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우치는 홍길동에 비해 많이 알려진 영웅은 아니다. 건전한 이상향을 가지고 율도국을 꿈꾸던 의적 홍길동의 이야기가 최초의 국문소설로 기록된 반면, <전우치전>은 태생부터 작자미상의 황당무계한 환상소설이었다. 선조 때 실제인물로 알려진 전우치는 신묘한 도술로 탐관오리들을 벌하는 도사로, 신분제 타파와 부패 정치 개혁을 내세웠던 홍길동보다 훨씬 더 발랄하다. 그렇게 장난기 넘치고 맹랑한 청년 도사 전우치가 엄숙한 조선시대가 아닌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로 온다면? 500년 전 그림족자 속에 갇혔던 비행도사 전우치가 현대에서 다시 활개 치는 요괴를 잡기 위해 봉인해제되며 겪는 활극을 그린 영화 <전우치> (영화사 집 제작, 최동훈 감독)의 제작보고회가 16일 압구정 CGV에서 열렸다.

사회를 맡은 김성주가 “<해운대>, <국가대표>의 제작보고회도 진행했지만 이렇게 인산인해를 이룬 것은 처음”이라고 밝힐 정도로 최동훈 감독과 강동원, 임수정, 김윤석, 유해진, 백윤식이 참여한 행사장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이날 공개된 최초의 한국형 액션 히어로를 표방한 <전우치>의 메이킹 영상과 본 예고편은 그 기대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긴 다리를 자랑하며 허공을 유연하게 날아다니는 강동원의 와이어 액션과 개와 인간을 넘나드는 유해진의 익살맞은 연기는 CG를 입고 나올 완성본을 더욱 기다리게 만들었다. 특히 최근 열렸던 아메리칸 필름마켓에서 해외 12개국에 선판매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동양적인 영상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로 선보일지도 흥행의 관건이다. 감독이 “한국적인 상상력과 한국인의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도술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밝힌 한국형 히어로의 도술은 할리우드의 액션 히어로들의 최첨단 무기와 얼마나 다른 개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12월 23일 개봉을 앞둔 감독과 배우들의 기자간담회 내용이다.

메이킹 영상을 보니까 와이어 액션에, 자동차 추격 신까지 과정이 만만치 않더라.
최동훈 감독
: 모든 영화가 힘이 들지만 <전우치>는 특히나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찍고 싶어서 욕심내다 보니까 더 그랬던 것 같다. 촬영 열흘째 되던 날 지옥에 왔다는 걸 깨달았다. (웃음) 중반에서부턴 찍긴 찍는데 어떻게 나올지 감도 안 잡히고. 그런데 종반으로 갈수록 기분 좋게 촬영할 수 있었다.

강동원의 경우는 무술감독이 한국에서 가장 와이어를 잘 하는 배우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
강동원
: 특별히 비결은 없고, 와이어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거니까 무술팀과 호흡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평소에 무술팀과 대화를 많이 나눴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 또 나 같은 경우야 멋지게 포즈만 잡으면 스태프들이 열심히 당겨주니까. (웃음) 그래도 무섭긴 진짜 무서웠다. 떨어져도 팔 한두 개 부러질 것 같은 높이는 안 무서운데, 떨어지면 죽겠구나 할 만한 높이면 진짜 무섭다.

“<전우치>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정말 좋았다”

김윤석은 강동원과 다르게 와이어 액션에서 겁을 많이 내더라.
김윤석
: 강동원이 와이어랑 혼연일체 됐다면 나는 와이어를 장악해서 온몸으로 선을 이겨내고 구부러뜨렸다. (웃음) 아무래도 부양가족이 있으니까 감독이 많이 봐줬다. 강동원보다 높이도 낮고, 주로 눈빛이나 표정으로 도술을 부렸다. 그 눈빛에 강동원은 50미터씩 날아가는 등 선후배로서 사이좋은 장면들을 많이 연출했다. (웃음)
최동훈 감독: 나도 기혼자니까 아무래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웃음)

