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난다는 건, 그것도 그 시기에 가장 뜨거운 관심의 중심에 있는 스타를 만난다는 건 기자에게도 언제나 기대와 흥분을 일으키는 일이다. 의 기자들도 누군가를 만나고 오면 늘 “어때?” “최고야!” “생각보다 더 재밌는 사람이야”같은 말들을 주고 받으며 그 떨림을 되새김질 한다. 하지만, 의 기자들이 가장 떨리는 순간은 모두가 알고 있던 그 스타들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고유한 빛을 가진 사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그들이 미디어의 스타가 아니라 나와 대화하는 사람으로 다가온 그 때, 그리고 그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보여준 강렬한 인상들은 우리에게 No.1 인터뷰를 일이 아닌 어떤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기억으로 남겨 놓는다. 1년에 단 한 번, 의 사진기자와 취재기자들이 그 순간의 기억들을 공개한다.

2009 No.1│김남길부터 비까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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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캐릭터를 겹쳐 보는 것이 때로는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김남길은 올해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MBC 의 비담과 닮은 구석이 많은 남자다. 대화의 틈새마다 던질 수 있는 농담은 다 던지면서도 다음 순간 곧바로 진지하고 속 깊은 대답으로 방향을 선회하며 상대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매력은 상황대처 능력이 뛰어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예전 인터뷰에서 “곱게 자라지 않아 다행”이라는 흥미로운 발언을 남겼던 데 대한 그의 설명은 김남길이라는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했다. “정재영 선배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배가 부르게 자란 사람은 배가 고픈 사람을 이해는 해도 공감하지는 못해요. 재영이 형 말대로, 우리도 사실 가져 보지 않았으면 가진 자들의 고충이나 그 여유로워 보이는 상황 안에서 힘든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잖아요. 저만 해도 당장 ‘돈만 있어봐. 우리나라에서 돈만 있음 다 되는 거지. 뭐가 그렇게 힘들까?’하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런데 저는 좀 여유 있게 산 것보다 부모님께서 아르바이트나 여러 가지를 다 경험해볼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에 꼭 뿐 아니라 지금까지 연기해온 데 있어 조금씩,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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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을 만났다. 정우성과의 인터뷰가 가진 의미는 이 한 마디로 정리된다. 장동건과 더불어 한국 남자 배우 중 가장 거대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의 존재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마치 오랜 시간 공들여 쓴 철학책처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정우성이라는 배우의 외형과 네임밸류, 필모그래피와 딱 맞아떨어지며 정우성이라는 자아를 모순 없이 구성해냈다. 즉 “나는 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시기를 거쳐 자신에게 부여된 ‘The 정우성’의 위치를 긍정하고 “대중이 바라는 정우성의 이미지를 분명히 인식”하게 된 그의 여유로움과 영화 의 선택은 어떤 불협없이 온전히 연결된다. 대중 모두가 가지고 있는 뚜렷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공허하지 않게 채우는 실체, 그것이 그를 ‘The 정우성’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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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말하자면 박지성 같은 존재다.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은사 히딩크 감독마저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시기상조라고 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맨유에 입단했다. 덕분에 우리는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를 얻었다. 비도 마찬가지다. 그가 한국에서 더 이룰 것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는 최고의 무대에서 뛰는 것에 올인했고, 역시 한국인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 주연을 맡았다. 그가 사대주의자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박찬호와 김연아를 좋아하는 그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범했을 때도 결국 정복하지 못한 건 우리나라의 정신력이잖아요. 조상들이 지키려 했던 수많은 문화들과 민족의식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조금은 촌스러울 정도의 민족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즉 비는 정확히 말해 월드스타라기보다 세계무대에 진출한 국가대표에 가깝다. 할리우드에서 한국의 마크를 달고선 외국의 덩치들과 힘겹게 몸싸움을 하고 주전 경쟁을 펼치는 21세기형 국가대표, 그게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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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승원 사진 더보기
섹시하다는 건, 생물학적 남성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다. 그리고 차승원은 그 찬사를 받아 마땅한 피조물이다. 만약 그것이 그의 육체적 매력에만 기댄 것이었다면 당연히 그것은 마흔인 현재 하향 곡선을 그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에게선 키스 리차드나 스티브 타일러처럼 오랜 시간 자기 분야에서 열정을 쏟았을 때 만들어지는 내면의 섹시함이 있었다. 그가 “남자들에게는 80년대 느와르에 대한 오마주가 있어요. 무술영화보다. 그건 정말 멋 부리는 영화잖아요”라며 “바람은 안 부는데 휭 소리는 들리는” 작품에 대한 욕심을 드러낼 때 당장 누구라도 그를 데려가 느와르 한 편을 찍어줬으면 싶었던 건 그래서다. 잘 차려 입은 수트만으로 주위를 장악할 수 있게 된 그라면 제대로 된 ‘폼생폼사’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한국에서 그런 작품이 언제쯤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떤가. 나이를 먹을수록 차승원의 섹시함은 더 농익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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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정 사진 더보기
안다. 담배란 것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 한 뼘도 되지 않는 흰 물체가 누군가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워지는 순간, 그것은 때로 어떤 액서세리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배우 윤여정이 담배를 피우는 순간, 세상의 시간은 조금 다른 호흡으로 흘러간다. 1초, 2초, 3초 같은 규칙적 흐름이 아니라 그녀가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날숨과 들숨을 따라 지배 당하고야 마는 공간의 리듬. 물론 이 노배우의 영생과 안녕을 위해서라면 당장 금연권고를 내려야 마땅하겠지만, 한번이라도 윤여정의 담배 피는 고혹적인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결국 이기적인 관객이 될 수밖에 없다. 촬영에 앞선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안 필래요. 하도 담배 피는 사진이 많아서 사람들이 흉본다우. 전매청에서 연락 온다고(웃음)” 결국 준비된 세트 앞에서 그녀는 결코 담배를 피워 물지 않았다. 대신 이어진 긴 인터뷰 내내 담배는 그녀의 손가락을 한 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그날, 이 여배우의 이야기에 순간순간 눈시울이 붉혀졌던 건 아마도 담배연기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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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 사진 더보기
강동원은 현장에서 연기를 잘하는 선배들을 만나면 불꽃이 튀게 붙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심지어 “여배우라고 봐 주는 거 없어요, 저는. 현장이 되게 여배우를 케어해주는 분위기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없거든요.”라고 말하는 그는 남녀를 불문하고 같은 앵글 안에서 배우로서 승부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어디 연기뿐이겠는가. 여배우와 미모로 경쟁한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글. 백은하 one@10asia.co.kr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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