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에서 지금까지 멧돼지 잡다가 왔다.” 두꺼운 외투에 털모자를 쓴 채 미처 세수도 못한 얼굴로 김영희 PD가 나타났다. 2005년 최연소 MBC 예능국장에 임명되어 현장을 떠났던 그에게서 이런 수더분한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올해 중순 현장 복귀를 선언했던 그는 결국 위기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을 살리기 위해 긴급 투입되었고, 현재 세 개의 고정 코너가 있는 김영희 스타일의 <일밤>이 12월 6일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경규가 간다’와 <느낌표>로 대표되는 공익 예능의 달인인 그는 과연 리얼 버라이어티가 지배하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어떤 승부수를 던질 수 있을까. 다음은 11월 23일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진행된 김영희 PD와의 공동 인터뷰 내용이다.

그야말로 전면적인 개편이다. 언제부터 프로그램들을 준비해왔나.
김영희
: 9월 21일부터 PD 7명, AD 8명, 작가 18명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 지금까지 준비해왔다. 정말 매일 새벽 2, 3시까지 휴일도 없이 일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76박 77일 정도의 시간을 보낸 건데 그 정도면 ‘1박 2일’과 어느 정도 상대가 되지 않을까. (웃음)

“웃음과 함께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9월 21일이라면 아직 ‘오빠밴드’와 ‘노다지’ 폐지가 결정되지 않은 시기였는데 만약 이들 프로그램 성적이 좋았으면 새 코너 방영이 늦어졌을까.
김영희
: 만약 ‘오빠밴드’가 잘 나왔으면 준비하던 세 개 코너 중 하나만 옆에 붙을 수도 있겠지. 지금은 전면적 개편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대비하자는 개념으로 찍었다.

오랜만의 예능 현장 복귀인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김영희
: 사실 유재석이나 강호동, 이경규 같은 최고의 MC들이 나와 굉장히 친하다. 사실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하면 캐스팅을 거절할 분들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현재 그분들이 맡은 프로그램들이 <일밤>과 시간대가 같다. 그렇다고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웃음) 오히려 현재 인기 절정은 아니지만 캐스팅되어서 같이 손발 맞추는 출연자들을 보니 이게 더 잘 된 일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포장으로 보일 수 있으면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면적으로 세 개 코너를 새롭게 선보이는데 코너 각각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김영희
: 우선 멧돼지를 잡는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가 있다. 우리나라 상황에 적당한 멧돼지 개체 수는 4만 마리 정도인데 현재 17만 마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관리를 안 하면 1, 2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더라. 개체 수를 조절하지 않으면 생태계 자체가 파괴될 위험이 있는데 멧돼지는 사냥으로 개체 수를 조절하는 방법 밖에 없다더라. 그래서 전문 엽사(사냥꾼을 높여 이르는 말)와 우리 연기자들이 멧돼지 포획에 나서는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을 거라 생각하는 코너는 ‘우리 아버지’인데 퇴근하는 아버지들을 섭외해서 인터뷰하고 가족과 아버지 간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공감 버라이어티다. 연출을 맡은 제영제 PD가 보도자료에 나온 ‘아버지 기 살리기 프로젝트’ 대신 공감 버라이어티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하더라. (웃음) 마지막으로 리얼 공익 버라이어티 ‘단비’가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나눔이라는 전제 안에서 매주 다른 아이템을 던져주면 출연자들이 그 아이템, 그 상황에 맞춰 어떻게 사람들을 돕고 나눠야할지 토의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줄 생각이다. 과거 <느낌표>의 ‘눈을 떠요’가 각막 이식이라는 아이템을 꾸준히 진행했던 것에 비해 매주 아이템이 다르다는 점에서 ‘단비’는 공익 버라이어티 계의 <무한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코너지만 결국 공익이라는 코드로 묶이는 것 같다.
김영희
: 예능 프로그램의 방향을 조금만 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기존 연예 오락 프로그램은 <해피선데이>나 <일요일이 좋다> 같은 경쟁 시간대 프로그램뿐 아니라 일주일 내내 공중파, 케이블 통틀어 모든 연예 프로그램이 연예인 일색이다. 사생활 폭로전을 하거나, 약간의 막말 방송이라든지, 이런 유사한 프로그램들만 포진하고 있어서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 같은 코너를 보면 알겠지만 이번에 개편하는 <일밤>은 연예인들만의 프로그램을 지양한다. 또 너무 오락적이지만은 않은, 즐거움과 웃음을 같이 주는 방송을 만들고 싶었다.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하는. 그래서 이번 <일밤>의 지향점과 모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유쾌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분명히 내 예전 프로그램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PD 개인으로 보면 과거 <느낌표>와 같은 공익형 프로그램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느낌이다.
김영희
: 나로서는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예능 복귀를 할 때는 <일밤>이 아닌 다른 시간대,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와는 다른 스타일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11시 정도에 편성된 어른 이야기 같은 거. 그런데 그걸 못하고 <일밤>에 투입된 거고, 그 시간대에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할 수는 없었다. <일밤> 시간대에는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와야 하니까. 말하자면 <일밤>이 내 발목을 잡은 거지. (웃음) 그래도 이 시간대에 가능한 포맷 중 가장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내 예전 프로그램에 비해 새로운 게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접 보면 새롭다고 느낄 거다.