<전우치>의 강동원도 그렇고 매 작품마다 키가 큰 젊은 배우들과 대결하고 있다. 소감이 어떤지? (웃음)
김윤석
: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전우치> 그리고 다음 영화 <황해>까지 상대배우인 하정우, 정경호, 강동원이 모두 키가 180cm대다. 나도 178cm로 어디 가서 진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모델급의 배우들과 연속으로 작품을 하게 됐다. 뭐 후배들을 잡아서 뒤로 당기면 되니까 괜찮다. (웃음) 나도 젊지만 젊은 친구들 피를 빨아서 내 피를 신선하게 하는 재미도 있고, 꽃미남들을 내가 전염시켜서 망가뜨린다. 일단 인생 상담을 빌미로 술자리를 최대한 길게 가져서 의상을 해체시킨다. 예쁘게 안 입어도 연기 잘 할 수 있다고. (웃음) 그런 과정들이 내게 활력을 주고, 세대를 초월한 우정이 생겨서 연기자의 외로움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 좋다.

임수정은 처음으로 액션에 도전했는데 와이어 액션까지 했다. 거기에 팜므파탈 이미지까지 시도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연기변신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이 있는지.
임수정
: <전우치>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이 다 와이어를 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적은 편이었지만 경험이 없으니까 어렵더라. 그래도 현장에서 배우들과 무술팀이 도와줘서 다행히 잘 끝낼 수 있었다. 내가 했던 건 다른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웃음) 또 그동안 했던 이미지랑 <전우치>에서의 이미지가 많이 다른데,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정말 좋았다. 단순히 어떤 한 가지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는 캐릭터였다. 약간 이상한 여자 아니야 할 정도로. 물론 감독은 내가 이상한 여자가 될 수록 좋아하더라. (웃음) 변신을 위한 노력보다는 캐릭터에 잘 맞도록 연기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극중 임수정이 맡은 역할의 이름이 서인경인데, <타짜>나 <범죄의 재구성> 등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선 유독 서인경이란 이름 자주 나온다.
최동훈 감독
: 안 그래도 아내가 서인경이 누구냐고 자꾸 물어본다. (웃음) 그런데 실제로 만났던 사람은 아니고, 서인경이라는 이름의 발음이 좋게 느껴진다. 또 사람 이름 짓는 게 귀찮기도 하고.

“현장이 너무 유쾌했고, 캐릭터들도 다 재밌었다”

김윤석, 백윤식, 유해진 등은 일명 ‘최동훈 사단’이라고 할 정도로 매 작품 함께 하고 있다. 세 배우와 작업하면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가?
최동훈 감독
: 일단은 촬영이 끝나면 술자리 보장이 된 다는 것? (웃음) 백윤식의 경우는 시나리오를 쓸 때 좀 맛이 없는 대사라고 생각됐던 것도 이 배우의 입에서 나오면 놀랍도록 대사가 맛있어진다. 그런 배우의 말 맛에 중독된 것 같다. 또 백윤식이 극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있는 영화가 잘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웃음) <타짜>에 이어서 이번에도 멘토 역할인데 중요한 고리를 맺는 캐릭터를 잘 해준다. 또 아버님과 같은 나이 또래인데도 너무 격의가 없게 대해주니까 배우 대 감독으로 만날 수도 있고. 인생선배이면서도 친구 같고, 아버지 같은 분이다.
백윤식: 사석에서, 주로 술자리에서는 감독에게 푸념도 많이 한다. 나는 작품에서 계속 죽으니까. (웃음)

