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보러 오신 여러분들, 안 됐지만 잘못 오셨네요.” 지난 20일 더 스테이지에서 프레스콜을 가진 뮤지컬 <더 씽 어바웃 맨>(The thing about men)은 로맨스는 커녕 “우리 얘긴 현실적”이라며 단칼에 환상부터 깨놓고 시작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눈을 피해 다른 사랑을 하고, 그 과정은 계단을 밟듯 단계별로 차근차근하게도 진행된다. 뮤지컬 <올슉업>과 <아이 러브 유>를 통해 로맨스와 코미디라는 두 장르를 잘 비벼낸 브로드웨이의 작가 조 디피에트로의 능력은 <더 씽 어바웃 맨>에서도 계속됐다.

“사랑해”라는 말 보다 “배고파”라는 말이 더 절실해 보이는 톰과 그저 붙박이장처럼 박제된 채 살아가는 루시는 결혼 10년차 부부다. 잘나가는 대기업에 근무 중인 톰은 자신의 비서와 바람이 나고, 루시는 자신을 보지 않는 톰 대신 자유로운 보헤미안 화가 세바스찬과 바람을 피우는 중이다.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아내의 외도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톰은 이후 아내의 내연남인 세바스찬 집에 룸메이트로 잠입해 이상한 동거를 시작해간다. 1-2층으로 구분된 무대는 톰과 세바스찬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단정한 1층 톰의 공간에 비해 자유로운 2층의 세바스찬 공간이 펼쳐지고, 1층과 2층을 오가며 인물들의 감정도 조금씩 변해간다. “총각들을 데려다가 중년아저씨를 만들어버렸지만 재미와 감동에 초점을 맞춘다”는 김재성 연출가의 의도처럼, <더 씽 어바웃 맨>이 올 연말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11월 20일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 계속되는 더 스테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잘 나간 인생 새됐어” 톰, 박상면-이건명-박형준
톰은 억대 연봉, 포르쉐 자동차, 대기업 중역자리, 예쁜 아내 등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어느새 생각 없이 기계처럼 일만 하는 ‘돈벌레’가 되어버렸다. 특히 톰은 루시보다 먼저 바람을 피우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99%의 남성을 대변하는 톰 역에는 박상면, 박형준, 이건명이 캐스팅 되었다. “실제 결혼을 하진 않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혼을 참 많이도 했다. (웃음)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연습 중이고 있을 때 잘하자, 라는 교훈을 얻는 중이다.” (박형준) 박형준과 이건명이 먼저 공연을 시작하고, 박상면은 내년 1월부터 극에 합류할 예정이다.

“사람답게 살래, 사랑받고 살래” 루시, 김선경-조진아-안유진
“엄마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는 안유진의 말처럼 루시 역시 한국의 수많은 중년여성을 대변하고 있다. 루시는 영원히 함께 사랑하겠다는 맹세와 함께 끝나버린 자신의 인생에 서글퍼하지만,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행동파 인물이다. 자신을 봐주지 않는 톰을 향한 반항심과 보상심리로 톰과는 정반대인 세바스찬을 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루시 역에는 김선경, 조진아, 안유진이 캐스팅되었다. “루시와 똑같은 경험이 있었다. (웃음) 내가 바람이 나서 가슴 아픈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언니들에 비해 깊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랑의 아픔과 진실한 사랑을 찾고자하는 열정은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진아)

“내 인생은 자유야” 세바스찬, 이승원-이학민
루시의 내연남 세바스찬은 빈민가에 기거하는 보헤미안 화가로, 가진 것은 없지만 자유로운 영혼과 열정을 의식주 삼아 살아가는 인물이다. 톰과 달리 루시를 ‘촉촉한 눈동자’라 부르며 그녀를 설레게 만들고 루시의 외로움을 감싸 안는다. 모든 여자들이 사랑에 빠지는 세바스찬 역에는 이승원과 이학민이 더블캐스팅되었다. “서른 살 조진아가 여자 배우들 중 막내이고, 서른 둘 내가 남자 배우들 중 막내다. 근데 박형준 씨랑 동갑내기 친구로 연기를 해야 돼서 무대 위에서 그냥 막하기로 했다. (웃음)” (이학민)

관전 포인트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고, 덤으로 사랑까지 얻는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멀게는 <아줌마>에서부터 가깝게는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까지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대부분 드라마에서 선보인 이른바 ‘줌마렐라’ 시리즈들은 남편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첫사랑이나 왕자님 같은 연하남이 그녀를 차지하는 등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왔다. 하지만 <더 씽 어바웃 맨>은 남자가 중심이 되어 부인을 이해하고 반성해가는 과정을 그리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가 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연말, 쏟아지는 공연 작품들 중 <더 씽 어바웃 맨>은 어떤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까.

사진제공_MC컬처피아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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