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규태 감독은 “<아이리스>에서는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사랑이나 우정 같은 보편적인 코드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한국형 첩보 액션’을 지향하고 싶다”는 말로 드라마의 성격을 규정한 바 있다. 8월 31일, 폐막을 하루 앞둔 제3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이벤트의 일환으로 서울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공개된 KBS <아이리스>의 10분 남짓한 프로모션 필름은 이러한 제작진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는 것이었다. 전체적인 만듦새를 짐작할 수 없는 분량이었지만 편집된 동영상에는 ‘한국형’과 ‘첩보’라는 수식어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이 드러나 있었다.

“영화 20개를 찍는 심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병헌은 “현장의 95% 이상이 영화 스태프다. 영화 20개를 찍는 심정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말로 드라마의 퀄리티에 대한 자부심을 표했다. 실제로 <아이리스>는 일본, 헝가리 등에서 촬영을 진행 했고, 9월 초에는 중국 로케이션을 예정 중인만큼 세트장 안에서 대부분의 사건이 벌어지는 일반적인 한국 드라마와는 차별화 된 스케일을 지향한다. 이에 더해 프로모션 필름에는 자동차로 추격을 하거나 자동차를 폭파시키는 것은 물론, 비밀 암살단이 총기로 무장한 채 주인공을 급습하고, 개인 비행기가 자동차와 대립을 하는 등 할리우드 첩보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대거 등장한다. 화려하고 과격한 액션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분량을 채우는 것은 ‘한국형’ 내러티브에 충실한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우정, 반목, 그리고 분단 상황에 대한 암시들이다. 특히 현준(이병헌)과 승희(김태희)는 사랑하지만 임무 때문에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연인으로 설정되어 다소 전형적인 구도를 짐작케 했다. 이들의 관계는 여러 번의 키스신으로 노출되었는데, 애정 신이 보여 질 때마다 현장에 참석한 일본 팬들의 탄식이 청계천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물론 풍성한 볼거리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 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야기다. “극본을 맡은 최완규 작가가 워낙 잘 쓰시는 분이라 출연을 결정”했다는 김영철의 신뢰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아이리스>는 그동안 거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했으나 노력에 비해 호응이 적었던 블록버스터 드라마의 징크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거듭 강조되는 “영화 같은 드라마”라는 설명도 결국 드라마의 생명력은 한 회 안에서의 완결성 보다는 다음 회를 보게 만드는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전제 하지 않으면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동 연출을 맡은 양윤호 감독의 “벌써 6개월 정도 촬영을 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3개월 정도가 더욱 열심히 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대단한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달려왔지만 아직 <아이리스>는 갈 길이 멀다. 가을, 드디어 시청자들 앞에 평가 받을 날을 위해 조금 더 닦고 조이고 기름 칠 때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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