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KBS2 <개그콘서트>는 방송 10주년을 맞았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코미디언들이 무대에 올랐고, 웃음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들의 상당수는 사라졌다. 그러나 박성호는 마이크 하나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만들어 내던 ‘로보캅’으로부터 세상의 절반인 남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무대를 지켰다. 잠깐 다른 방송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그는 매주 무대에 올랐다. 다른 카메라 앞에 서되, 다른 방식의 소통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가장 솔직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이끌어 내는 코미디로 10년간 사람들의 평가를 받는다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러나 박성호는 말한다. “앞으로도 계속 개그 무대에 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개그를” 선보이겠노라고. 그리고 그 에너지의 원천을 “동물적인 감각”에서 비롯된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라고 덧붙인다. 잘난 척 같지만 그의 말을 외로 꼬아서 들을 순 없다. 실제로 박성호는 <개그콘서트>가 방송된 이래로 가장 많은 코너에 출연한 사람이다. 그는 혼자서 맨주먹을 쥐고서 “구국의 강철대오”를 외치거나 “반갑습니다. 레미파솔라”를 노래하기도 했고, 이순재와 양지운의 성대모사를 선보였으며, 나비넥타이를 매고서 노래 가사를 되새기거나, 가발로 분장하고서 “김창식씨”를 부르거나 “안그러셨잖아요” 애원하기도 했다.

마치 숨을 쉬듯 개그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그에게 음악은 잠시 생각을 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다. 계절에 어울리는 명곡들을 줄줄이 추천하는 그에게 슬쩍 ‘오빠 만세’로 유명한 ‘All by my self’를 권하자 “아. 그 노래는 지겹게 들었어요. 이제는 음악 들을 때만큼은 개그 생각 안하고 싶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괜히 물어봤어. 물어보지 말걸 그랬어.




1. Camel의 < Stationary Traveller >
정직한 시선으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풀어내 많은 공감을 얻었던 KBS <학교>는 성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적이 있었다. 전국의 수많은 고등학생들의 눈물을 자아냈던 이 에피소드에 등장한 카멜의 ‘long goodbyes’는 다음날부터 심야 라디오의 단골 신청곡이 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덕분에 팝 밴드로 알려져 있지만, 1973 데뷔 앨범을 발표한 카멜은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다. 이들은 앨범 전체를 하나의 테마 안에서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long goodbyes’가 수록된 앨범 < Stationary Traveller >는 독일 분단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성호가 “목소리가 진지하면서도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이 나서 듣는 순간 잊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설명한 이 곡은 밴드의 실세인 앤드루 라티머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프로그레시브 밴드로서 이름을 날렸던 알란파슨스 프로젝트의 게스트 보컬이었던 크리스 레인보우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2. Stylistics의 < Can`t Give You Anything But My Love.. >
“들으시면 알아요”라고 박성호는 ‘Can`t Give You Anything But My Love’를 요약했다. 기무라 타쿠야의 등장으로 유명한 일본 헤어스타일링 제품의 CM송으로 활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은 이 멜로디는 1968년 결성된 스타일리스틱스의 대표적인 히트곡이다. 순박할 정도로 로맨틱한 가사와 경쾌한 리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흑인 중창단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가벼운 화음이 곡의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킨다. “저는 주로 자동차로 이동할 때 음악을 들어요. 라디오 주파수를 항상 93.9로 맞춰 놓고 있거든요. 하루 종일 좋은 노래 정말 많이 나와요. 이 노래도 라디오에서 듣고 멜로디를 기억했어요. 누구나 금방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잖아요. 가사를 정확하게 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하하.”



3. Jason Mraz의 <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 >
4차원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 박성호가 좋아하는 곡들은 차분한 분위기의 음악들이다. 그러나 “나름의 리듬감은 있어야” 귀에 감겨든다고 자신만의 선곡 철학을 밝히는 그에게 제이슨 므라즈는 어느 한 곡을 골라낼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뮤지션이다. 기타 하나만 있으면 하루 종일 노래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신선한 에너지와 맑은 목소리로 국내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제이슨 므라즈는 철저한 채식주의자이자 환경보호 실천가로서도 유명하다. 그러한 그의 청아함이 돋보이는 ‘I`m yours’는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디지털 싱글 3위로 선정된 메가 히트송이다. “실력이 부족해서 따라 부르거나 하지는 않죠. 하지만 듣고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기는 합니다. 한적한 해변에서 가족들과 쉬고 있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노래잖아요.”



4. Ace Of Base의 < Happy Nation >
리듬감에 대한 애정을 좀 더 드러내면서 박성호는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스웨덴의 팝 그룹 에이스 오브 베이스를 언급했다. “예전에도 좋아하는 곡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신나고 즐거워요”라는 그의 설명처럼 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sign’은 1994년 당시, 미국 차트를 정복하며 이들을 ‘아바의 재림’이라고 불리게 만들었던 결정적인 곡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룹의 인기와 인지도는 과거의 명성이 무색하게 퇴색되었지만 이들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유로 스타일의 멜로디와 일관된 보컬은 여전히 특유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참 신기한 게 중독성 넘치는 곡들인데 쉽게 질리지가 않아요. 바로 그런 개그를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죠. 하하.”



5. Dire Straits의 < Sultans of Swing >
“사실 저는 홍대에 저만의 단골 바가 있어요. 거기 가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있어요. 너무 좋아서 이름이나 가사를 기억해 뒀던 노래를 신청하거나, 그냥 주요 부분의 멜로디만 흥얼거려도 금방 찾아서 틀어주시거든요. 바로 그 바가 저에게는 주크박스나 나름 없어요.” 박성호가 최근 자신의 단골 바에서 가장 즐겨 들었던 곡으로 꼽은 것은 1995년 안타깝게 해체를 선언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다. 펑크가 히트하던 1970년대 말, 보다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는 록으로 의외의 훅을 날리는데 성공한 다이어 스트레이츠는 오아시스 등장 이전까지 영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끈 밴드로 알려져 있다. 창작과 투어의 스트레스로 밴드는 해산했지만, 보컬과 기타를 맡았던 마크 노플러는 싱어송라이터로서 개인의 커리어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음악 개그를 하던 당시, 너무 많은 팝송을 들어야 했으며 음악을 들으면서도 끝없이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지쳤었다는 박성호는 다시는 같은 코너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대신 음악을 통해 휴식의 시간을 잠시나마 얻는 그는 재충전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를 소망한다. “제 나이에 맞는 개그를 계속 구상할 겁니다. 그리고 여력이 되는 한 버라이어티에도 서서히 도전하고 싶어요. 조급하게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겁니다. 천천히 기회를 노리다 보면 이경규 선배님이나 조형기 선배님처럼 예능의 중요한 중년 멤버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무대에서도, 세트에서도 지금의 열정과 노력이라면 언제나 박성호의 웃음은 높은 타율을 기록할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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