀라는 고전적인 흥행코드와 논란의 소재를 대중 코미디로 풀어내며 성공한 의 현재적 흥행감각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놓았음을 ‘석호필’의 문신처럼 드러낸다. 이 영화가 촌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고, 이 영화에 정이 간다면 또한 그것을 숨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획성을 얄밉지 않게 만드는 것은 진심을 말할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이나영의 담담한 연기와 ‘밀당’ 없이 우직한 준서의 사랑법을 닮은 재기 부리지 않는 연출이다. 또한 타고난 성을 바꾸는 문제가 결코 여반장(如反掌)이 아님을 알고 있는 이 영화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지현의 선택에 대해 유머를 만들되 장난은 치지 않는다.

어쩌면 지현이 아이와 보낸 짧은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건 거창하고 버거운 ‘부성애’나 ‘모성애’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지웠던 혹은 묻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가 9살 소년의 심장처럼 그녀 앞에서 여전히 펄떡펄떡 뛰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선택하지 않았어도 존재했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것, 은폐의 화장을 지우고 과거마저 기꺼이 업을 빈 등을 내미는 것. 그렇게 지현이 아들의 “엄마”가 아닌 “아빠”로 살아 갈 수 있을 때, 그녀는 비로소 온전한 자신만의 ‘선택’이란 걸 시작 할 수 있는 것이다. 을 만든 하리마오 픽쳐스가 제작했고 KBS 의 천성일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1월 14일 개봉.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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