사실 멧돼지를 잡고, 아버지 인터뷰를 하면서 예능적인 재미를 어떻게 찾을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김영희
: 멧돼지를 잡으러 가면서 누가 앞장설지 게임으로 정하고, 멧돼지 포획을 위한 체력 훈련을 하는 모습을 통해 예능적인 재미를 줄 거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95% 정도는 정말 재밌고, 나머지 5%에서 허를 찌르는 반전을 주며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할 것이다. ‘단비’의 경우엔 항상 마지막엔 울지 않을 수 없는, 가슴 저미는 감동을 줄 것이다.

조금 불편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멧돼지 사냥이라는 콘셉트는 과거 tvN <나는 PD다>에서 이윤석이 새 코너 아이템으로 내놨다가 송창의 대표에게 ‘까인’ 아이템이다.
김영희
: 그건 몰랐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내가 예전에 ‘칭찬합시다’를 했던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누구나 칭찬릴레이를 하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걸 실제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다. 멧돼지를 잡는 것도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그걸 실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멧돼지 사냥이라는 콘셉트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또 사냥을 하며 필연적으로 잔인한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을 텐데.
김영희
: 위험은 백 퍼센트 제거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멧돼지를 겁내는 것 이상으로 멧돼지가 우리를 겁내고 도망간다. 다만 도망을 가다 길이 막히면 돌발적으로 저항할 수가 있는 건데 우리 출연자들은 엽사 뒤에 있을 거니까. 엽사를 혹사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엽사는 그게 직업인 분들이다. 또 피를 흘리거나 잔인한 장면은 모두 편집할 거다. 그런 걸 방송할 수는 없지.

“김현중, 한지민, 한효주, 황정음 등이 깜짝 출연자들”

‘단비’의 경우 아프리카로 촬영을 갔는데, 글로벌 프로젝트인 건가.
김영희
: 한 달에 한 번 정도 해외에 나갈 거고, 나머지 세 번은 국내에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갈 거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세계 선진국에게 수혜를 받은 수혜국에서 반대로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원조국으로 변모한 유일한 나라다. 11월 25일에 세계 원조 기구에 가입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방송 역시 해외에 눈을 돌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시청자들에게 글로벌 시민의식을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첫 번째가 아프리카 잠비아인 거고. 이곳의 사람들은 흙탕물을 식수로 사용하는데 그나마도 길어오는데 5시간이 걸린다더라. 그래서 그곳에 우물을 뚫어주려 갔다. 사실 이게 실패 확률도 있다. 아무리 사전 조사를 해도 뚫었을 때 물이 나올 확률이 반이라고 한다. 멧돼지 잡는 거야 실패해도 다음 주에 잡으면 되지만 이번 우물 뚫는 미션은 꼭 성공해야 한다. 우물이 파지길 기도하고 있다.

새로운 인물들을 섭외했다고 말했는데 어떤 출연자들을 볼 수 있을까.
김영희
: PD들 부탁 때문에 모두 공개할 수는 없다. (웃음) ‘대한민국 생태구조단 헌터스’의 경우엔 개그맨 MC 한 명을 비롯해 총 7명의 출연자가 헌터스 멤버로 활동한다. 그 중 김현중과 정용화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는 4명이 출연하는데 서프라이즈한 (웃음) 두 명을 밝히자면 황정음과 정가은이다. ‘단비’의 경우엔 개그맨 4명이 고정이고 나머지가 들쑥날쑥하다. 현재 1회 아프리카 편에 출연하는 건 한지민인데 본인이 이 코너를 고정으로 하고 싶어 하지만 드라마 촬영 스케줄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2회에 출연하는 한효주 역시 스케줄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둘이 번갈아 출연할 수도 있고 3회 때 또 다른 제3의 출연자가 나올 수도 있고. 몇 회가 될지 모르지만 차인표 씨도 출연을 약속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청률에 대한 부담도 없지 않을 것 같다.
김영희
: 부담은 있다. 어떤 걸 해도 채널이 안 돌아오니까. 일단은 봐야 이걸 좋아할 수 있는 거니가 홍보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을 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기사를 잘 써주면 (웃음) 두 자리 수는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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