유해진 같은 경우도 푸념을 많이 할 것 같다. 늘 멋진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던 데다 이번에는 ‘개인간’이라는 초유의 캐릭터다.
유해진
: ‘개인간’이라는 캐릭터가 해 볼만 하고 재밌을 것 같았다. 개와 인간이 공존하는 몸이니까 재밌게 작업했다. 인간의 모습이지만 전우치가 도술로 둔갑시킨 개라서 습성은 개의 것이어야 했다. 평소보다는 더 유심히 개를 지켜봤다. (웃음) 또 전우치 옆에서 길동무처럼 꾸준히 같이 가는 역할이라 강동원과는 처음 작업했는데도 평소에 보지 못했던 진지한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전작들에서 염정아, 김혜수의 새로운 면모 를 재발견하며, 여배우를 잘 살리는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에 작업한 임수정은 어땠나?
최동훈 감독
: 과찬의 말씀이다. 그분들이 열심히 해서 그랬던 거지. 임수정과 작업을 해야만 명감독 대열에 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웃음) 다른 동료 감독들도 모두 임수정과 작업하고 싶어 한다. 너무 섬세한 배우다. 편집하다보면 현장에선 미쳐 눈치 채지 못한 디테일한 표현을 발견할 때가 많다. 임수정만의 묘한 느낌이 있는데 아직 그 실체를 다 파헤치지 못해서 다시 임수정에게 도전하고 싶다.
임수정: 현장이 일단 너무 유쾌했고, 캐릭터들도 다 재밌고 약간 이상하다고 할 만큼의 매력이 있다. 그런 캐릭터들의 집합이 최동훈 감독 영화의 특징인 것 같다. 지금까진 나 또한 착하거나 순수한 이미지였는데 이번 캐릭터는 작게나마 욕 같은 것도 하고 내면의 욕망, 악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하기 때문에 너무 속 시원했다. <전우치>는 앞으로 내가 할 영화나 캐릭터가 달라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꽃미남 선입견을 깨는 것도 즐거움”

정말 많은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은 어땠나?
임수정
: 다들 만만치 않은 분들이었다. (웃음) 기사 거리로 제일 좋은 강동원에 대해 얘기하자면, 처음 봤을 땐 너무 예쁘기만 하고 차갑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수도 없고 친구도 없을 거 같은데, 이 영화 하면서 보니까 선배님들 영향도 있고 마음을 많이 열더라. 굉장히 밝고 영리한 배우였다. 옆에서 보면서 오히려 공부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해진 선배를 제일 좋아한다. 말은 너무 재밌고 시원시원하게 하는데, 연기는 정말 섬세하다. 본능적으로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까 뒤에서 정말 어마어마할 정도로 노력을 하더라. 한 신을 찍는데도 굉장히 다양한 준비를 해오고 끊임없이 감독과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오늘 현장에서도 그렇고 최근 인터뷰 영상을 보면 사투리 억양이 남아있는데, 특별히 신경을 쓰진 않나보다.
강동원
: 사투리가 잘 안 고쳐진다. 이렇게 말을 안 해주면 사투리를 쓰는지도 모를 정도로 언어적인 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쓰면서도 쓰는지 모르니까 고쳐지지도 않고. 예전에는 연기하면서 그게 되게 신경 쓰였고, 들키는 게 너무 싫었는데 요즘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전우치>에서도 김윤석, 김상호, 송영창 등 함께 연기한 선배들이 다 경상도 출신이라 실컷 사투리로 떠들다가 슛 들어가서 대사할 때도 사투리를 써서 후시 녹음을 해야 된다. (웃음)

강동원을 오랫동안 수식하고 있는 단어가 꽃미남이다. 특히 연말에 같은 꽃미남과인 현빈, 김범 등도 영화를 개봉하는데 부담이나 라이벌 의식을 느끼진 않는지?
강동원
: 일단 꽃미남이란 수식어 자체에는 별로 부담이 없다. 잘생겼다는 말도, 꽃미남이라는 말도 다 좋은 말이니까.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강동원이 이제 꽃미남이란 수식어가 있으니까 연기하는데 지장이 있겠다고 생각하면 그걸 깨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또 우리 영화에 자신이 있으니까 다른 영화가 개봉한다 해도 부담되지 않는다. (웃음) 모든 배우들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지만 굳이 외모적으로 꼽자면… 빈이도 있고, 인성이도 있고. 그런데 진짜 그렇게 라이벌로 생각하는 건 아니고… 아, 말했으니 이제 돌이킬 수 없겠다. 기사가 벌써 나왔겠다. (웃음) 외모가 자신 있다기보다는 내 장점을 무기로 최대한 밀고 나갈 거다.

마지막으로 <전우치>는 어떤 영화인가?
최동훈 감독
: <전우치>가 한국 사람들이 눈으론 보진 못했지만 머리에 남아있는 기억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경쾌한 오락영화가 되기를 바란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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